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Apr 17. 2024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100)

제100편 : 허영자 시인의 '무지개를 사랑한 걸'

@. 오늘은 허영자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무지개를 사랑한 걸
                                  허영자

  무지개를 사랑한 걸
  후회하지 말자

  풀잎에 맺힌 이슬,
  땅바닥을 기는 개미
  그런 미물을 사랑한 걸
  결코 부끄러워하지 말자

  그 덧없음
  그 사소함
  그 하잘것없음이

  그때 사랑하던 때에
  순금보다 값지고
  영원보다 길었던 걸 새겨두자

  눈멀었던 그 시간
  이 세상 무엇과도 바꾸지 않을
  기쁨이며 어여쁨이었던 걸
  길이길이 마음에 새겨두자
  - [무지개를 사랑한 걸 후회하지 말자](1998년)

  #. 허영자 시인(1938년생) : 경남 함양 출신으로 1962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 우리나라 최초 ‘女子시인동인’인 <청미회>를 1963년 조직했으며, 성신여대 국문과 교수로 근무하다 정년퇴직 후 팔순이 넘은 나이에도 시 쓰기에 몰두함




  <함께 나누기>

  무지개는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다리로서 '희망'을 상징하는가 하면, 서양에선 '행운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또 성경 [창세기]에 무지개는 노아의 대홍수 후에 하느님이 다시는 물로 벌하지 않겠다고 사람들에게 약속한 증표로 나옵니다.
  최근 미국 · 영국 등의 서구권에선 해마다 6월이 되면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이 거리 곳곳에 걸립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무지개가 뜨면 다들 좋아합니다. 특히 쌍무지개 뜨면 행운이 찾아온다고 믿어 무지개를 보며 기도까지 합니다.

  시로 들어갑니다.

  "무지개를 사랑한 걸 / 후회하지 말자"
  시 전체를 꽉 잡는 시행입니다. 그러면서 의아함도 주지요. 무지개를 사랑한 걸 후회할 사람 있을까 하고. 동양이나 서양에선 모두 긍정적인 의미인데... 특히 다음 행 '풀잎 이슬과 개미 같은 미물 사랑함을 부끄럽게 여기지 말자'란 시행과 연결될 때는.

  "풀잎에 맺힌 이슬, / 땅바닥을 기는 개미 / 그런 미물을 사랑한 걸 / 결코 부끄러워하지 말자"
  여기서 개미 같은 미물 사랑함을 부끄러워하지 말자는 이해가 됩니다. 하잘것없는 것, 참으로 지나쳐버려도 되는 것조차 사랑하자란 뜻이기에. 헌데 앞에 나온 '무지개를 사랑하고 이슬 사랑함을 부끄러워하지 말자'가 자꾸 걸립니다.
  둘의 공통점을 파악해 보니 무지개든 이슬이든 한순간 생겨났다 사라지는 존재입니다. 달리 말하면 덧없음의 상징이지요. 아무리 무지개가 희망이나 행운을 상징해도, 이슬이 청신함과 영롱함을 지닌다 해도 순간적으로 나타났다가 이내 사라지니 애달픕니다.

  "그 덧없음 / 그 사소함 / 그 하잘것없음이 // 그때 사랑하던 때에 / 순금보다 값지고 / 영원보다 길었던 걸 새겨두자"
  무지개나 이슬이 찰나에 사라지기에 덧없고, 개미 같은 미물이 볼품없어도 그런 존재 사랑하던 그때는 순금보다 값지고 영원보다 길었습니다. 지금 아내(또는 남편)의 얼굴을 보면 참 많이 늙었습니다. 아픈 날이 아프지 않은 날보다 많습니다. 허나 처음 만나던 그때를 생각해 봅니다.

  "눈멀었던 그 시간 / 이 세상 무엇과도 바꾸지 않을 / 기쁨이며 어여쁨이었던 걸"
  첫 만남에서 기쁨으로 엮은 사랑이 지금의 하잘것없음과 안쓰런 심정을 꼭꼭 눌러줍니다. 지금은 무지개를 봐도 덤덤하지만 어릴 때 처음 무지개를 보며 꿈꾸었던 그 시절로 돌아가면 절로 입가에 미소가 벙긋하면서...

  우리는 다들 첫사랑의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첫사랑 그 순간만큼은 눈이 멀어 그것만이 삶의 모두가 되었던 추억 가집니다. 아름다운 추억은 부끄러움이 아니고 고이 간직해야 할 보물입니다. 다시 한번 무지개를 보며 가슴 설레던 그때로 돌아가자고 시인은 말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99)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