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발이 디딘 공간의 기억을 끼적

by 변한다


김호연의 <매일 쓰고 다시 쓰고 끝까지 씁니다>를 베트남 출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비행기 안에서 읽어버렸습니다. <망원동 브라더스>, <불편한 편의점>의 글쟁이 저자의 일대기. 읽기 전까지 난 정말 몰랐습니다. 오직 글쓰기를 위해 삶을 살아내는 끈덕진 저자를. 오직 글쓰기를 위해 이런 처절하고 지독한 결코 흔치 않은 삶...


유난히 와닿은 부분이 있었죠. “비록 작은 공간이지만 생활과 작업을 분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일을 오래 할 것이기에, 전업 작가로 제대로 글을 쓰고 싶었기에, 생활과 글쓰기 사이에서 나만의 리듬을 찾기 위해 애썼습니다. “ 그래서 작업실을 갖는 겁니다. 사실 거창하게 생각할 것도 없습니다. 코딱지만한 공간이어도 좋습니다. 내 몸 하나 어찌 저찌 간수할 정도, 현재 나에겐 낡은 식탁이면 족합니다.


<마흔 수업>의 김미경 선생님께서도 자기가 공부할 수 있는 책상 하나는 꼭 가지라고 했습니다. 거실 소파를 밀어내든 테이블을 따로 두든 뭘 하든 간에 그 공간에 본인이 공부할 것들로 채우면서 그래야 생각이 넓어지고, 세상을 볼 수 있는 눈이 커진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김호연 작가는 대한민국 방방곡곡의 작가실을 찾아다니면서 그렇게 매일 꾸준히 글을 썼구나 싶었죠.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큰 단점이냐고 묻는다면, 아이의 방은 어떻게든 마련한다해도 아무래도 나만의 공간을 고집하기가 어렵다는 겁니다. 돌이켜보건데 예전 나만의 안락한 동굴은 다름 아닌 사외기숙사 작은 한 칸짜리 방이었습니다. 며칠 전 4월 16일은 세월호 9주기. 그때 나는 그 곳에서 아마도 내 일생의 총량의 눈물을 펑펑 흘리며 실종자들의 생존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작은 숨 쉴 공간인 에어포켓을 찾으며, 가라앉고 있는 배 위를 디디고 올라가 구조를 기다렸던 사람들을 보고, 생각했었습니다.


발바닥이라는 나를 딛고 일어서게 하는 그만큼의 공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그 작디 작은 공간만으로도 어떤 이에겐 평범한 일상이 꾸려진다는 사실을.. 그동안 무심코 지나친 내 두 발을 한참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던 기억이 스쳐지나갑니다. 9년이 지난 지금 식탁에 앉아 오전에 도서관에서 빌려온 한아름 책을 뒤적이며 요란하게 떨고 있는 나의 두 발을 잠시 멈추고 문득 바라봅니다.


‘그냥 내가 원해서 쓰는 거야. 써야지만 마음의 응어리가 풀리는 것이 있어.’ #낫워킹맘(전보라 외)의 문구처럼 이렇게 가슴 속에 맺힌 것을 써서 보여주면 통할까요? 세월이 흐르면 날선 감정도 뾰족한 기억도 무뎌지듯 다 소멸된다지만, 내 일생의 눈물을 소진했던 그 날의 내 두 발의, 닿은 그 공간의 기억을 그렇게 소환한 숨쉬기도 미안했던 4월의 열여섯번째 날은 여전히... 더 열심히 써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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