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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와 Apr 28. 2023

달팽이와 복숭아청

무용, 우울증, 밭과 달팽이와 복숭아


키우기 전엔 몰랐다. 천도복숭아가 이렇게 맛있는 과일인 줄은. 빠알간 천도복숭아를 아작 깨물면 노오란 속살이 나온다. 과일 가게에서 파는 천도 숭아는 물렁 하지만 밭에서 딴 천도복숭아는 딱딱하다. 따놓고 시간이 지나 후숙이 되면, 물렁해진다. 그렇지만 잘 익은 빠알간 천도복숭아를 바로 따서 슥슥 바지춤에 문지르고 한입 베어 물면, 아작아작 하니 정말 맛있다. 달콤하고 진한 복숭아 향이 입안 가득이다. 일반 복숭아도 딱따기 복숭아와 물렁이 복숭아가 있듯이, 천도복숭아도 그렇다고 생각하면 된다. 다만 겉에 솜털이 없고 매끈하며 껍질이 복숭아보다는 두꺼워 아무리 후숙이 되어도, 손으로 까지지는 않는다는 게 차이점이다. 저 멀리 우리 밭뚝에 심어 놓은 천도복숭아나무가 보인다. 열 그루 정도를 산 것 같은데, 네 그루는 죽고, 남아있는 것은 여섯 그루이다. 사이사이 빨간 천도복숭아가 먹음직스럽다. 밭에 도착해 허둥지둥 소쿠리와 마대 자루를 들고 복숭아나무로 향한다. 밭뚝에는 천도복숭아와 매실나무, 대추나무 등이 심어져 있고, 오디나무 두 그루와 사과나무배나무, 딱따기 복숭아나무들이 그 뒤로 죽-있다. 밭이 너무 넓어 농사짓기가 힘이 들자, 아버지가 나무를 심어버리자고 제안하시어 마음에 드는 유실수 묘목을 골라 아무 기초 지식 없이 설렁설렁 밭 뒤쪽에 심었다. 제대로 관리를 안 해 죽은 나무도 많지만, 이겨내고 살아남은 나무들이 자리를 잘 차지하고 있다.   

   

