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하나>
- 구멍 하나가 수천 명 먹여 살리다 -
잉카인들의 직물 기술과 황금 세공과 돌 쌓기(석조)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한들 생존에 꼭 필요한 ‘소금’이 없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들이 수도로 정한 쿠스코는 해발 3400m 고산지대, 바다까지는 너무 멀었다. 게다가 잉카인들에게는 수레가 없었다. 멀리 바다까지 가서 소금을 구한들 고산지대까지 어떻게 운반했을까? 아마도 소금을 쉽게 구하지 못했다면 잉카제국은 존립할 수 없었으리라.
역사를 통틀어 소금의 이용은 문명 발전에 주축이 되어왔다. 과거 염호(鹽湖 : 소금 호수)가 있거나 암염(巖鹽 : 소금이 굳어진 돌)이 나는 곳이 교역 중심지임을 보면 알 수 있으리라. 월급을 가리키는 "salary"(샐러리)가 소금을 가리키는 라틴어에서 비롯되었는데, 이는 로마 군인들이 가끔은 소금으로 보수를 받았기 때문으로, 이로 보아 한때는 금과 가치가 거의 동등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소'와 '금'처럼 소중히 여기란 뜻에서 ‘소금’이라 이름 붙였다든지, 소금을 '작은 금(小金)'이란 뜻으로 풀이하는 사람도 있다. 헌데 이처럼 귀한 소금이 쉼 없이 줄줄 흘러나온다면...
오후에 '살리나스(Salinas) 염전'을 찾아갔다.
해발 3,000m 이상 고산지대인 이곳이 예전엔 바다였다고 하면 믿어질까? 자연의 신비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하기야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암각화라면 국보 285호인 반구대 암각화인데 그곳이 예전에 바다였다니 일 년에 몇 번이나 찾아가는 나도 믿기지 않는데...
전세버스 기사가 염전을 한눈에 내려다보는 계곡에 세우자 다들 입에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우리가 서해안 비금도 등에서 보던 염전과는 전혀 달랐다. 작은 건 두 평쯤, 커봐야 열 평도 채 안 되는 수천 개의 염전이 빈 곳 하나 없이 빽빽이 다랭이논처럼 펼쳐져 있지 않은가.
이 거대한 염전이 여기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까닭은 수십만 년 전 지각 변동에 따라 바다가 융기해 땅으로 변하면서 땅속에 암염(巖鹽)을 형성하였다. 그러다가 지하수 한 줄기가 그 암염층을 뚫고 나오게 되었고, 그걸 발견한 잉카인들이 수로를 깔고 V자 형 계곡에 수천 개의 염전을 만들었다.
신은 평범한 사람은 살 수 없는 이곳에 터를 닦은 의지와 인내와 열정에 감탄하여 잉카인에게 선물을 주려 했음인가? 이렇게 하여 오늘날까지 생산 가능한 염전이 탄생했다. 게다가 이 소금의 특징은 간수가 없어 천일염과는 달리 쓴맛과 떫은맛이 없고 아토피 피부병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알려졌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이야기 둘>
- 잉카인은 농사도 과학적으로 짓다 -
산골에 살다 보니 농사 정보에 귀를 기울인다. 요즘 가장 많이 듣는 말이 '과학영농'이다. 농사도 과학적으로 지어야 수지타산이 맞는다는 뜻이리라. 요즘은 농촌에서도 머리 잘 굴리면 도시에서 기업 하는 사람 못지않게 수입이 좋다는 말이 나온다. 즉 영리하고 젊은 사람이라면 도전해 볼 만한 곳이 시골이라고.
살리나스 염전을 보고 난 뒤 잉카인들의 과학영농을 엿볼 수 있다는 ‘모레이(Moray)’를 찾아갔다. 이곳은 쿠스코에서 북동쪽으로 약 40㎞ 떨어져 있다. 모레이를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잉카제국의 ‘농업기술 연구소’라 할 수 있는데, 해발 3,500m에 계단식 경작지로 돼 있다.
가장 윗부분과 가장 아래층까지의 높이는 무려 140m나 되며 총 24개의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에 주목해 본다. 즉 각 층 사이의 간격이 일반 성인의 키만큼 높고, 맨 아래층과 맨 위층이 5도 차이가 난다. 이 온도 차를 바탕에 깔고 이곳에 감자 옥수수 등 여러 농작물을 심었다.
즉 이 층계에 따른 농작물의 생육 상태를 보고 어떤 높이에서 어떤 농작물이 잘 자라고 병에 잘 안 걸리는가를 연구했으리라 짐작케 한다. 그 결과 잉카인들은 가장 위층엔 고도가 높은 대신 기온이 낮아도 잘 자라는 감자를 심었고, 가장 낮은 층에는 따뜻한 곳에서만 자라는 옥수수를 심었다.
그런데 이곳이 2009년 ~ 2010년 우기 동안 유례없는 집중호우를 맞아 매우 손상되었는데 그 뒤 복구를 하긴 했어도 원형의 모습을 되찾진 못했다고 하니 그저 아쉬울 뿐.
*. 커버 사진은 2000개쯤 된다는 빽빽이 들이찬 '살리나스 염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