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대기업을 지원하는 10년차 영업맨의 자소서를 운좋게 컨설팅을 했습니다. 이것도 말이죠. 경쟁이 상당히 치열합니다. 요청서에 나만의 특별한 소개를 곁들여 견적을 내보내면 보통 경쟁률은 10대 1수준이죠. 운 좋게 수주만 하게 되면 나머지는 글쓰는 이에겐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자기소개서와 경력기술서까지 포함해 10장 안팎이었지만, 훑어보는데는 30분도 채 걸리지 않았죠. 냉정히 말해 눈길을 사로잡는 것 없는, 흥미를 유발하는 포인트도 없는 무난한 자소서였기 때문에 오히려 쉬웠습니다.
의뢰자에게 세 가지를 주문했습니다. 첫째 본인 이력을 한 두 줄로 압축해 담아낼 수 있는 논어, 맹자 등 중국 고전에서 나오는 한자성어와 좋은 문구를 세 가지 큰 꼭지별로 넣어 그 누가 봐도 중국삘 풀풀 나게 포장하라고 했습니다. 세 가지 맥락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는 일을 해왔던 자기 성향, 둘 나만의 에피소드 셋 입사 후 어떻게 할 것인지 였습니다. 둘째 영업맨이라면 2023년 트렌드 코리아에 나온 것과 연결해 최신 트렌드를 접목해 영업을 한다는 식으로 첫 번째 맥락에서 인사담당자의 시선을 확실히 끌라고 했습니다. 셋째 특히 중국통이라 했는데 VIP 상대 영업을 하면서 성공의 과정으로 이끈 개인 실패담을 두 번째 맥락에서 극적으로 묘사하라고 했습니다. 개그우먼 조혜련의 유튜브 짤에서 봤는데, 그녀의 어머니께서 이 세상엔 성공과 실패가 있는 게 아니라 성공과 과정이 있을 뿐이라고 했다는 말도 전하면서 말이죠.
예전에 퇴직 임원이 헤드헌팅 회사를 통해 모 공공기관 수장에 지원한 적이 있었는데, 친분도 있고 해서 자기소개서를 봐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왜 위인전 같은 거 보면 맨 마지막에 출생에서 사망까지 시기별로 정리해 적혀있지 않은가요. 마찬가지였습니다. 입사해 뭘 했는지 연대기별로 적어놓은 것을 보고 기함을 했습니다. 휘황찬란 날고 기는 분들께서 지원을 할텐데 채용자 책상 밑에 고이 모셔둘만큼 읽기 싫을 정도로 길고 지루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거두절미하고 그 분에게 이 화려한 경력 중 뭘 가장 내세우고 싶은지 여쭙고 한두 가지만 짚어달라고 했습니다. 그걸 가지고 짤막하게 단락별로 작성했습니다. 그 분의 성향 관련해서는 내가 듣고 멀리서 봤던 직간접적인 경험을 토대로 그분을 떠올리기에 딱 좋을 키워드로 정리했으며, 그 분이 그 회사를 가서 어떻게 바꿨으면 좋겠는지는 내가 그 회사에 그 포지션으로 간다면 이런 걸 바꾸고 싶다는 상상의 나래를 마구마구 펼쳐 써서 드린 적이 있었죠.
모 정치인이 토끼의 해를 맞아 교토삼굴(狡兎三窟)을 언급해서 회자되었습니다. 토끼는 영민한 동물이라 늘 준비하고 특히 굴을 세 개 판다고 해서 '교토삼굴'이라는 고사성어가 있으니 올해는 아무쪼록 우리도 영민한 토끼를 닮아서 플랜2, 플랜3의 대안을 마련하는 해가 되길 바란다고 했습니다. 이를 응용해서 토끼는 안심하기 위해 세 개의 굴을 파듯이, 나는 자기PR를 글로 적으려면 세 가지 꼭지 즉 삼굴 정도로는 정리를 해놔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미천한 나의 자기소개서에는 지방근무 10년을 한 불굴의 끈기, PR로 시작했지만 기술기획, 마케팅, 교육체계 구축 등을 실질적으로 해온 다방면의 업무경험, 공공기관과 기업을 겪으면서 오직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우선하는 마음으로 입사해 이바지하겠다는 굳은 다짐의 세 꼭지가 단단하게 받쳐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의 자기PR 삼굴은 어떠한가요? 매번 닥칠 때마다 즉흥적으로 맥락을 찾아 우왕좌왕 헤매는 건 결국 개인의 무능함으로 귀결된다고 생각합니다. 준비에 실패하면 실패를 준비한다는 유비무환의 정신으로 적어도 프로라면 3개월 밖에 남지 않은 토끼해에 이제라도 토끼처럼 지혜와 영민함으로 용의주도하게 자기소개 삼굴 야무지게 좀 파보시는 게 어떠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