무용을 전공하여 결혼 후 첫 아이를 낳고, 4년째 되던 해 11월. 무용학원을 차렸다. 워낙 가진 것 없이 시작한 결혼이었기에 교사인 남편의 월급과 부업을 하여 악착같이 돈을 모아 겨우 보증금과 기본 시설만을 갖춘 무용학원이었다. 아이들 가르치는 것은 자신 있었기에 별 어려움 없이 꾸려갈 줄 알았는데 문을 연지 한 달 만에 IMF가 터졌다. 생각보다 힘들진 않았다. 도와주는 후배들이 있어 하루 이틀 학원 장소를 연습실로 대여도 하고, 경기도 변두리여서 그런지 집세도 그리 비싸지 않아 그럭저럭 버틸 수는 있었는데. 한집 걸러 가게 문이 닫히고, 실업자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무용을 배우겠다는 원생이 없었다. 모든 것은 다 지나가기 마련인지라, 시간이 지나면서 돈이 없어 못 달았던 간판도 달고, 학원 시설도 보충하고, 점차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여 원생도 하나둘 늘어났다. 학원 차린 지 7년 만에 원생 100여 명의 동네에서 알아주는 학원이 되었다. 무용 유치원에서부터 대학 입시생까지. 새벽부터 밤까지 눈코 뜰 새 없이 지냈다. 개인적인 삶은 없었고, 그 사이 다시 한번의 임신과 출산을 하여 아이가 둘이 되니 너무 힘들어졌다. 혼자서 아이들을 키워야 했고 아이들은 어린이집부터 시작하여 온갖 학원을 하루 종일 뺑뺑 돌아야 했다. 당연히 감기가 떨어질 새가 없었고, 발육 상태도 안 좋았다. 폐렴에 걸려도 통원 치료만 해야지, 입원을 못 시킬 지경이었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시간이 없어서. 내 아이도 제대로 못 키우고, 남의 아이도 제대로 못 가르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점 우울감이 심해져 잠을 자지 못했고, 잠을 자려고 먹은 한두 잔 술이 매일이 되고. 의욕도 없고 목소리도 안 나왔다. 결정장애가 오고, 무엇보다도 숨이 안 쉬어졌다. 지금 생각하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싶지만, 실제로 그랬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가 엉켜서 제대로 쉬어지지가 않았다. 살고 싶지가 않았다. 일을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에 다들 정신 나간 거 아니냐고 펄쩍 뛰었지만, 학원을 일사천리로 정리하고, 우울증 치료를 받았다. 치료약에 중독되어 약의 양이 점점 늘어날 수 있다는 소리에 겁이 나서 병원에 가다 말다 하다가 안 가버렸지만, 계속 일을 했으면 어떤 불행한 일이 일어났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즈음에 친정아버지께서 큰애가 실업자가 되었으니 본격적으로 우리가 농사를 지어보자고 하셨다. 먼먼 친척뻘 되는 아저씨께서 우리 땅을 논농사를 지으시다가 디스크가 심해져 농사를 못 지으시겠다고 하셔서, 난감해하고 있던 차였다. 우리는 논을 밭으로 만들고, 일일이 돌을 골라내고, 땅을 다졌다. 육체노동을 안 해보다가 하니 처음엔 온몸이 아팠으나, 흙을 만지고, 풀을 뽑고, 새소리 바람소리를 듣고, 온갖 벌레들과 곤충들을 들여다보다 보니 저절로 힐링이 되는 듯하였다. 점점 잠도 잘 오고, 잡생각도 안 나고, 건강해지는 느낌이 들어 한 해 한 해 농사를 짓다 보니 20여 년이 흘렀다. 마대 자루를 들고 제일 크고 빨간 천도복숭아에 손을 뻗어 냉큼 따낸다. 이런, 달팽이가 먼저 와서 동그랗게 갈가먹고는, 투명한 두 뿔로 여기저기를 더듬으며 자기 집인 양 들어앉아 있다. 아무렇지도 않게 손으로 떼어 발로 밟고는 부지런히 복숭아를 딴다. 처음엔 너무 불쌍해서 어찌 죽이냐며 안 죽이고 풀잎에 놓아주었더랬다. 그랬더니 달팽이 천국이 되어 사람 먹을 게 없었다. 달팽이 한 마리가 알을 무지하게 많이 낳는다는 것을 알고, 보이는 대로 죽이기 시작했다. 농약을 안 하고 친환경으로 농사를 짓다 보니 달팽이는 막걸리, 퐁퐁, 천일염 등등 뭘 써도 죽지를 않는다. 먹성도 좋아서 남아나는 게 없다.      


복숭아를 모두 따서 잘 익고 금방 먹을 것 일부를 금방 추려놓고, 나머지는 복숭아 청을 만든다. 깨끗이 씻은 복숭아를 소쿠리에 담아 물기를 말린 후, 복숭아와 황설탕의 비율을 1:1로 하여 청을 담근다. 간간히 안 녹은 설탕이 가라앉기 때문에 바닥까지 휘휘 저어주어야 한다. 복숭아 청은 특히 고기 요리에 쓰면 아주 맛나다. 연육 작용으로 고기가 연해지고, 불고기나 갈비를 재면 아주 맛있게 먹을 수 있다. 고기를 잴 때 복숭아 청이 질긴 고기를 연하게 하여 맛을 내듯이, 밭은 내 팍팍했던 인생을 살아 낼 부드러운 연화제가 되었다.

      

복숭아를 따서 식탁 위 접시에 놓아두면 그 향기가 온 집안에 퍼진다. 밭은 내 우울증을 치료해 준 병원이자 마음의 힐링 장소이고, 또 먹거리 창고이다. 밭에만 왔다 가면 식탁이 풍성해지고 마음 또한 풍요로워진다. 오늘도 밭에서는 달팽이와 나와 복숭아가 익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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