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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리에서

이탈리아여행

by 배심온

내가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늘 전제로 한다.

소렌토로 가는 길에 들렀던 나폴리 중앙역 풍경과 숙소가 있는 나폴리 전통시장의 풍경. 그리고 두오모 성당을 보고 난 후의 나폴리에 대한 감흥은 사뭇 다르다. 어느 도시, 어느 로마 원형 극장, 어느 피자집을 가더라도 비교하지 말자는 생각을 하지만 좁은 소견일수록 그 진가를 모른 채 아는 체를 하고 싶어 지는 것 같다.


우리의 숙소는 spacca napoli 주변에 있어서 5분만 걸어 나오면 각종 음식과 마실 것을 파는 좁은 거리가 나오고, 동네 성당들은 조금 과장하여 두 집 건너 하나씩 있는듯하다. 없는 것 없이 온갖 물건을 파는 가게들이 오밀조밀 모여있다. 특히 작은 인형들이 실제 생활공간 속에 살아있는 듯 만들어진 미니어처는 워낙 다양해서 시장 물건 만으로도 일생을 다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나폴리 가리발디 중앙역에서 숙소까지는 걸어서 15분 거리인데, 하루 종일 폼페이 관광을 소화한 후라 모두들 지쳐있고, 큰 케리어 네 개를 끌고 15분을 이동하는 건 다소 무리가 있어서 택시를 탄다.

택시 운전사는 나폴리 피자집 안내에 열을 올리고, 모든 성당은 공짜라며 나폴리에 대한 자부심으로 신나 하신다.


나폴리에서의 이튿날. 아침잠이 없는 언니들 덕에 늘 일찍 먹던 아침식사를 겨우 8시로 늦쳐서 하고, 9시 반에 나폴리 시내 구경에 나선다.


카르소 극장과 나폴리 궁전광장에 서니 베드로 성당이 연상된다. 로마의 베드로 성당 설계에 참여했던 베르니니가 이곳 태생인걸 보면, 이 광장이 로마 베드로 성당의 모티브가 되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궁전광장은 나폴리 항으로 연결된다. 나폴리가 어째서 세계 3대 미항인지를 확인하고 싶어진다. 고급스러운 요트가 한쪽 만에 안착되어 있고, 거대한 여객선을 비롯한 어선들이 정박해 있고, 수평선은 끝없이 펼쳐진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나폴리 항은 어미 닭이 병아리를 품듯 날개를 펼친 모양이라고 한다. 우리가 튀니스에서 팔레르모까지 타고 온 GNV 여객선도 정박해 있어서 반가운 마음이 든다. 미항이란 자고로 배들 입장에서 수월하게 입항할 수 있는 곳을 말한다는 일행의 말에 크게 공감한다. 목적에 가장 부합하는 것을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은 꽤 타당하지 않은가.


목요일 오전 시간인데, 문이 닫힌 성당도 있고, 입장료를 받는 성당도 있었지만 chesa del gesu' nuovo 교회는 입장료도 받지 않고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규모 면에서나 화려함에 있어서 어느 성당에도 뒤떨어지지 않았고, 바닥이 각종 색깔의 대리석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몰타에 있는 요한 대성당의 바닥이 갖가지 색상의 대리석으로 장식되어 있었던 것과 비교하면 이 성당의 바닥은 그것의 확장형쯤 되어 보인다. 물론 누구의 묘지도 아닐뿐더러 널찍널찍하니 개방감이 있어서 마음이 편안하다.


이 성당은 나에게 특별하게 각인되는 점이 있다. 교회 안에서 신부님과 시민들이 활발하게 교감하고 있다는 점이다. 커튼을 치거나 닫힌 문 속에서가 아니라, 신부님은 고해성소 안에 계시고, 그곳을 찾은 사람은 고해성소 바깥에 선 채로 신부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 그 모습은 그대로 노출되고 있었다. 신부님과의 대화가 가벼운 이야기일리는 없겠고, 속죄든 기원이든 사뭇 진지하지만, 누구든 가능하다는 듯 가리는 것이 일절 없다. 힘든 일이 있는 사람, 또는 다른 누구에게도 기댈 곳이 없는 사람들, 그들은 신부님을 찾아 도움이나 조언을 구하는 듯했다. 한 분만이 아니고, 넓은 성당의 여기저기서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입구의 작은 테이블에서도 신부님이 한 사람과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는 있었다. 흐뭇하고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나는 이게 성당의 제구실이라는 생각에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카라바조가 로마에서 도망쳐 이곳 나폴리로 온 이유도 알 듯하여 또 한 번 고개를 끄덕인다.


여기저기 두 손을 모으거나 무릎을 꿇거나 혹은 천천히 걸으면서 나름의 신께 기도하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학생들은 무리 지어 모여 앉아 성당의 역사나 성상의 의미에 대해 설명을 듣고, 새로운 감흥에 자리를 뜨지 못하고 사진을 남기고 있다.


여러 도시의 많은 성당을 보면서 성당이 이렇게 화려할 필요가 있는지, 당시 사람들의 삶이 성당의 화려함과 얼마만큼의 거리가 있었을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남았었다. 가히 성당의 도시라고 할 만큼, 100개가 넘는 성당을 갖고 있는 레체에서는 한 도시 안에서도 자연스러운 대리석만으로 이루어진 성당부터 대리석 위에 금칠이 덧대어진 성당까지 교회에 부와 권력이 축적되는 과정을 보는 듯해 마음이 불편하기까지 했다.


카라바조가 살인까지 저지르고 나폴리로 피신한 까닭이 이곳 나폴리가 교황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나폴리 공국이었기 때문이란다. 16세기의 나폴리는 이탈리아에서 로마와 밀라노 다음으로 번성한 도시였다. 당시 나폴리는 로마가 보듬지 못한 천재 화가를 수용할 만큼 자유롭고 자신감에 차있었던 건 아닐까?


그러나 끝내 카라바조는 교황으로부터 사면을 받기를 원했고, 그를 위해 몰타로 넘어가 몰타기사 작위를 받지만, 또다시 기사와 싸움을 벌여 다시 도망자의 신세가 된다. 시칠리아를 거쳐 나폴리로 돌아온 카라바조는 로마 교황에게 바칠 그림을 이곳에서 준비한다. 골리앗의 잘린 목을 들고 있는 젊은 다윗, 이중 자화상이 그것이다. 카라바조는 어느 식당 골목에서 싸움질을 하다 얼굴에 상처를 입은 채 로마를 향하다가 39세의 나이로 객사하고 만다. 카라바조가 싸움을 벌였던 그곳은 지금 레스토랑으로 운영되고 있고, 카라바조의 발자취를 찾는 사람들이 거쳐간다.


본인이 이미 사면되었다는 사실도 모른 채 부랑아로 객사한 카라바조를 보면서, 자유를 갈망하지만 결국은 신 앞으로 나아가는 인간의 한계를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머무는 spacca napoli 거리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주거지역이리고 한다. 그러니까 천년의 역사를 갖는 거리다. 첫인상은 거칠고 지저분하고 낙후된 느낌이지만 이틀 만에 나폴리는 흥겹고 정겨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소렌토에서는 아니지만 여기 나폴리에서는 한 달 살기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어디든 잠깐 왔다가 지나가서는 그 도시의 진면모를 보기 어렵다.


나폴리에서는 이틀 더 시간이 있으니, 내일은 카라바조의 그림을 찾아 나서야겠다.


2025. 4. 17 밤 스파카 나폴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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