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화 : '바예스타스 섬'에서 엄청난 새똥을 보다


마추픽추를 다녀온 뒤 긴장과 설렘으로 잠을 제대로 못 잔 한을 풀려고 이른 시간에 잠자리에 들었다가 일어났다. 오늘은 전세 낸 버스를 4시간 타고 ‘파라카스(Paracas)’로 가야 한다. 가는 길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가이드가 “가보면 압니다.” 했다.

여태까지 버스 타고 제법 오래갈 때면 ‘주변 경치 참 좋습니다. 자지 말고 꼭 보세요.’ 했는데 이번에는 왜? 그 의문은 곧 풀렸다. 가는 내내 모래뿐이었으니까. 가끔 건물이 보였어도 한 채나 두 채, 그것도 집이라기보다는 초소로 보였고. 그랬다. 우리는 사막을 가로질러 갔다. 이름 하여 ‘와카치나(Huacachina) 사막’


파라카스-와카치나 사막.jpg (와카치나 사막)


파라카스에선 호텔다운 호텔이 거의 없다. 우리 팀이 들어간 호텔도 3성급이라는데 우리나라로 치면 시골 여인숙 정도랄까. 그래도 바닷가라 전망 하나는 나무랄 데 없었다. 그래, 이런 전망에 잠만 잘 수 있다면 더 무엇을 바라랴.

아침에 일어나 작은 포구로 나왔다. 우리나라 살고 있는 곳에서도 20분만 가면 정자항이 나오는데 크기도 분위기도 비슷하다. 그럼 차이점은? 펠리컨이다. 파라카스는 사막 끝에 자리한 작은 어항(漁港)으로 이름이 높은데 일단 일 년 내내 기후가 쾌적하고 해산물이 풍부한 데다 항구 어디에서든 펠리컨을 볼 수 있다.


바라보고 있는 눈에도 펠리컨들의 다이빙은 계속된다. ‘원샷 원킬’이라 할까, 한 번 물속에 들어갔다 나오면 물고기가 부리에 물려있다. 그러나 이곳이 아무리 팰리컨이 많다고 해도, 그들의 재롱을 볼 수 있다고 해도 ‘바예스타스섬(Isla Ballestas)’이 없다면 찾아올 리 있을까? 거기로 가기 위해선 반드시 파라카스로 가야 한다. 그 섬을 왕복하는 보트 투어가 그곳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파라카스-펠리컨.jpg (포구 앞에 놀던 팰리컨이 먹이사냥하다가도 배가 들어오면 배 가까이 몰려듦)


바예스타스 섬은 세 가지로 유명하다. 100만 마리의 새떼와 수십만 마리의 물개 (바다사자 포함), 그리고 구아노(guano). 배를 타기 전에 가이드가 준비물을 하나 얘기했다. ‘비옷’. 하늘을 보니 구름 한 점 없는데 비옷이라니. 짐작에 파도가 세 바닷물이 덮치는가 보다 여겼다.


바예스타스 섬 가는 길에 뭐라 외치는 소리에 눈을 주니 온 산을 두른 기이한 문양이 보인다. 어찌 보면 촛대요, 또 어찌 보면 삼지창 같기도 하다. 이 문양은 하도 신기해 외계인이 만들었느니 하는 ‘나스카 라인’이 만들어진 시기와 비슷한 때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곳이 행정지역 상 피스코 주(州)에 들어가기에 어떤 이는 나스카 라인에 견주어 ‘피스코 라인’이라고 부르고. 우리가 일정 때문에 경비행기 타고 '나스카 투어'를 하지 않은 아쉬움을 작으나마 여기서 맛보았다고 해야 할까.


파라카스-신비의 문양.jpg (보는 사람에 따라 촛대로, 삼지창으로, 심지어 세 그루의 나무로 보인다고 함)


바예스타스 섬에 가까이 가자 저 멀리 섬의 모습이 약간 검어 보였다. 바위에 이끼가 말라붙어 오래돼 저런 빛깔일까 하는데 가이드가 말했다.

“저게 구아노입니다. 쉽게 말하면 새똥이 쌓여 이루어진 거름 덩어리입니다. 7년에 한 번씩 6천 톤을 캐내 수출하는데 칠레의 효자 수출품 가운데 하나입니다.”

세상에 새똥이 쌓여 산을 이루고, 그렇게 형성된 거름을 수출하다니? 그제사 우리 일행은 비옷을 왜 준비해야 하는지 깨달았다. 배 위로 날아온 새들이 시도 때도 없이 퍼질러대니 한두 번은 맞을 수밖에. 내 비옷 위로도 세 무더기나 떨어졌다.


이 구아노엔 아픈 사연도 숨어 있다. 이를 차지하기 위해 전쟁도 일어났다니... 1864 ~ 1866년 사이 스페인과 페루-칠레 동맹군 사이에 친차(Chincha) 섬의 구아노를 둘러싸고 전쟁을 치렀단다.


파라카스-바예스타스4.jpg (새와 새똥이 범벅이 된 바예스타스 섬)


고등학교를 다닌 적이 있다면 생물 시간에 다윈의 진화론을 배웠을 테고, 그가 그 이론을 완성한 곳이 ‘갈라파고스 제도’라는 설명을 들었으리라. 이 바예스타스 섬은 비록 갈라파고스 제도보다 크기는 훨씬 못 미치지만 다양성에 있어서는 별 차이가 없다고 한다. 일인당 150만 원쯤 드는 갈라파고스 제도보다 상대적으로 가기 쉬워서 '가난한 사람을 위한 갈라파고스' 혹은 '작은 갈라파고스'라고 부른다.


바예스타스 섬엔 드나드는 새가 약 1억만 마리가 된다고 알려졌는데, 그 가운데서도 명물은 작고 귀여운 펭귄인 ‘훔볼트 펭귄’이다. 펭귄과 다른 새들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꽤액 하는 소리에 작은 여(바위섬)를 보니 엄청난 숫자의 물개가 한쪽에선 누워 있고, 다른 쪽에선 사랑을 나누고 있다.

왜 이곳을 달리 ‘물개섬’이라고도 하는지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 근심 없이 살아가는 물개를 보면서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다. 저놈들이 우리나라 동해나 서해나 남해 어느 바닷가에 산다면 남아났을까? 그토록 정력에 좋다는 해구신(海狗腎) 탐닉자들이 저렇게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을까?


파라카스-바예스타스3.jpg (새 다음으로 많은 물개들이 사랑을 속삭이는 장면)


새똥, 그로 인한 전쟁, 물개 등 볼거리와 생각거리를 제공해 준 바예스타스 섬! 그래 여행은 바로 이 맛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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