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Jul 03. 2024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144)

제144편 : 최정례 시인의 '게들은 구멍 속에 한쪽 다리를 걸치고'

@. 오늘은 최정례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게들은 구멍 속에 한쪽 다리를 걸치고
                                                                   최정례

  갯벌에 꼬물대던 작은 게들이
  갑자기
  천지개벽의 지령이라도 받은 것처럼
  일제히 정지한다

  나는 아무런 의도가 없어, 없어
  너희를 잡아 다리를 부러뜨릴 생각도
  찜쪄 먹을 계획도 없다구

  그래도 꼬물거리던 그들은 내 기척에
  기겁을 하고
  눈의 안테나를 높이 세우고
  뻘 저편을 바라본다
  바라보는 척 게눈을 뜨고 내 눈치를 살핀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놀이처럼
  그들이 내 발길을 피해
  일제히 재빠르게 몸을 옮길 때
  순간의 무수한 게걸음에
  수평선이 빙그르 도는 것 같다
  아찔하다
  하늘은 뻘로 바다는 하늘로 뒤집힌다

  난 바람을 쐬러 방파제를 걷는 것뿐인데
  바람이 옷자락을 펄럭일 뿐인데

  섭섭하다
  나도 죽은 척 서 있었는데
  게들이 구멍 속에 한쪽 다리를 걸치고
  죽은 척 살아서 내 눈치를 볼 때
  - [레바논 감정](2006년)

  #. 최정례 시인(1955년 ~ 2021년) : 경기도 화성 출신으로 1990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 2020년 11월 투병 중에도 [빛그물]이란 시집을 펴낸 뒤 2개월도 채 지나지 않은 2021년 1월에 하늘로 가심




  <함께 나누기>

  한 달쯤 전 쓴 글에 우리 집에 늘 드나드는 길고양이를 잠시 언급한 적 있습니다.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밤에 들리는 울음소리와 음식물 찌꺼기 내놓으면 파헤쳐놓는 등 분명히 집 근처 사는 길고양이 존재를 확인했지요.
  먹을 게 부족하면 쓰레기 뒤지거나 어린 새를 잡아먹는다는 얘길 듣고 고양이 사료를 사와 놔두었습니다. 그동안 몇 번 슬쩍 마주치긴 했지만 보자마자 달아나 버려 정확한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중얼거렸지요.
  “저 녀석, 내게 얼굴 보여주고 애교 떨고 하면 좀 더 맛있는 먹이를 계속 제공해 줄 텐데...”
  허나 길고양이에게 저는 적이나 다름없는지 아직도 경계하며 얼굴을 보여주지 않으려 합니다.

  시로 들어갑니다.

  “갯벌에 꼬물대던 작은 게들이 / 갑자기 / 천지개벽의 지령이라도 받은 것처럼 / 일제히 정지한다”

  바닷가 갯벌에 가보면 흔히 보는 장면입니다. 가지가지 게들이 한참 신나게 나와 놀다 사람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순간 일시 정지합니다. 다가올 것인가 다가오지 않을 것인가를 주시하다가 자기들 쪽으로 발을 옮긴다고 여기는 순간 일제히 구멍 속으로 숨습니다.

  “나는 아무런 의도가 없어, 없어 / 너희를 잡아 다리를 부러뜨릴 생각도 / 찜쪄 먹을 계획도 없다구”

  순간 사람은 당황합니다. 게를 쫓을 생각은 애시당초 없었는데 그저 얼굴 한 번 보려 함인데도 저리도 빨리 숨다니. 당연히 게에게 나는 반가운 손님이 아니라 해칠 존재입니다. 아무리 착한 사람이라 해도 게에겐 적일 뿐.

  “그래도 꼬물거리던 그들은 ~~ 바라보는 척 게눈을 뜨고 내 눈치를 살핀다”

  혹 이 장면에서 느껴지는 뭔가가 없습니까? 시인이 게를 끌어옴은 단순히 바닷가 생태계를 묘사하려 함이 아닐 터. 그렇습니다. 현대인의 약삭빠름과 기회주의적 속성이 '게눈을 뜨고 눈치 살핀다'는 표현에서 엿보입니다.

  “난 바람을 쐬러 방파제를 걷는 것뿐인데 / 바람이 옷자락을 펄럭일 뿐인데”

  아무리 내가 단지 바람 쐬러 방파제 걸었다고 해도 게는 나를 위험한 존재로 인식한 터. 그렇지요, 우리네 사회에서 한 번 나쁜 행동으로 찍힌 사람은 다음에 나쁜 의도가 담기지 않아도 그의 행동은 의심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섭섭하다 / 나도 죽은 척 서 있었는데 / 게들이 구멍 속에 한쪽 다리를 걸치고 / 죽은 척 살아서 내 눈치를 볼 때”

  나는 게가 불편할까 봐 일부러 죽은 척 가만히 있지만 게는 오히려 자기들을 해칠 기회를 잡으려 하는 게 아닌가 의심할 뿐. 숨죽이고 화자의 다음 행동을 주시하는 모습에서 치열한 현실을 살아남기 위한 현대인의 슬픈 처세술 보는 듯하여 자못 씁쓸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14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