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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테라-sassi di matera

이탈리아여행

by 배심온

여행자 네 명이 거대한 케리어를 끌고 이동하는 모습은 타인의 시선을 끌 뿐만 아니라, 돌바닥을 긁는 시끄러운 소리는 현지 주민들에게 불편을 줄 수도 있다. 우리는 최대한 거리를 두어 소음을 줄이려고 했고, 가능한 케리어 없이 이동하는 방법을 강구했다.


바리 중앙역 부근에 알베로벨로뿐만 아니라 마테라로 가는 버스표를 파는 곳이 있긴 있다. 타바코라고 적혀있는 곳으로 커피와 간단한 빵과 담배, 복권 등을 팔면서 바리 인근 소도시로 가는 버스표를 예매할 수 있는 곳이다. 복권을 사고, 즉석에서 맞춰보는 사람들에다가, 버스표를 구하려는 사람들로 좁은 공간은 발 디딜 틈이 없다. 소도시마다 버스 운행 시간이 다르고 이탈리아어를 쓰는 점원들과의 소통도 원활하지 않다.


알베로벨로는 바리 숙소에서 당일치기로 갔다 오고, 마테라는 케리어를 끌고 가서, 1박을 하는 것으로 일정이 확정된다. 버스표 파는 곳을 찾는 일부터 도시 간 이동은 만만치 않다.


4월 8일, 바리 숙소에서 새벽같이 나와 하루에 두 번밖에 없는 버스를 타고 마테라로 향한다. 마테라에 도착해서는 선택의 여지없이 택시를 이용해 숙소로 이동하고, 숙소 주인과는 미리 체크인 전에 짐을 맡아 주겠다는 약속을 받는다.

갑자기 내려간 기온 때문인지, 무채색의 돌집 때문인지 마테라의 아침은 을씨년스러울 정도로 썰렁하고, 조용하다.


마테라는 구석기시대부터 사람들이 석회암 절벽을 깎아 집을 짓고 살았던 세계 최초의 주거지로 인정받는 곳이니, 우리는 가히 역사적인 장소에 와있는 건 확실하다. 이곳은 깊은 협곡을 따라 동굴집과 동굴교회가 모여 도시를 이루고, 20세기 중반까지도 전기와 수도 시설 없이 지냈다고 한다. 한 때는 질병과 가난으로 이탈리아의 수치로 여겨질 때도 있었고, 정책적으로 주민을 외곽으로 내보내고 도시 전체를 비워두기도 했다. 마테라의 역사적 가치가 부각되면서, 이탈리아 정부의 지원을 받아 40년 이상의 긴 재건사업으로 1993년 마테라는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제된다. 이제는 여행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새로운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다.


일단, 호스트를 만나 짐을 맡기고, 돌길을 걸어서 메인 거리로 올라가니, 마테라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나오고, 아침 요기를 할 만한 카페도 보인다. 아침 10시쯤에 문을 여는 카페는 이곳뿐인지 건장한 남자 둘이 꾸리는 카페는 동네 사랑방같이 북적인다. 따뜻한 커피와 빵으로 아침 식사를 해결하고 동네를 둘러보면서, 마테라와 친해지기 시작한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마테라는 도시 전체가 고은 진흙으로 빚어놓은 미니어처 같고, 동일한 규모와 동일한 형태의 집들에서는 외계인이라도 나올 것 만 같다. 모든 색은 걷어내고 상아빛으로 통일감을 이룬다. 영화 촬영지로도 각광을 받는데, 멜 깁슨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촬영지로 유명하다. 마테라는 도시 전체가 마치 영화 세트장 같다. 아무런 장치 없이 그냥 카메라만 들이대면 영화가 되는 곳이라고 마테라를 홍보하기도 한다.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촬영할 때,

비가 내리는 장면을 찍어야 할 타이밍에 맞춰서 비가 내려주었다는 에피소드로 마테라의 신비감을 더한다. 구도심에는 영화나 사진과 관련된 작은 가게들이 꽤 있다.


초등생부터 대학생까지 단체 여행을 온 학생들도 많다. 케리어 없이도 우리 네 명은 눈에 띄나 보다. 니하우, 곤니찌와를 마구 날리는 가운데, 정확한 발음으로 안녕하세요를 말하는 학생이 있어서 우리는 또 폭풍 같은 칭찬으로 응수를 한다.


추위에 움츠리며 체크인할 시간만 기다리다 들어간 숙소는 하룻밤 동굴체험을 예고한다. 새로 리모델링을 해 바깥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화장실도 깨끗하고 세련되었다. 숙소 한가운데 욕조가 놓여있고, 푸른색 조명을 깔아놓은 건 영 취향에 안 맞고 소용도 없다. 처음으로 한 공간에서 네 명이 다 함께 자게 되었고, 다소 춥고, 어두웠다. 제공되는 조식은 단 빵과 단 음료수가 거의 전부였고, 그것마저 호스트가 지켜보는 가운데 식사를 해야 했다. 다행인 것은 오후에 나선 트레킹이 대만족이었다는 거다.


오후가 되면서 해가 비치고, 계곡을 따라 피어나는 꽃들과 풀들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녹여주었고, 풍광은 다른 우주에 온 듯 신비했다. 협곡을 연결하는 출렁다리를 건너니, 절벽을 따라 뚫려있는 동굴들을 마주하게 되고, 돌마을 싸씨지구 전체를 한눈에 담을 수 있었다. 구석기시대부터, 문자의 기록이 없던 선사 시대에도 사람이 살았던 곳에 우리가 서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제대로 여행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 마저 들게 한다.


상아빛 하나로 통일된 도시에 청동의 포인트가 있다. 남녀가 손을 마주 잡고, 나무를 키워 청동의 지구에 뿌리를 내리게 한다고 나 나름의 해석을 해본다. 안드레아 로기의 '생명의 나무'라는 작품들인데, 이탈리아 도시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마테라의 부활을 응원하는 주술 같다.


하룻밤을 자고 나서 우리는

예수가 십자가를 메고 오르는 장면을 찍은 영화 촬영지를 찾아본다. 동굴교회와 동굴카페, 그리고 돌로 지은 집들. 돌계단. 아침에 느긋하게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전날 우리를 태워준 택시기사분과 연락하여 바리로 가는 버스 정류장으로 이동한다.


우리는 바리에서 다시 기차를 타고 폴리나뇨 아 마레로 간다.


2025. 5. 25. 동네 카페에서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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