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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Apr 15. 2024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98)

제98편 : 오세영 시인의 '나무처럼'

@. 오늘은 오세영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나무처럼
                         오세영

  나무가 나무끼리 어울려 살듯
  우리도 그렇게
  살 일이다.
  가지와 가지가 손목을 잡고
  긴 추위를 견디어 내듯

  나무가 맑은 하늘을 우러러 살듯
  우리도 그렇게
  살 일이다.
  잎과 잎들이 가슴을 열고
  고운 햇살을 받아 안듯

  나무가 비바람 속에서 크듯
  우리도 그렇게
  클 일이다.
  대지에 깊숙이 내린 뿌리로
  사나운 태풍 앞에 당당히 서듯

  나무가 스스로 철을 분별할 줄을 알듯
  우리도 그렇게
  살 일이다.
  꽃과 잎이 피고 질 때를
  그 스스로 물러설 때를 알아야 한다
  - [천년의 잠](2012년)

  #. 오세영 시인(1942년생) : 전남 영광 출신으로 1968년 [현대문학]을 통하여 등단
  제1회 [소월시문학상] 수상자이며, 서울대 국문과 교수로 퇴직한 뒤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왕성하게 시를 씀




  <함께 나누기>

  제가 여행 중이라 공부해서 달지 못하고 예전에 저장해놓은 글(시 혹은 수필)을 덧붙입니다. 나중에 집에 돌아가면 새로 달겠습니다.



  나무처럼 살 일이다.
  나무는 홀로 살지 않는다. 심산계곡의 나무든, 막막 들판의 나무든, 번잡 도회의 나무든 나무는 항상 나무들과 더불어 산다. 더불어 산다는 것은 서로 의지하며 산다는 것, 나무는 백화난만한 봄도, 녹음방초의 여름도, 북풍 한설의 겨울도 함께 맞고 함께 견디면서 난다.

  꽃잎과 꽃잎을 뺨에 부비며 보낸 봄, 잎새와 잎새들을 가슴에 안고 지낸 여름, 가지와 가지를 손목 잡고 이겨낸 겨울은 얼마나 평안했던가.  나무는 항상 더불어 사는 까닭에 외롭지가 않다. 더불어 산다는 것은 또 나누며 산다는 것, 나무는 한 샘에 같은 뿌리들을 뻗어 갈증을 푼다.
  나무는 똑같이 잎을 펼쳐 대기의 이슬을 받아먹는다. 나무는 평등하게 햇빛을 나누어 쪼일 줄을 안다. 빈익빈 부익부는 인간의 탐욕, 나무들의 나라에는 탐욕이 없다. 주어진 환경대로 주어진 은총대로 서로 나누며 살뿐......

  나무처럼 살 일이다.
  나무는 결코 고개를 숙이고 살지 않는다. 산속의 당당한 전나무든, 강변의 연약한 갈대든, 들의 키 낮은 다복솔이든 나무들은 항상 위를 쳐다보며 산다. 위를 쳐다보고 산다는 것은 곧 하늘을 바라보고 산다는 것, 살을 에는 추위가 닥쳐와도, 사나운 광풍이 몰아쳐도, 꽃향기가 코끝을 간질일 때에도 나무는 결코 무릎을 꿇거나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는다. 푸르른 하늘을 우러르면서 나무들은 자란다. 빛을 향해서 자란다.
  위를 쳐다보며 산다는 것은 또한 굽히지 않고 산다는 것, 비록 흔들릴 때도 있지만, 등질 때도 있지만 나무는 차라리 꺾여 쓰러질지언정 결코 자신을 굽히지 않는다. 하얗게 뒤집어 쓴 눈 더미 속에서도 꼿꼿하게 고개를 쳐든 저 나무들의 머리를 보아라. 비록 그 무게에 짓눌려 가지를 부러뜨린다 하더라도 그는 차갑게 얼어붙은 영하의 하늘을 우러른다.

  나무처럼 살 일이다.
  나무는 결코 철을 놓치지 않는다. 봄과 여름을, 가을과 겨울을, 계절의 변화를 분명히 안다. 울 안의 흐드러진 꽃나무든, 과원의 무르익은 과목이든, 산 속의 청청한 낙락장송이든 나무는 항상 제 철을 놓치지 않는다.
  철을 놓치지 않는다는 것은 올 때와 갈 때를 안다는 것. 사랑할 때와 이별할 때가 있듯, 세상에 태어날 때와 하늘로 돌아갈 때가 있듯 나무는 꽃을 피워 올릴 때와 열매를 맺을 때를 가린다. 꽃봉오리가 활짝 벙그는 봄날 아침은 얼마나 가슴 벅찼던가. 고운 단풍잎이 우수수 질 때는 또 얼마나 가슴 아팠던가. 나무는 그처럼 올 때와 갈 때를 안다.

  철을 놓치지 않는 다는 것은 또 분수를 지킬 줄 안다는 것, 나무는 항상 모자람도 넘침도 없이 산다. 산에서는 산의 키만큼, 들에서는 들의 키만큼, 집에서는 집의 키만큼 제 키를 지키고 사는 나무.  우림에서는 넓은 잎을, 사막에서는 바늘잎을 피우는 그 조화로운 나무. 너무 많이 맺은 풋 열매들을 스스로 떨어뜨릴 줄을 아는 그 넉넉한 생각, 숨겨진 예지를 보아라.

  나무처럼 살 일이다.
  나무가 나무끼리 어울려 살듯, 밝은 하늘을 함께 우러러 살듯, 스스로 철을 분별하며 다소곳이 살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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