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협주 Nov 28. 2023

백은혜 & 이봉련 /연극 세인트 조앤과 햄릿

Aug 12. 2023

취향일까. 전사의 태를 갖췄지만 동시에 근원적인 위태로움(vulnerability)을 갖고 있는 여성캐릭터에 확 끌리는 것 같다.


2년전 부새롬 연출의 햄릿은 충격적으로 재밌었다. 다른 면들보다 그냥 이봉련 배우님의 햄릿이 너무 찰졌다. 특유의 끝음이 올라가는 소리도 재밌고 절규하듯 내뱉는 말들도 멋지고 강약을 오가는 몸짓도 멋졌다. 이정도면 배우 자체가 그 연극의 서사가 되어버린 느낌이랄까. 결국 상까지 타신걸 보면 나만 좋은건 아니었나보다, 심지어 전회차 취소의 온라인 공연이었는데도!

연극을 조금 늦은 나이부터 봤기에 이봉련 배우님의 다른 연극은 본 적이 없다. 그러니까 현장에서 본 적은 한번도 없는거지. 요즘의 난 배우를 쫓아 공연을 보는 덴 별 관심이 없지만 이봉련 배우님의 다른 작품은 꼭 근시일내 보고 싶다. 햄릿을 본 날 '나도 저런 배우가 되고 싶다'는 감각을 오랜만에 새겼다. 아, <배우와 배우가>에서 만난 배우님의 말들 역시 정말 멋졌다. 또 한번 배웠다.


/


세인트 조앤이 엄청 재밌는 공연이었는진 모르겠다. 집에서 온라인극장으로 볼땐 계속 끊었다 재생했다를 반복할 수 있으니 딱히 졸 일은 없었고(졸린 구간이 있더라도 굳이 그 시간을 부러 버텨낼 필요는 없었다는 말이다. 환기하고 다시 보면 되는 일이니), 반대로 힘을 빼고 보니 약간 집중력이 풀어지는 느낌도 있었다. 뭐, 온라인극장으로 볼때 늘상 있는 딜레마다. 그래도 나쁘지는 않다. 공연장에서는 중반부에 거의 70%의 확률로 늘 졸음과 싸우는 편인데 온라인극장으로 볼땐 대부분의 공연을 쾌적한 마음으로 볼 수 있다. 


다시 돌아와서, 백은혜 배우님 너무 멋지다. 국극에서 전미도 혹은 백은혜와 같은 뮤지컬베이스의 배우들을 모셔오는 이유가 분명 있어보인다. 청각적인 힘이 엄청나다. 사실 초반부만 하더라도 굳이 이 역할을 위해 뮤지컬 위주로 활동하는 배우님을 모셔올 필요가 있나 싶었다. 당당하고 찬란한 초반부 조앤은 연기의 난이도가 미친듯이 높아보이지 않았거든. 문제는 그 다음과 또 그다음인데, 전쟁에서 승리한 조앤이 화형대 앞에 서게 되는 장면과 환상장면. 이 세 흐름을 하나로 꿰는 것은 해석력과 캐릭터성이 동시에 요구되는 일이라 생각됐다. 특히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조앤이 화형대 앞에서 무너지는 장면은 배우의 연기적 선택이 강하게 요구되는 장면으로 보이는데 너무 적확했다. 무너져도 조앤답게 무너졌으며 비통함에 빠지더라도 비굴해보이지 않았다. 그냥 멋졌어 전반적으로. 캐릭터의 고저를 다 보이면서 한순간도 찬란함과 당당함을 잃은 적 없는 조앤의 모습이었다. DC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애매한 영웅서사의 음울한 입체성 그런 거 말고 딱 클래식하고 전형적이게 멋진 영웅의 모습. 그런 흐름을 음성적으로 강하게 느낄 수 있어 더 재밌었고 특유의 말투에 중독되는 느낌마저 있었다. 특히 '~예요'라고 말할때 약간의 짱구말투같은 소리가 나오는데 그 부분들마저 너무 좋았다. 자주 연극에서 뵙고 싶어요 배우님. 뮤지컬 안보지만 기회가 된다면 보러 갈게요. 연극은 당연하고요.


이렇게 또 누군가의 팬이 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