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1.16 Mon
할 일을 정리하고 하루를 마무리하기 위해 자리에 앉으니 문득 요즘 하루가 새삼스럽게 길다. 지난 이틀은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하루는 비행기 안에서의 고역 (몸이 아프면 어쩌나 걱정했던 내가 간과했던 아픈 마음), 하루는 막막하기만 한 미래(말 한마디 제대로 할 줄 모르는 나에게 닥친 수많은 과제)로 완전히 패닉 상태에 빠졌다. 쳇바퀴 같은 일상에서 욕심부려 탈출한 곳 치고는 더 큰 벽에 가로막힌 기분이었다. 소매치기를 당하면 어쩌나 전전긍긍, 작은 동양인 여자애에게 누구든 시비를 걸면 어쩌나 전전긍긍, 집을 구하는 내내 스페인어를 몰라 당해야 했던 수많은 거절에 전전긍긍. 이틀 내내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고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맛있지 않았다.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고 싶지 않던 오늘. 느지막이 일어나 이것저것 인터넷을 뒤적거리고, 가장 좋아하는 예능을 보며 스스로를 열심히 달랬다. 괜찮다고. 또 지나면 다 나아질 거라고.
세시쯤 여유롭게, 하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호스텔을 나서 레가네스로 향했다. 그리고 도심으로부터 약 한 시간 거리의 레가네스 역에 도착해서 내렸을 때 나는 깨달았다. 내가 원하는 도피처는 소음이 아니라 고요, 번잡이 아니라 한적, 사람보단 나무를, 빌딩보다는 구멍가게였다는 것을.
천천히 헤쳐나가자. 긴 시간을 나 자신에게 선물하자. 문득 요즘 하루가 새삼 길다는 것이 느껴진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하늘에 뜬 별이 고와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