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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Jul 01. 2024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142)

제142편 : 김이듬 시인의 '법원에서'

@. 오늘은 김이듬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법원에서
                         김이듬

  지문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떼야 할 서류가 있는데
  무인발급기가 나를 식별하지 못한다
  내 살갗무늬가 나의 단서를 갖고 있지 않다

  나는 엄지손가락을 세우고 나를 확인한다
  나는 나를 떠나버린 것 같다

  “잠시만 안고 있어!”
  제 아이를 내 품에 안겨놓고 돌아오지 않는 여자처럼

  비가 오니까
  피부가 촉촉하게 팽창해서
  내 지문이 변했을지 모른다
  빗길에 차선을 넘은 트럭처럼 나는 나로부터 잠시 미끄러졌는지 모르겠다

  이탈한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민원실에서

  의자를 당겼는데 테이블도 움직인다
  분리불안을 느끼는 관계처럼
  신체와 영혼처럼
  의자와 테이블이 일체형이다
  버릴 때는 폐기물 처리비 납부필증을 한 장만 붙이면 되겠지

  지문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가족관계증명서를 떼야 하는데
  나의 여부를 알수 없다

  봄비가 오니까
  사람들은 지나치리만치 외로워서 자아라는 존재를 발명한다
  어린 나를 더 어린 내게 던져두고
  사라진 엄마를 미워할 수 없는 나이가 되었다
  - [투명한 것과 없는 것](2023년)

  #. 김이듬 시인(1968년생, 본명은 ‘향라’) : 경남 진주 출신으로 2001년 [포에지]를 통해 등단. 현재 경상대에 출강하고 있으며, 고양시 일산에서 ‘책방이듬’을 운영하며, 이름만으로 판단 어려울까 봐 여성시인임을 미리 밝힙니다.
  2023년 우리나라 문인 가운데 최초로 2020년 시집 [히스테리아] 영어 번역본으로, 미국 문학번역가협회가 주관하는 '전미번역상'과 '루시엔 스트릭 번역상'을 동시에 받았습니다.




  <함께 나누기>

  3년 전 지금 쓰는 휴대폰 사자마자 혹 누군가 내 폰을 열어볼까 봐 '화면 잠금 설정'을 했는데 멋도 모르고 지문으로 설정했습니다. 등록할 때까진 괜찮은데 열 때마다 지문을 대면 어떤 땐 되고 어떤 땐 되지 않다가 나중에는 거의 되지 않았습니다.
  이러다 쓰지 못할까 두려워 지문을 지우려 하자 먼저 지문을 인식해야 했는데, 그날 하루 종일 매달려도 되지 않아 할 수 없이 AS센터 찾아가 겨우 해소했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나의 살갗 무늬’ 곧 나의 지문이 다른 사람의 지문과 일치할 확률은 64조분의 1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지문은 일란성쌍둥이조차 일치하지 않다 보니 자신을 증명하는 기준이 되어 신분 확인이나 범죄 수사 등에 아주 요긴하게 쓰입니다.

  시로 들어갑니다.

  “지문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법원에 가 떼야 할 서류가 있는데 무인발급기가 식별하지 못합니다. 참 당황스럽지요. ‘내 살갗 무늬(지문)’가 나의 단서를 갖고 있지 않다니. 그래서 나는 엄지손가락을 세워 다시 한번 나를 확인합니다. 그래도 일치하지 않습니다. 마치 내가 나를 떠나버린 듯이.

  ““잠시만 안고 있어!” / 제 아이를 내 품에 안겨놓고 돌아오지 않는 여자처럼”

  이 시행이 단순한 비유 같으나 시 흐름을 이해하는데 상당히 중요한 듯이 보입니다. 왜냐하면 맨 끝에 나오는 “어린 나를 더 어린 내게 던져두고 / 사라진 엄마를 미워할 수 없는 나이가 되었다”와 연결되니까요.
  사실인지는 모르나 시인의 엄마가 어릴 때 자기를 버리고 떠났다는 식의 표현입니다. (물론 시에서는 약간의 트릭이 필요해 확실하진 않습니다) 가족관계증명서를 떼야 하는데 나를 버리고 떠났기에 나의 실존 여부를 알 수 없습니다. (한때 가족이었으나 현재 가족이 아닌 경우처럼)

  “이탈한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 민원실에서”

  법원 민원실에 들른 이유가 제대로 드러납니다. 바로 가족관계증명서. 엄마와 나의 가족관계는 DNA로 밝히면 되나 서류상으로는 지문이 필요합니다. 지문이 일치하지 않으니 내가 나 아닌 사람이 돼 버립니다. 그래서 자아가 분리된, 영혼과 육체가 분리된 상태나 마찬가집니다.

  “봄비가 오니까 / 사람들은 지나치리만치 외로워서 자아라는 존재를 발명한다”

  ‘인간은 외로워서 자아를 발명했다’ 이 말을 철학자가 들으면 ‘무슨 소리!’ 하겠지만 시의 흐름상 아주 그럴 듯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하는 의문을 한 번쯤 다 해봤을 테니 그 해답을 진지하게 고민해 본 사람이라면 이해하리라 여깁니다.

  “어린 나를 더 어린 내게 던져두고 / 사라진 엄마를 미워할 수 없는 나이가 되었다”

  시의 흐름으로 보아 엄마가 나를 버리고 떠났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그때의 어린 나는 너무 어려 스스로 뭔가를 할 수 없는 나이로 읽습니다. 그런데 이제 나이 들고 보니 그 엄마를 완전히 이해하진 못해도 미워할 수만은 없게 되었다로 풀어봅니다.
  그렇지요, 가끔 어린 자식을 버리고 떠난 여자의 얘기가 뉴스를 탑니다. 불륜을 저질러 자기만의 행복을 찾아 떠났다면 죽어도 용서 못하겠지만, 남편이 너무 폭력적이라 더 살 수 없었다든지 하는 등의 경우도 상정해 볼 수 있겠지요.

  오늘 시 해설은 어디까지나 제 맘대로 끄적였을 뿐 정확한 건 아니니 다만 참고로 하시길 부탁드립니다.


([TV조선] '엄마가 뭐길래'(2017. 02. 16)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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