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를 앞두고
그렇게나 퇴사를 하고 싶어 했으면서 막상 퇴사를 바로 앞둔 지금, 불안하고 공허하다.
남들은 앞을 향해 달려갈 때에 나는 올해를 쉴 생각을 하니 막막하고, 허황된 이상을 바라는 건 아닐까 싶고.
“너무 힘들면 그렇게까지 무리 안 해도 돼.
꿈은 천천히 이뤄도 돼. “
2월 2일이었던 나의 생일날,
해병대를 나오신 외삼촌의 따뜻한 몇 마디가 나의 심금을 울렸다.
버스에서 통화하고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어쩌면 내가 제일 듣고 싶었던 말.
쉼에 대한 내 선택에 대해 확신이 있다가도 없어지던 요즘. 사회적 기준과 잣대, 남들과 비교하며 과연 내 선택이 맞을까 의구심은 정처 없이 나를 괴롭혔던 나날이었다.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남들보다 느린 나는 쉼이 불안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마다 각자의 속도가 있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내속도에 대해 스스로 불안의식을 잠재우고 있었다.
나의 이 쉼은 내 평생 나의 인생에 있어 서사가 되어 줄 수 있도록 정말 잘 보내 보려고 한다. 터닝포인트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얼마 전 졸업작품을 지도해 주신 교수님과의 상담도 나를 지탱케 해 주었던 몇몇 말씀을 기억한다.
“제가 이번에 퇴사를 하고 오랫동안 쉴 결심을 했는데 괜찮을지 모르겠어요. 교수님이 생각하시기엔 어떠실까요? “
“내 생각이 뭐가 중요해. 네 생각이 제일 중요하지.
뭐가 됐든 나는 너를 전적으로 응원하고 존중해. “
뇌리에 박혔던 인상적인 말씀이라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기억한다.
“직선으로 바로 가는 길이든, 돌아가는 길이든 결국엔 네가 가고 싶은 길로 가게 되어 있어. “
지도해 주셨던 교수님이기에 조금 더 객관적이고, 이성적이고 정제된 언어로
버텨봐, 여기서 잠시 쉬는 건 경력에 리스크가 있어,
너무 오래 쉬는 건 좋지 않아.
이와 같은 이야길 해주시는 건 아닐까 잠시 겁먹었던 게 무색할 정도였다.
대화를 하는 동안에도 이런 주옥같은 말씀을 잊지 않으려고 계속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퇴사, 익숙함을 버리고 불투명함과 모호한 낯선 것에 도전할 수 있는 것의 용기.
올해는 나를 위한 갭이어 프로젝트를 실천하기로 한 해이다.
“청춘에게는 이런 마음이 중요하다. 나만의 인생을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 단 한 번뿐인 인생, 제대로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 ”
-나를 모르는 나에게 중-
퇴사를 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쉽게 말해 찌들어져 있는 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많이 지쳐 보인다는 이야기를 매번 들었다. 스스로도 거울을 보면 낯빛이 그러했다. 생기가 사라진 것이다.
전엔 만나면 하이톤의 목소리로 생기발랄한 모습이었다고 했는데 어딘가 다운되어 보인다고들 했다.
회사 생활 4년 차,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서 나의 자아를 찾아가는 느낌이 아닌, 나를 잃어버린 느낌이 드는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일의 성취감과 성장이 없었던 것이 아닌데도. 아마도 내 본래의 성격을 감추고 살아왔었던 것이라 추측해 본다.
취업 전 에버랜드에서 보낸 캐스트 시절을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내 모습이 진짜 나의 모습이라 생각된다.
사람들과 어울리고 웃는 항상 밝았던 모습. 당시엔 서비스업이 내게 천직이라 생각될 정도로 전공이 없었더라면 이곳에 취업했을 거라 자부했다.
그렇게 생각했던 내가 좋아하는 전공을 위해 그 시절에 대한 미련을 남기고 사회로 나아갔다.
사회에서의 나는 말을 많이 아껴야만 했고, 눈치를 계속 보아야만 했다.
정중한 사람으로 무장해서 내면의 소리들은 덮어두었다.
나라는 자아를 더 관찰해 보기로 했다. 나에 대해 더 성찰하고 물음표를 가져보기로.
무엇을 좋아하고, 즐기는지. 나의 강점은 무엇인지. 끊임없이 나에게 의문을 던지며 알아가야 한다.
내 안에 있는 가치를 발견하기 위해 공들여 들여다보려 노력한 시간들이 꽤나 깊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퇴사 후 8개월의 시간 동안 나를 찾는 여행 이후, 이듬해의 나는 조금 더 또렷해진 시선을 가지고 있기를 바라며 이 글을 시작한다.
이듬해 내릴 나의 선택들에 대한 방향의 갈피를 보다 쉽게 잡을 수 있도록 말이다.
-2024.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