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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imeSpace Mar 11. 2023

꽃망울

봄을 알리는 자명종

길을 걷다가 꽃망울이 열려 있는 것을 봤다.

소박한 생명의 숭고함이 나를 홀리듯 이끌었다.

여린 꽃이었는데, 그것은 완전히 피어난 꽃이 주는 인상과는 확연히 다른 것이었으며 특히 봄기운이 더해져 감각하는 내 머릿속에서 그것은 이미 보편적인 꽃들 중 하나서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아니었다.


문득 꽃이라는 단어의 어원이 궁금해졌다. 왜냐하면 꽃은 오랜 세월 동안 피고 지기를 반복했을 것이고 인간의 삶도 그와 다를 바가 없었을진대, 인간은 그 고유의 이름을 가지고 불려 온 반면, 꽃은 속屬 또는 종種의 이름으로 불리거나(가령 진달래꽃) 단순히 '꽃'이라고 불려 온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관찰하는 꽃이 그 자리에서 피고 지는 동안 이 가진 고유의 무언가를 꼭 같이 느꼈을 것이므로 어원에 대해 알아보기로 했다. 미흡하긴 해도 영어가 다른 언어에 비해 익숙하기 때문에 영어 사전을 찾아보았다.


꽃의 영어 단어는 flower 또는 blossom이다.

먼저 blossom의 경우 역사적으로 그 뿌리가 깊은 인도 유럽어의 "내뿜다", "부풀어 오르다"라는 의미를 가진 'bhle-'가 영어와 독일어의 접두어 'blo-'로 계승되었다고 본다.

flower의 어원은 라틴어의 flos, flor-로부터 출발해 flo-를 접두어로 하는데, 이는 flour로 이어져 "번영하다"라는 의미가 된다.

blow는 꽃망울이 피어나는 형상을, flourish는 꽃이 피는 봄날의 이미지를 '번영'으로서 형상화한 것을 의미하고자 하는 것 같다.


우리나라 말로 꽃은 "튀어나온"의 의미를 가진 '곶'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데, '골' 그리고 '가지'도 유사한 의미를 공유한다.


이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의미는 'blow'이다. flow도 이와 상관관계를 갖고 있는 것 같다. blow는 씨앗의 퍼짐을, 그리고 flow는 가령 민들레 씨앗의 부유를 나타내는 말일 수도 있다. 또, 꽃이 피고 지는 것은 곧 계절의 흐름을 보여주는 것이므로 이때 순환적 흐름의 의미로서 flow를 사용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 내 가설이다. 이것에 대한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확실하지는 않지만 꽤 낭만적인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그 장면, 즉 순수한 꽃의 모양새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에 내 언어 능력은 참으로 부족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소박한 장면을 표현하기 위해 아주 짧은 단어 조합을 선택하고 싶었다.

'피다'의 [핌]? 어감이 좋지 않다.

'꽃이 트다'의 [틈]? 어감이 좋지만 꽃이 튼다고 하지 않으므로 폐기했다.

'비롯하다'의 [비롯됨]? '비롯하다'라는 말은 '시작하다'와 같은 의미인데, 꽃이 피는 것은 비록 시작이기는 하지만 새로운 출발이라기보다는 활동을 다시 시작하는 느낌으로 사용하고 싶어 폐기했다.

'움츠림을 풀다'와 같은 말도 생각했지만 말이 너무 길다.

결국 차선으로 [여리게 핀]이라는 단어로 그날의 관찰을 결론지었다. 작고 소박한 꽃의 피어있는 상태로 나타내고 싶었는데 명사형이 아니라 형용사 형으로 사용한 이유는 진행하고 있다는 가능성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여리게 피는]이 더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으나 글자수가 많아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한 자를 줄였다.



꽃이 피어나기 시작할 때, 같은 생명으로서 봄을 맞이한다는 기분이 든다. 꽃은 봄을 알리는 자명종 시계 같다.

후각인지 촉각인지 알 수 없는 감각으로 봄을 체감할 때가 있다. 언제나 이 느낌을 글로 잡아내고 싶지만 결국 실패하고 만다. 하지만 움츠렀던 꽃이 돋아나듯 나의 글이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려고 한다는 느낌을 받았고 혹여 이 느낌이 다시 지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에,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이 글을 통하여 봄의 기분을 더욱 음미할 수 있기를 소망하는 조급한 마음에 충분한 공부를 하지 못한 채 또 글 하나를 기어코 내뱉는다.


짧은 언어로 표현하고 싶었지만 또 이렇게 사족이 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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