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낙엽의 시대

by 변한다

바야흐로 풍성한 낙엽의 시대, 계절적 측면에서도 그렇지만, 승진이 되지 않거나 한참 어린 후배상사를 겪어야 하거나, 주변사람들이 본인을 냄새나는 똥차로 하찮게 여기는 시선들을 뒤로 한 채 아몰랑 젖은 낙엽처럼 딱 붙어 있어야 하나, 에이쌍 바람타고 훌훌 다른 데로 날아가야 하나 머리 싸매고 고민하는 연말이 비로소 다가온 것이죠.


“아직도 다니셔? 대단하다.” 전전직장을 나온 지 4년이 넘었는데, 대퇴사의 시대에 역행해도 한참 거꾸로 가는 화석 같은 나보다 훨 나이 많은 분들이 아직 다니고 계신다는 이야기에 이제 놀라지도 않습니다. 당연히 아무렴 그렇고 말고. 근데 이상하다. ‘대단하다’의 뉘앙스가 드디어 바뀌었습니다.


예전엔 조소와 조롱이 살짝 섞였다면 지금은 어메이징 초능력을 존경하는 느낌에 가깝습니다. 놀랍지 않은가요. 후배들과 동료들 꽃길에 거추장스럽게 딱붙어 있는 젖은 낙엽만큼은 극렬히 혐오했던 내가, 똥싸고 뭉개셨던 수많은 반면교사들을 보면서 다짐 또 다짐했던 내가! 이렇게 변했다는 게 말이죠.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의 23년 경력을 뒤로하고 과감히 퇴사한 사와 마도카씨가 ‘똑똑한 때려치우기’를 통해 더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방도를 알려주는 책 <때려치우기의 기술>에선 현명하게 적정한 시기에 맞춰서 손절하는 것은 상당한 용기를 동반한 고도의 테크닉이라 했습니다.


매몰비용, 경제학 개념으로 특정 경제 행위에 고정비 중 어떤 의사결정을 해도 회사할 수 없는 비용을 말하는데 실제로 매몰비용에 뒤로 하고 변화의 힘을 갖고 그걸 실행에 옮기는 건 무지 어렵습니다. 내 경우 내가 도대체 어떻게 쑤시고 들어간 직장인데 갓난아이 엄마와 남편에게 맡기고 10년 동안 기숙사 생활하면서 얼마나 힘겹게 열렬히 다닌 회사인데 그만 두는가를 수년을 고민하고 또 고민했습니다.


매몰비용을 과거를 그리워하거나 좋았던 추억으로 퉁치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더 버티는 힘을 갖기 위해선 실제로 굉장한 내공을 쌓아야 하고, 스스로의 욕망에 충실하기보단 가족 등 다른 여건부터 먼저 고려한 박애적 결정을 감행한다는 건 내가 직접 해보니 알겠더군요. 누군가 함부로 그 상황을 정의내리기 곤란할 정도로 그리 가볍고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걸 말이죠.


요조의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에서 모른다는 말로 도망치는 사람과 모른다는 말로 다가가는 사람, 세계는 이렇게도 나뉜다고 하더라고요. 결국 선택은 각자의 몫입니다. 더 이상 버티고 싶지 않은, 버티지 못할 순간이 온다면, 그건 다른 변모를 꾀하라는 신호와도 같으니 찰떡같이 알아듣고 지금의 견디는 것을 멈추고 방향을 트느냐, 아님 온전히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숨죽여 견뎌내느냐 마지막으로 비겁하게 냅다 줄행랑을 치는 도망자 신세가 되느냐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사유하는 우리는 적어도 모른다고 잡아떼거나 도리도리하고 마냥 앉아있지는 않기, 결정을 모르쇠 외면하지만 않으면 됩니다. 그거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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