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카인들의 으뜸 자산 세 가지가 ‘직물ㆍ염색, 황금 세공, 석조 건축’이라면, 잉카인들에게 없는 세 가지 문화는 ‘문자, 수레, 철기’다.
잉카인들의 으뜸가는 돌 다루기 기술과 거꾸로 가장 필요했던 철기 문화의 부재(不在)를 생각하게 하는 유적지를 방문했다. 바로 '삭사이와만(Saksaywaman)'
학창 시절로 돌아가면 소설가 현진건 님이 쓴 [불국사 기행]을 떠올려본다. 다보탑을 설명하면서 덧붙인 내용이다.
"만일, 그 탑을 만든 원료가 정말 돌이라면, 신라 사람은 돌을 돌같이 쓰지 않고 마치 콩고물이나 팥고물처럼 마음대로 뜻대로 손가락 끝에 휘젓고 주무르고 하는 신통력을 가졌던 것이다. 귀신조차 놀래고 울리는 재주란 것은 이런 솜씨를 두고 이름이리라."
오늘 관광할 곳은 쿠스코(잉카제국 수도이며 마추픽추 가기 위한 전진기지) 교외 유적으로 '삭사이와만', '피삭', '살리나스 염전', '모레이', '친체로'라고 운을 뗀 가이드는 갑자기 목청을 높였다.
"오늘 갈 곳 둘러보고 오면 내일 갈 마추픽추는 아무것도 아니란 걸 알게 될 겁니다. 잉카인의 기술 아니, 기술혼이 집약된 곳입니다."
우리는 모두 의아해했다. 세상에 마추픽추보다 더 나은 곳이 쿠스코에 있다니... 그래서 이리 물을 수밖에.
"그럼 왜 마추픽추가 더 알려졌지요?"
"바로 전망과 사진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삭사이와만에 올라갔다.
그리고 우리는 가이드가 왜 그리 탄복했는가를 알았다.
그리고 누군가 쿠스코에 오게 되면 반드시 이곳을 들르라고 말할 의무를 느꼈다.
그냥 보면 큰 돌을 쌓아 만든 성벽(?)이랄까. 그래서 지나치면 '아, 거기 돌로 담쌓아놓은 곳', 정도로 기억될 곳. 허나 솜솜 뜯어보면 잉카인들의 솜씨에 두려움을 느낀다.
우선 사진 하나를 보자. 쿠스코 최대 번화가인 아르마스 광장 골목길을 따라 사람들이 무리 지어 사진 찍는 곳에 이르면 '12각돌'이 나타난다. 가운데 큰 돌을 중심으로 11개의 돌이 둘러싸 12면의 각을 형성했는데 그 사이가 얼마나 정교한지 면도날 하나가 들어갈 틈이 없다고 한다.
잉카인들은 하늘에선 독수리, 땅에선 퓨마, 지하에선 뱀이 지배한다고 믿었다. 그리고 잉카제국의 수도 쿠스코는 퓨마의 형상을 하고 있다. 그 가운데 ‘삭사이와만’은 퓨마의 머리에 해당되는 곳으로 쿠스코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요새라 한다. (요새 대신 제의<祭儀>가 이루어진 신성한 공간이라고 하는 학자도 있다.)
여기에 쌓은 돌은 작아도 1톤이요 300톤 넘는 돌도 수없이 많다. 단순히 돌만 쌓았다면 다른 곳에도 흔히 볼 수 있으니 별것 아니니라. 허나 가만 보면 가지가지의 기하학적인 문양으로 쌓았다. 즉 반듯하지 않은 굴곡 많은 형태로.
돌 싸우기 가장 쉬운 방법은 사각형으로 반듯하게 잘라 벽돌 쌓기 형태로 쌓으면 된다. 그런데 왜 이렇게 기기묘묘한 모양으로 힘들게 쌓았을까? 게다가 앞부분은 왜 약간 볼록하게 깎아 튀어나오는 느낌을 주었을까?
일반적인 얘기로는 이런 기하학적 짜맞춤이 지진이 많은 이곳에서 쉬 무너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 한다. 잡초 하나 나지 않을 정도로 꼭 맞게 쌓았으니 일리가 있다. 허지만 나는 인문학도가 아닌가. 다른 이유를 나름대로 생각해 보려 했다.
문자가 없던 그 시절 이러한 문양이 어떤 의미를 전달하려 함이 아닐까 하고. 즉 그냥 석벽이 아니라 일종의 석벽화로 이곳 축성에 관한 사실이나 이곳 건립의 목적 아니면 그들의 생활상을 알려주려고...
돌에다 문양을 새긴(우리나라의 마애불상 같은) 게 아니라 돌로 쌓아 문양을 만들었다면 언뜻 보아도 그 형상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뱀 모양처럼 뚜렷한 돌 쌓기도 있다. 또 무슨 문양인지 아직 파악하지 못해서 그렇지 곳곳에 새겨 넣었다고 본다면 그런 문양이 어떤 의미를 지녔으리라 함은 짐작할 수 있으리라.
원시인들이 거대한 돌을 쪼개는 방법은 현재 알려진 바로는 작은 구멍을 뚫어 그 사이에 바짝 마른나무를 박은 뒤 물을 부으면 나무가 불어나면서 그 팽창하는 힘으로 돌을 쪼갠다.
이때 두 가지가 필요하다. 작은 구멍을 낼 때와 쪼갠 돌을 다듬을 때 철로 된 도구가. 정(釘)으로 구멍을 뚫고 단단한 철로 다듬으면 되니까. 그런데 잉카인들에겐 쇠가 없었다. 그러면 방법은 쪼개게 될 돌보다 더 강한 돌로 구멍을 뚫고 갈아야 한다. 그게 얼마나 힘든 작업이었을까?
더욱 잉카인들이 만든 석조 건축물은 사각형이 거의 없다. 쪼개기 가장 쉬운 방법이 사각형인데 굳이 일부러 만든 듯 원형, 사다리꼴, 마름모꼴, 또 다각형... 왜 이랬을까, 그곳은 지진이 잦은 지역이다. 즉 지진이 오면 대충 쌓았다간 무너져 내린다. 바로 이런 자연재해에 대비하기 위해서라고.
지금까지 지진으로 다른 곳은 무너졌지만 잉카인들의 유적은 끄떡없었다는 사실이 이를 반증하는 거라고 학자들은 말한다. (우리나라 한옥의 주춧돌도 반듯하지 않고 굴곡져 있을 때 기둥이 더 단단하게 선다고 한다)
오늘 들른 곳은 대부분 돌 쌓기와 관계있다. 누군가의 우스개가 떠오른다. 만약 올림픽에 ‘돌 쌓기 대회’가 있다면 챔피언은 잉카인일 거라고. 어마어마한 크기와 무게의 돌을 쌓아 올리면서 면도날 하나 들어가지 않을 만큼 정밀한 그들의 석공술은 그야말로 귀신조차 놀래고 울리는 재주라고 할 밖에...
*. 커버 사진은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본 쿠스코 시내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