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가장 비열한 점은 명예를 추구한다는 것에 있고, 이것이야말로 우월함을 드러내는 가장 큰 표시라고 오타 하지메의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서 그랬습니다. 인간은 아무리 많은 재산을 소유한들 아무리 건강과 생활의 안정을 유지한들 타인에게 존경받지 못하는 한 만족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파스칼이 한 말입니다. 근데 잘 보자고요. 작든 크든 타인에게 인정받고 존경받는 건 내가 하는 게 아닌거죠. 나에게 부여된 명예도 마찬가지.
모든 사람들의 명예나 인정같은 건 어찌 보면 선출직 같습니다. 남이 뽑아줘야 당선되는, 그 책임과 권한을 부여받는 정치인 같은…물론 적당한 관심과 사랑을 받기 위해 노력하는 건 본인 성취나 계발에 어느 정도 좋은 영향을 작용하긴 합니다. 허나 그 무게의 추를 타인과 나 사이의 균형점을 정확히 아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아니면 인정감옥에서 평생을 살아야 하는 겁니다. 생각만 해도 주체할 수 없는 피곤함이 확 몰려오지만 살아있는 한 이 고단함은 싫든 좋든 원하든 원치 않든 자연스럽고 당연한 거죠.
여기 오타 하나에 인정 때문에 피곤에 쩐 한 사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내가 아는 후배는 문서를 작성하고 보낼 때마다 힘들어합니다. 바로 어법 때문이죠. 사실 그 친구가 실수하는 오탈자가 대외적으로 보내는 공적인 문서에 있는 것은 그 문서의 내용을 검토하기도 전에 신뢰성에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그의 상사가 매번 다그치고 지적하는 게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근데 이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 괴로워하면 어쩌나. 그는 말했습니다. 고작 오탈자 하나에 울고 웃고, 본인이란 존재가 들쑥날쑥 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슬프고 초라하다고 말이죠.
글쎄 내 경우는 단어 하나, 글 한 줄이 참 중요한, 홍보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그의 말에서 ‘고작’이란 단어는 좀 빼고 싶습니다. 보도자료 뿐만 아니라, 연설문, 영상 자막 등 뭐든 내 손을 떠날 때마다 문서가 띄워져 있는 모니터를 하도 째려봐서 눈에서 수시로 경련이 일어나곤 했습니다. 내 개인으로 나가는 게 아니라 내가 소속된 지자체나 회사를 대표해서 나가는 것이었기에 더욱이나 그랬습니다. 자칫 한 글자가 잘못 나가기라도 하면 가슴이 쿵쾅쿵쾅, 온몸이 찌릿찌릿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불안감이 엄습하기도 했습니다.
폭언 등 직장 내 괴롭힘으로 구설에 올랐던 도미닉 라브 영국 부총리가 사임을 했습니다. 그는 젊고 전도유망했지만, 언론에 따르면 직원들의 보고서에서 오탈자를 보고 망신을 줬고 평소 직원들의 사소한 잘못이나 실수에 불같이 화를 냈다고 합니다. 영국까지 너무 멀다면, 여기 우리의 예가 있죠. 한국에 지사를 둔 일본계 증권사 소속 애널리스트가 보조연구원에게 갑질을 일삼다가 적발돼 징계를 받았습니다. 그의 갑질 중 눈에 들어왔던 건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오타를 내면 1개당 30만원씩 내게 하고, 벌금이 누적되면 술집으로 불러 대신 술값을 치르게 했다는 것
조선시대에는 국가가 출판업을 관리했던 시대라, 오타 세 개까지는 봐주고 개수에 따라 곤장, 감봉, 정직이었고, 윗동네 북한의 경우 어느 매체나 보도에서 오탈자나 잘못이 드러나면 바로 아오지 탄광행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휴~~오탈자는 대수롭지 않은 그 까짓 것이 절대 아니죠. 윗동네 북한에서는 언론인의 생사를 좌지우지했고, 해가 지지 않는 영국의 유망한 관료의 운명을 순식간에 지게 했고, 조선에선 파직에 태형에 그만큼 오타는 결정적인 겁니다. 그래서 후배한테 지면을 빌어 말해주고 싶습니다. 이런 게 대수롭지 않을 수 있는 오타 같은 소소한 게 켜켜이 쌓이면 그게 당신을 나타내는 대수로운 얼굴이자 중요한 실력이 될 것이라고. 그러니 지금의 고뇌와 인내의 강을 함께 건너보자고 말이죠. 그대의 초조함이 결코 시시한 게 아니라고 그렇게 꼭 말하며, 다독여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