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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May 06. 2024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110)

제110편 : 황규관 시인의 '인간의 길'

@. 오늘은 황규관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인간의 길
                         황규관

  고래의 길이 사라지고
  너구리의 길과
  갯지렁이의 길과
  제비꽃의 길과
  딱정벌레의 길과
  북방개개비의 길과
  굴참나무의 길과

  피투성이가 된 고양이가 버려져 있다
  그리고 인간의 길옆에
  드디어 인간의 길이 생겼다

  북방개개비의 길이 있고
  제비꽃의 길과
  굴참나무의 길과
  너구리의 길과
  딱정벌레의 길과
  고래의 길과
  갯지렁이의 길과

  드디어 인간의 길만 남았다
  그리고 인간의 길옆에
  길 잃은 인간이 버려져 있다
  - [태풍을 기다리는 시간](2020년)

  *. 북방개개비 : 참새과에 속하는 새

  #. 황규관 시인 : 전북 전주 출신으로 포철공고가 최종 학력이며, 1993년 [전태일 문학상]으로 등단. 시대의 아픔을 그려내는 시를 많이 썼으며, 현재 생활문예지 [삶이 보이는 창] 대표




  <함께 나누기>

  가끔 겨울 한밤중에 잠 못 이뤄 이리 뒤척 저리 뒤척이다 보면 드물게 총 소리를 듣습니다. 잠 잤으면 못 들었을, 깨어 있어도 워낙 작게 들리는 걸로 보아 가까운 곳은 아니어서 마을 아닌 먼 산속에서 나는 소리인 듯.
  멧돼지 때문이지요. 마을 한 바퀴 돌다 계곡 쪽으로 쭉 내려가면 종종 엽총 탄피를 봅니다. 멧돼지 사살에 성공했는지 하는 의문과는 별도로 원래 저 길 주인은 분명 몃돼지였는데 어느새 사람이 차지해 주인 노릇을 합니다.

  그럼 사람 다니는 길은? 원래 제가 사는 마을은 예전 양남에서 입실로 넘어가는 중간지점이었답니다. 그래서 마을 아래 주막도 있었다고. 봇짐 메고 새벽장 보러다니던 길에 고래는 볼 수 없어도 너구리와 노루가 마실다니고, 길가엔 제비꽃 패랭이꽃 활짝 피고 딱정벌레 민달팽이도 마음놓고 다니던 길이었지요.
  헌데 언제부턴가 사람도 동식물도 함께 하던 길은 뚝 끊기고 이젠 차만 굉음을 내며 다닙니다. 단 한 사람도 그 길을 걸어다니는 사람이 없지요. 아 물론 아주 가까운 거리를 걷는 어른신도 가뭄에 콩 나듯이 보이기는 하지만 길의 십분의 일도 걷는 사람 없습니다.

  원래 야생동물과 풀꽃의 길이었다가 사람도 끼어들면서 사람과 함께 걷던 흙길이었습니다. 허나 흙길이 포장되면서 동식물은 사라졌고, 사람만의 길이 되는가 했더니 사람도 사라지고 차만 오가는 차도(車道)가 되었습니다.
    오늘 시는 4연으로 돼 있는데, 반복 표현이 많습니다. 이 형태는 안정감을 주고 운율감이 살아난다는 장점이 있습니다만 뻔한 흐름이 되는 결점도 노출합니다. 그렇지만 읽어보신 분들은 느끼셨겠지만 시 전반에 흐르는 묵직함이 그런 결점 충분히 보완하고도 남습니다

  1연에서는 고래, 너구리, 갯지렁이, 지렁이, 제비꽃, 딱정벌레, 굴참나무, 북방개개비가 살다가 인간이 만든 길 때문에 하나씩 사라집니다.

  2연으로 가면,
  "피투성이가 된 고양이가 버려져 있다 / 그리고 인간의 길옆에 / 드디어 인간의 길이 생겼다"

  인간이 처음 만든 흙길에는 동물도 식물도 함께 했습니다만 인간의 길 옆에 생긴 또 다른 인간의 길(車道)은 공존을 허락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찻길동물사고(로드-킬)로 야생동물이 사라집니다. 가장 흔히 보이는 희생체가 바로 고양이입니다.

  3연에선 예전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던 옛시절로 돌아갑니다만 그 시절 그리워함보다 아픔을 상기시키는 장치로 봅니다.

  4연에서는,
  "드디어 인간의 길만 남았다 / 그리고 인간의 길옆에 / 길 잃은 인간이 버려져 있다"

  야생동물도 풀꽃도 허용하지 않은 완벽한(?) 인간의 길이 만들어졌는데 인간은 도로 길을 잃게 되었습니다. 이제 '길'이 단순히 도로만을 뜻하는 게 아니라 우리네 삶의 길임도 아실 겁니다. 인간만을 위한 길이 인간을 버리게 된다는 사실을요.


(인간의 길은 야생동물의 이동을 차단합니다)


  *. 사진은 모두 구글 이미지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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