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Apr 30. 2024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107)

제107편 : 공광규 시인의 '담장을 허물다'

@. 오늘은 공광규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담장을 허물다
                                공광규

  고향에 돌아와 오래된 담장을 허물었다
  기울어진 담을 무너뜨리고 삐걱거리는 대문을 떼어냈다
  담장 없는 집이 되었다
  눈이 시원해졌다

  우선 텃밭 육백 평이 정원으로 들어오고
  텃밭 아래 살던 백 살 된 느티나무가 아래둥치째 들어왔다
  느티나무가 느티나무 그늘 수십 평과 까치집 세 채를 가지고 들어왔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벌레와 새소리가 들어오고
  잎사귀들이 사귀는 소리가 어머니 무릎 위 마른 귀지 소리를 내며 들어왔다

  하루 낮에는 노루가
  이틀 저녁은 연이어 멧돼지가 마당을 가로질러 갔다
  겨울에는 토끼가 먹이를 구하러 내려와 밤콩 같은 똥을 싸고 갈 것이다
  풍연초꽃이 하얗게 덮은 언덕의 과수원과 연못도 들어왔는데
  연못에 담긴 연꽃과 구름과 해와 별들이 내 소유라는 생각에 뿌듯하였다

  미루나무 수십 그루가 줄지어 서 있는 금강으로 흘러가는 냇물과
  냇물이 좌우로 거느린 논 수십만 마지기와
  들판을 가로지르는 외산면 무량사로 가는 국도와
  국도를 기어 다니는 하루 수백 대의 자동차가 들어왔다
  사방 푸른빛이 흘러내리는 월산과 성태산까지 나의 소유가 되었다

  마루에 올라서면 보령 땅에서 솟아오른 오서산 봉우리가 가물가물 보이는데
  나중에 보령의 영주와 막걸리 마시며 소유권을 다투어 볼 참이다
  오서산을 내놓기 싫으면 딸이라도 내놓으라고 협박할 생각이다
  그것도 안 들어주면 하늘에 울타리를 쳐서
  보령 쪽으로 흘러가는 구름과 해와 달과 별과 은하수를 멈추게 할 것이다

  공시가격 구백만 원짜리 기울어가는 시골 흙집 담장을 허물고 나서
  나는 큰 고을의 영주가 되었다
  - [담장을 허물다](2013년)

  #. 공광규 시인(1960년생) : 충남 청양 출신으로 1986년 [동서문학]을 통해 등단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 지냈으며, 현재 경기도 고양시에 살며 기발하면서도 참신한 발상의 시를 쓴다는 평을 들음





  <함께 나누기>

  처음 우리 집 방문하는 이들이 마을 아래를 내려다보며 하는 말,
  "와, 전망 직이네요!"
  그다음에 이어하는 말,
  "마당과 텃밭이 꽤나 넓은데 모두 몇 평이에요?"
  그러면 제가 이리 말합니다.
  "등록된 평수를 묻는 거라면 400평 조금 안 되나, 제 심리적 평수는 10만 평쯤 됩니다."
  무슨 말인가 하여 멀뚱히 쳐다보면,
  "아, 저 아래 보이는 언덕과 개울과 논밭과 산과 구름이 머무는 평수까지 합치면 그렇다는 말입니다."


  시로 들어갑니다. 오늘 시는 길지만 어렵지 않을 겁니다.

  "고향에 돌아와 오래된 담장을 허물었다"
  흙담은 보기엔 좋으나 허물어지기 십상입니다. 아는 이도 흙담이 다 무녀져가는 오래된 한옥을 샀는데 새로 쌓으려니 돈 많이 든다는 말에 (힘도 부치고) 고민하다가 결국 무너뜨리고 담을 없었답니다.
  이웃에선 블록으로 담 만들지 왜 그러냐 하며 조언을 해줬지만 허물고 나니 그리 시원할 수 없었다네요. 그 얘길 듣고 제가 말했지요. 아마 다시 하게 될 거라고. 아니나 다를까 이웃집 개들이 드나들며 똥을 싸고, 고라니가 들어와 남새밭을 작살내는 일을 당한 뒤 다시 펜스를 쳤답니다.
  
  "연못에 담긴 연꽃과 구름과 해와 별들이 내 소유라는 생각에 뿌듯하였다"
  아주 오래전 '강아지똥'으로 유명한 권정생 님 댁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마당에 풀만 자욱했는데 가만 보니 사이사이 토마토도 보이고 고추도 보였습니다. 선생님은 풀이 덜 자란 곳만 골라 먹거리를 심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분에겐 잡초나 남새나 같은 풀일 뿐 다름없었습니다.
  화자에게도 그랬을 겁니다. 낮에는 노루가 놀다 가고, 밤에는 멧돼지가 마당을 가로질러 가고, 겨울엔 토끼가 먹이를 구하러 내려오고. 야생동물과 더불어 사는 자세, 참 바람직하지요. 허나 우리 대부분은 그들의 출입을 막기 위해 담장을 높이 쌓습니다.

 "공시가격 구백만 원짜리 기울어가는 시골 흙집 담장을 허물고 나서 / 나는 큰 고을의 영주가 되었다"
  담장 하나 허물고 큰 고을 영주가 된 듯한 기분을 느낀다면 어느 누군들 담장을 허물지 않는 이 있을까요? 이제 우리는 이 시에 나온 '담장'은 물리적 담장이 아니라 심리적 담장임을 다 압니다. 그걸 무너뜨려야 하건만 더 높이 쌓으려 하니...
  가난한 삶은 돈 없는 삶이 아니라 '담장 안에 자기를 가둬놓고 사는 삶이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벽이 높으면 자기 소유가 줄어지니 오히려 가난해집니다. 어차피 내 소유라는 건 잠시 빌린 것일 뿐, 지니기보다 바라볼 수만 있어도 족하다는 마음으로 시인은 이 시를 썼지 않나 생각합니다..


(10만 평이 넘는 우리 집 마당?)


작가의 이전글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106)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