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도 기세야 기세

by 변한다

아들은 야구, 남의 편은 골프, 오롯이 나 혼자 있는 일요일 오전 책을 덮고 스르르 감긴 눈에 뭐가 섬광처럼 스치고 지나가는지 가까스로 힘주어 떠봅니다. 봄바람 살살 부니 다시 글을 써야겠다는 기세 충만함이 온 몸을 감쌌습니다. 한동안 땅속으로 기어들어가기 일보 직전의 한없이 차분했던 마음에 한 문장이라도 끼적이게끔 글쓰기 미동을 일으키는 카피라이터 이승용의 <헛소리의 품격>에서 유독 눈에 들어온 건 다름 아닌 ‘기세’


저자는 아이디어나 생각이란 게 실패할지 성공할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스스로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실패를 끝내 받아들이려면 겁없이 달려가고 들이대는 ‘기세’가 카피를 쓰는 저자에게 정말이지 중요하다는 것이었죠. 그거 아는가요. 기세엔 희한하게 양면성이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기세는 기운차게 뻗치는 모양이나 상태를 말하며, 남에게 영향을 끼칠 기운이나 태도이나 사전을 좀 더 찾아보면, 세상을 버린다는 뜻으로도 쓰입니다. 웃어른이 돌아가심을 이르는 의미로, 세상을 멀리하여 초탈한다는 거, 서거, 죽음, 별세와 같은 말이기도 하고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죠.


근데 증권가나 바둑계에서 쓰이는 기세는 전자의 의미로 쓰입니다. 증권가에선 기세를 매매계약이 성립되지 않았을 때의 호가로 직전 시세에 비해 가장 낮은 매도호가 또는 가장 높은 매수호가로 여깁니다. 바둑에서도 득실의 결과를 불문하고 위압적으로 두는 걸 기세라고 하죠.


기세는 실속이 없이 겉으로만 드러나 보이는 허세와는 다릅니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허세의 그 결말은 흐지부지 뭐가 없습니다. 그러나 기세는 다르죠. 모 아니면 도입니다. 옹골찬 단단한 기품이나 심리상태가 그게 설득력 있는 카피로 이어지든, 글쓰기로 이어지든 쭉쭉 뻗던가 아님 웅크리든가. 활짝 펴거나 사그러들거나 애매함과 오묘함의 다리를 건너 좀 더 명확하게 분명하게 둘 중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소로의 문장들>에선 자신의 생각을 냉정하게 분석하려고 애쓰지 말고 그때그때 떠오르는 생각들을 따라 펜을 놀리면서 그 생각들을 정확하게 표현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충동이란 결국 가장 훌륭한 언어학자면서 글쓰기를 유도하는 요인이나 기세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내 경우 이직 후 적응기간과 꼭 겹친 이른바 글쓰기의 동면기를 보내고 현재는 봄날에 접어든거 같긴 하나 미세먼지 가득해 앞이 보이지 않는 뿌옇고 자욱함을 헤치고 퇴근 후 하릴없이 집콕해야 할 이유가 분명해졌습니다. 이때 온 우주의 기세를 끌어올려 요즘 글쓰고 싶은 잦은 충동을 무기삼아 일단 써 제껴야지 뭐하겠는지요. 지금은 정말이지 글쓰기 쇠뿔 단김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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