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가 홍보, 마케팅을 하기 위해 평소 뭘 하냐고 물었습니다. B to B든 B to C든 간에 어차피 사용자나 기자들이 알기 쉽게 홍보자료를 작성할 때는 주로 메타포를 사용해야 하기에 다양한 비유나 표현이 들어있는 책들이나 기사를 많이 섭렵하는 편이라고 했습니다. 엔지니어 외길 인생만을 걸어온 질문자가 내 말뜻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알 길이 없지만... 어찌됐든 제대로 된 메타포 사용은 말해 뭐해 정말 중요하고 이는 온전히 개인의 축적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내 경우 은유법, 환유법을 주로 썼습니다. 이 둘은 표현하려는 대상을 다른 대상에 빗대어 나타내는 표현법인 비유법의 일종으로 물론 그 외 직유법, 제유법, 대유법도 있는데, 나도 종종 헷갈리지만 이렇게 이해하면 쉽습니다. 은유법은 A는 바로 B다. 식으로 표현 속에 비유를 숨기는 기법이죠. 모양이나 특성 하나를 딱 잡고 연상 작용에 의하여 새로운 관념을 지니게 되며, 흔히들 많이 봤던 예문은 ‘내 마음은 호수다.’, ‘너는 내 운명’ 이며, ‘X시는 아이들의 천국, 놀이터’, 등이 있습니다.
대한민국 단 1%의 기술 이렇게 이야기하는 건 환유법입니다. 환유법은 사물의 한 모퉁이나 어느 한 특징을 보여서 그걸 전체를 대신하는 대유법의 일종인데, 여기에는 제유법과 환유법이 있습니다.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에서 빵은 먹을 것의 일부입니다. 이처럼 일부로써 전체를 대표하게 되는 것이 제유법, 어떤 사물을 그와 관련 있는 다른 사물을 빌어 나타내는 것은 앞서 말한 환유법인데, 내가 답답할 때 주로 쓰는 ‘내가 핫바지로 보이냐’ 같은 게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핫바지는 바보멍충이를 두고 하는 소리입니다.
이렇듯 은유와 환유의 수서학은 인간이 세상을 보다 더 잘 이해하고 지시하기 위한 소유의 방편에서 생긴 언어활동이라고 어떤 철학자는 말했습니다. 은유법은 세상에 대한 내면적이고 정신적 이해이며, 환유법은 세상을 외면적으로 결합시키거나 분석하는 일종의 과학적 지시 방법이죠. 은유의 경우 주어진 상황에 정확한 단어를 끌어내는, 선택과 집중을 얼마나 잘하느냐에 관련이 있고, 환유는 비슷한 단어를 잘 끌어다 써서 풍부한 묘사를 하고자 의지 역시 반영되어야 합니다.
결국 적절한 메타포를 사용하는 것도, 사용자가 메타포의 사용의미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도 다 개인의 역량에 달렸습니다. 군사독재 시절 검열과 삭제의 칼날 앞에서 해직을 각오한 기자들이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으로 취했던 것이 단신과 행간이었다고 합니다. 기자들이 쓴 1단짜리 기사 문장에서 독자들은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고, 기자들이 문장과 문장 사이의 ‘여백’에 담은 일종의 메타포를 독자들은 잘도 읽어냈다고 합니다. 즉 읽은 이와 쓴 이의 티키타카가 잘 맞아 그 무지막지한 시대를 기어이 견디며 넘어온 것이죠.
종편 뉴스를 즐겨보고 있는데, 대통령부터 시작해서 장관, 정당 대표 등의 이른바 사회고위층의 말과 비유를 두고 그걸 해석하고 의미를 찾는데 양쪽 켠에 자리잡고 앉아있는 패널들이 참 애처롭게 분주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멸치와 콩을 두고 개와 사과를 두고 한 시시껄렁한 것보다, 최근 표현들이 굉장히 다채롭고 등장하는 사물들도 다양합니다. 어김없이 단골손님인 개도 나오고 새우도 나오고 고래도 나오고, 도토리도 나오고, 올해가 토끼해라 그런지 토끼도 자주 등장하고 근데 왜 이렇게 같은 말과 비유를 두고 참 다른 해석들이 나오는지, 그걸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보는 나까지 속 시끄럽고 어지럽습니다.
세상은 시비와 이해의 무덤이라고 하는데, 메타포 사용자나 해석자의 쿵짝이 맞지 않는 특히 요즘을 두고 하는 말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절하지 못한 비유를 들지 못하거나 오역을 할 때마다 남보다 내 비어있는 지혜의 그릇부터 탓해야지 별 수 있겠는지요. 할 것이라곤 닥치고 부단히 글을 보고 마음을 읽고 생각을 적어봐야지요. 적어도 그 지긋지긋한 내로남불을 극렬히 혐오한다고 낯짝 들이밀고 당당하려면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