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뒤돌아보는 자의 얼굴이 하얗게 굳어갈 때 바닥 모를 슬픔이 눈부셔서 온몸이 허물어질 때
어떤 눈물은 너무 무거워서 엎드려 울 수밖에 없다
눈을 감으면 물에 불은 나무토막 하나가 눈 속을 떠다닌다
신이 그의 등에 걸터앉아 있기라도 하듯 그의 허리는 펴지지 않는다
못 박힐 손과 발을 몸안으로 말아넣고 그는 돌처럼 단단한 눈물방울이 되어간다
밤은, 달이 뿔이 될 때까지 숟가락질을 멈추지 않는다 -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2017년)
#. 신철규 시인(1980년생) : 경남 거창 출신으로, 201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를 통하여 등단. 현재 모 대학에 출강하고 있으며, [쇼코의 미소]란 소설로 알려진 최은영 작가와는 부부 사이
<함께 나누기>
아래 해설을 읽기 전에 다시 한 번 처음으로 돌아가 가슴에 들어오는 슬픔을 느끼며 읽어보라고 권합니다.
‘눈물의 중력’, 참 좋은 표현입니다. 눈물이 흘러내림은 슬픔보다 중력 때문이라고. 그렇지요, 모든 무게감을 지닌 사물은 아래로 떨어지니까요. 허나 그 속에 담긴 의미도 많습니다. 도대체 슬픔이 얼마나 많아야 중력의 힘을 받아 눈물이 떨어질까요? 가만 보면 눈물의 무게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그 무게 차이 때문에 눈썹 끝에 매달려 대롱대롱 떨어지기만 기다리기도 하고, 어떤 눈물은 천천히, 또 어떤 때는 주룩주룩, 그리고 심할 때는 펑펑 쏟아지기도 합니다. 마치 폭포수 물줄기가 떨어지듯.
시로 들어갑니다.
“십자가는 높은 곳에 있고 / 밤은 달을 거대한 숟가락으로 파먹는다”
밤마다 달은 변합니다. 보름달이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조금씩 숟가락으로 파먹힌 듯 줄어듭니다. 달이 줄어든다고 하여 슬픔이 줄어드는 건 아닙니다. 게다가 구원을 약속하신 신(神 : 십자가)은 너무나 높은 곳에 있어 슬픔을 줄여줄 생각이 없는가 봅니다.
“눈물이 땅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막으려고 / 흐르는 눈물을 두 손으로 받고 있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 몰라도 그의 슬픔이 너무나 큽니다. 그래서 눈물이 마구마구 흘러내립니다. 흘러내린 눈물이 땅속에 스며들면 슬픔마저 사라질까 봐 흐르는 눈물을 두 손으로 받습니다. 참 먹먹해지는 장면입니다.
“어떤 눈물은 너무 무거워서 엎드려 울 수밖에 없다”
아무도 없는 곳을 골라 혼자 울고, 그 눈물이 들키지 않도록 자기 손으로 받아내는 저 외로움. 바닥 모를 눈물이 눈부셔 온몸이 허물어질 때 하필 눈물조차 너무나 무거워 절로 몸을 엎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신이 그의 등에 걸터앉아 있기라도 하듯 / 그의 허리는 펴지지 않는다”
슬픔을 신을 통해 해소해 보려 하나 신은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오히려 내 슬픔에 더욱 무게를 더해 힘들게 할 뿐. 세월호 침몰로 어린 천사들이 명을 달리할 때도, 이태원 참사 당시 수많은 젊은이들이 죽어갈 때도 신은 곁에 없었습니다.
“밤은, 달이 뿔이 될 때까지 숟가락질을 멈추지 않는다”
맨 앞 '밤은 달을 거대한 숟가락으로 파먹는다'와 연결되는 시행입니다. 슬픔은 밤에 더 심하게 찾아옵니다. 달이라도 둥글어 밝으면 나으련만 파먹히고 파먹혀 뿔만 남은(그믐달을 의미함인지?) 상태라면 슬픔은 사라지지 않겠지요.
이 시는 2016년 12월 12일 당시 손석희 아나운서가 진행하던 JTBC '앵커 브리핑'에서 낭송되어 널리 알려졌습니다. 또한 2014년 4월 18일 '세월호 참사'를 배경으로 한 시로 알려져 대형 사건이 터질 때마다 인용되는 시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시집 제목인 [지구만큼 슬펐다]의 의미도 생각거리를 줍니다. 즉 한 사람의 슬픔이 아닌 지구민 전체의 슬픔이란 뜻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