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 마인드 풀세팅한 지극히 현실적 글쓰기

by 변한다

한 때 내 글을 고치기 참 싫은 적이 있었습니다. 몇 시간 동안 골똘하게 생각해 적었던 인용구나 표현들을 빼버리라 하고 문단의 위치를 재조정했을 때 부르르 나는 성질머리를 겨우 꾹꾹 참아내면서 갈기갈기 찢겨진 마음을 자세히 들여다보기 거북스러울 정도로 혼돈 그 자체였습니다. 그냥 뭉개고 개겨? 아님 고쳐주고 말아? 긴 고민 끝에 빠득빠득 우기고 내 의지대로 관철한 적도 있었습니다.


허나 언제부터인가 나는 내 주제파악을 하고 난 뒤 바로 고쳐주고 말죠. 내 글을 의뢰한 주인이 결국 원하는 대로, 내 글을 결재할 최종 권한자가 시키는대로 내 글을 출판할 귀한 분이 하라는 대로 한 술 더 떠 내 글을 툭 던져놓고 당신 편한대로 고치라고까지 합니다.


두 번째 책 <굶주린 마흔의 생존독서>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출판사 대표님께 편한 대로 피드백 주시고, 문장도 다듬고 고쳐주셔도 무방하다고 했습니다. 100% 진심이었습니다. <최재천의 공부>의 저자 최재천 선생님은 본인이 쓴 글의 조사 한 곳이라도 누가 수정한다면 난리 난리 치는 그 고집이 있다고 스스로 밝히셨습니다. 자기가 쓰고 뱉은 말에 책임을 진다는 우직한 각오는 충분히 알겠으나, 나는 그런 각오를 밀고 내 글을 써나가기엔 나란 주제가 한 발 한 발 딛고 헤쳐가야 할 갈 길이 멀고도 험하다는 걸 이미 알아서일까요. 이런들 어떠리오 저런들 어떠리오 상사나 고객이 원하는 대로 고쳐주고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쭉 그럴 생각입니다.


진짜로 변한 나에 대해서 그동안 생각해볼 겨를이 없었는데, 서미현의 <날마다 그냥 쓰면 된다>에서 힌트를 얻었습니다. 카피라이터인 저자는 광고주가 원하는 방향에 따라 자유자재로 쓸 수 있다고 했습니다. 어떤 스타일이든 맞춰주도록 훈련되어 있기 때문이죠. 그 기반에는 대중을 상대로 제품을 파는 광고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제품을 구매하도록 설득해야 하는게 주 업무니까 그게 가능한 겁니다. 그래 나는 고객이 독자가 원하는 대로 휘뚜루 바뚜루 맞춰야 하는 글쓴이일 뿐이라는 거죠.


사상가 세네카는 중요한 것은 어떤 대접을 받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이를 견뎌냈는가라고 했습니다. 주변의 놓인 상황이나 이러쿵 저러쿵 코멘트는 내가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반면 그걸 두고 어떻게 할지는 온전히 나에게 달렸습니다. 글을 수정하라는 상사나 고객의 요구에 고집을 피우고 열불내기보단, 내 영혼을 평온하게 지키고, 생산성을 위해 고쳐나가는 게 최선의 대처법이 아니겠는가 싶습니다. 그 글은 기한이 있는 거고, 언젠가는 내 손을 떠나야 하기 때문에 내게 주어진 시간을 지체할수록 나만 결국 손해란 말이죠.


뭐 빨간 줄 가득과 빡빡하게 달려있는 코멘트를 보고 그 어떤 누가 좋기만 하겠는가요. 쓰라린 가슴을 부여잡고 동시에 한숨만 나오지. 세네카는 거기다가 더해 껄껄 웃으라고도 합니다. 세상에 뭐 그리 심각하게 복잡하게 생각해봤자 어차피 너나 나나 다 언젠가는 죽을 운명이고 잘릴 운명이니 화를 내며 보내기에는 우리 인생이 무척이나 짧으니 그냥 웃고 넘어가라 합니다.


“물처럼 되세요. 친구여”


전설의 영화배우 이소룡이 한 말입니다. 무술 최고의 경지를 철학적으로 비유한 말이라고 하는데, 틈새를 흐르는 물처럼 너무 독단적으로 되지 말고 대상에 맞춰서 문제를 해결하거나 피할 생각을 하라고 했습니다. 물처럼 우리 안에 굳어진 게 없고 유연하게 흐른다면 외부의 것들은 스스로 사라질 수 있는 그 가능성도 역시 믿으라는 것. 컵에 따르면 컵의 모양처럼 형태를 띠고, 강에 따르면 기존의 강물과 섞여서 흐르듯 그렇게 내 글쓰기도 변하면 그걸로 ENOU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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