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화 : 마침내 마추픽추에 서다


마추픽추!!!

중남미 여행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 대다수가 궁극적으로는 바로 여기가 목적이고 다른 곳은 들러리로 삼았으리라.


마추픽추!!!

이 이름을 처음 들은 날을 잊지 못한다. 부산 성지곡수원지 아래 연지동과 초읍동에 살던 대학생 몇이 '성지곡 대학생회'란 이름으로 모였다. 그날 나보다 두 살 많은 이가 모임의 회장이 되었는데, 그 기념(?)으로 노래 한 곡을 불렀다. 당시 팝송엔 전혀 문외한이었던 신입생에게 어찌나 감동적이었던지...


'엘 콘도르 파샤',

사이먼과 가펑클 콤비가 불렀던 그 노래. 그 선배는 노래를 끝낸 뒤 이렇게 말했다.

"나는 마추픽추에 가보고 싶다. 거기 가서 잉카의 혼을 느끼고 콘도르와 함께 하늘을 날고 싶다."

고교 졸업 때까지 누구에게서도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 없는 마추픽추, 선각자(?)인 선배 덕분에 1974년 그 이름을 처음 들은 그날부터 마추픽추는 선배의 꿈이자 나의 꿈도 되었다. 그리고 오늘 마침내 마추픽추에 섰다. 세운 지 50년이 다 돼 이룬 꿈, 그 완성의 정점에서 나는 잠시 숨을 멈췄다. 그리고 하늘을 보았다. 콘도르가 날고 있는가를.


(돌에 새겨진 콘도르 문양)


잉카는 '태양의 아들'이요, 마추 픽추(machu picchu)는 '오래된 봉우리'란 뜻이다.

마추픽추 건립에는 두 가지 이론이 있는데, 첫째가 파차쿠티 황제가 황제 전용 궁전으로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설이요, 다른 하나는 잉카제국의 수도 쿠스코가 스페인 군대에 짓밟히자 거기 살던 귀족층이 다시는 적의 침범을 받지 않은 곳을 물색하여 이주한 곳이라는 설이다.

이러다 보니 마추픽추가 잊혀진 도시가 된 까닭도 둘이다. 하나는 관리하기 힘들어 버려졌다는 설과, 이주해온 귀족들이 스페인군에게 옮은 전염병으로 인해 모두 사망했다는 설. 최근에는 급격한 기온 변화로 살지 못하고 이주했다는 이론도 나왔는데 건립부터 멸망까지 이렇게 설이 난립함은 잉카인들에게 문자가 없어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11년, 미국의 역사가이자 탐험가인 하이럼 빙엄이 이 잊혀진 도시를 발견하고,

"이 도시의 매력과 마법은, 세계의 그 어떤 곳과도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라는 말을 한 뒤부터 이곳은 세계인의 꿈속으로 들어왔다.



한동안 이곳에 서서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었다.


쿠스코에 살던 잉카인은 태양신을 믿었다. 처음에는 종교가 정치를 앞질러 태양신 숭앙심이 솟구쳤으나 시간이 가면서 정치가 종교를 누르게 되었고, 이에 반발한 신앙심 깊은 잉카인들이 한 마음으로 태양신만을 섬기며 사는 마을을 이루러 찾아온 곳이 바로 이곳이다.

외부세력의 침범 없이 신앙심 키우기엔 천혜의 요지였지만 살기 위해선 농지를 개척해야 했고, 그 결과 저 멀리 떨어진 수원(水源)으로부터 소위 '잉가 트레인'을 따라 이곳까지 물을 끌어오는 어려운 작업을 했으리라.


물을 해결했으니 다음 문제는 농토 개간. 평평한 곳 없이 전부 비탈인 땅. 밭을 만들기 위해선 돌벽을 쌓아야 했으리라. 한 발만 헛디디면 천길 낭떠러지. 죽음을 무릅써야 할 이 일에는 돈도 명예도 아닌 오직 태양신을 향한 믿음 하나. 그리고 마침내 태양신의 조수인 콘도르가 지키는 천연 요새이자 신전, '태양의 왕국'이 세워졌다.

나는 전날 삭사이와만에서 돌 쌓기를 유심히 보았기에 이곳에서도 그 점을 살펴보았다. 우선 둘은 크기에서 차이 났다. 삭사이와만의 돌은 아주 큰데 비하여 마추픽추는 작았다. 그러니 쌓기는 마추픽추가 수월해야 함에도 그렇지 않다. 삭사이와만에선 힘은 들지언정 목숨의 위험은 없었다. 허나 마추픽추는 자칫하면 떨어지고 떨어지면 사망.


(누군가 찍어 보내준 사진 - 잉카 후예 여인과 그리도 잘 어울린다는데...)

45년 전의 선배가 다시 떠오른다. 뒤에 외국으로 떠났다는 얘기를 끝으로 들은 소식은 없다. 그래서 나는 또 하나의 얘기를 만들었다.

형이 찾아간 곳은 아마 페루의 쿠스코였으리라. 거기서 머물며 안주할 방법을 찾았으리라. 토목공학도였으니 마추픽추로 올라가는 길을 닦았을까. 잉카와 마추픽추와 콘도르. 마추픽추에 가 잉카의 숨결을 느끼며 콘도르의 날갯짓을 보는 게 소원이라던 형...


그때 내 뒤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헌데 내 귀에만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잘 왔네, 친구여! 참 잘 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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