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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Jun 28. 2024

목우씨의 산골일기(174)

제174편 : 코끼리마늘꽃

           * 코끼리마늘꽃 *



  재작년 봄 하동에 볼일 보러 갔다 오는 길에 밀양 얼음골 가까이 이르러 잠시 밖을 보다 처음 보는 꽃에 눈이 아주 번쩍 뜨였습니다. 그러잖아도 오랜 운전에 잠시 쉬고 싶던 차 길가에 차를 세우고 내려가 난생처음(?) 보는 꽃을 보았습니다.
  아 그런데... 난생처음 보는 꽃이 아니었습니다. 원래부터 익히 잘 알던 꽃이었습니다. 아니 그냥 꽃이 아니라 나무꽃이었습니다. 사과나무, 세상에 사과꽃이 이렇게 아름답다니! 사과는 늘 보았건만 사과꽃은 처음, 아니었습니다. 전에도 보았지만 건성으로 보았으니.

  사과나무꽃은 4∼5월에 잎 나올 때 연분홍빛(흰빛도 있음) 꽃이 가지 끝 잎겨드랑이에서 나와 우산 모양으로 달립니다. 빛깔도 이쁜데 달린 모습을 솜솜히 뜯어보면 이쁨을 넘어 고혹적이라는 표현이 더 맞습니다. 이렇게 고혹적인 꽃을 왜 그동안 모르고 지났을까요.


(사과나무꽃)



  얼마 전 우리 집에 아는 이들이 놀러 왔습니다. 텃밭을 둘러보며 어마! 어마! 연방 감탄하더니 한 곳에 눈을 주면서 감탄이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실상 우리 집 텃밭은 농사 잘 지은 다른 집에 비하면 부끄러운 편입니다. 거둬들일 만한 게 별로 없으니까요.
  다만 일부러 혹은 저절로 난 꽃들이 눈길을 끈다면 조금 끌 뿐. 언덕 위에 하늘말나리, 언덕 아래 원추리꽃이 한창 이쁠 때니까요. 헌데 아는 이들이 감탄사를 내지른 꽃은 야생의 꽃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코끼리마늘꽃!

  육쪽마늘, 남도마늘, 자봉마늘, 의성마늘이란 말은 들어봤어도 코끼리마늘은 낯선 이가 많을 겁니다. 미리 말하지만 코끼리마늘이라 하여 마늘에 속하지 않습니다. 일반 마늘과 달리 ‘코끼리마늘’이란 종(種)에 속하니까요.
  일반 마늘보다 맵고 아린 맛이 적고 향이 덜하며 구우면 단맛이 납니다. 해서 코끼리마늘 재배 농가 농민조차 외래종인 줄 착각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원래 우리나라에서 토착 작물로 1940년대까지 재배하였으나 이후 자취를 감췄다가, 미국이 6·25전쟁 때 가져가 개량한 걸 다시 우리나라에 도입한 셈이니 '도로우리마늘'입니다.


(코끼리마늘꽃)



  우리는 꽃의 왕(花王)으로 ‘모란’을, 꽃의 여왕으로 ‘장미’를 꼽습니다. 두 꽃은 참 예쁩니다. 수많은 꽃 가운데 왜 ‘화왕’이니 ‘여왕꽃’이니 하는 말을 쓰는지 알 수 있도록. 사과꽃이나 코끼리마늘꽃은 그에 비하면 꽃으로선 덜 알려져 있습니다. 꽃 모양으로는 절대 뒤지지 않건만.

  특히 코끼리마늘꽃은 일반 마늘꽃보다 크고 더 이쁩니다. 붙임사진을 보면 아시겠지만 처음 보는 분들은 이게 무슨 꽃인지 다들 궁금해합니다. 얼마 전 우리 집 방문한 이들의 감탄사가 절로 터져나온 게 이상하지 않듯이 우선 생긴 모습이 눈을 사로잡습니다.

  연둣빛 대궁이 위에 자줏빛 동그란 공을 올려놓은 듯 신기한 모양입니다. 어찌 보면 솜사탕 같은 자잘한 자줏빛 꽃이 군체를 이룬 듯하고. 게다가 이들 사과꽃, 코~마늘꽃은 모란이나 장미가 갖지 않은 특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단순히 꽃으로서만이 아니라 결과물을 달고 나오니까 말입니다. 즉 사과와 코끼리마늘이란 결실을 우리에게 안겨주니까요.


(위는 참외꽃, 아래는 오이꽃)



  시골에 오래 살면 감성에 빠졌다가 현실로 돌아온다고 합니다. 다른 분들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저는 분명히 느낍니다. 처음에는 내가 여기 사는 한 절대로 단 한 방울의 농약도 치지 않겠다고 했지만 고춧잎이 마르고, 사과가 떨어지고, 무배추가 병들고...

  이럴 때마다 흔들렸습니다. 참다 참다 작년부터 예방약을 쬐끔만 아주 쬐끔만 치지 했다가 올해는 조금 더 늘렸습니다. 꽃도 하늘말나리 원추리 산벚꽃 패랭이꽃 물봉선화 매발톱꽃 꽃창포 자주달개비..가 좋았는데 변했습니다.

  벚꽃보다는 배꽃이 더 좋고, 오이꽃 수박꽃 참외꽃이 애기똥풀꽃보다 더 이쁘고, 매발톱꽃보다 도라지꽃이 더 나아보입니다. 왜 그럴까요, 바로 결과물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냥 꽃만 이쁘기보다 결과물까지 주니 어찌 사랑스럽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꽃 첫머리에 하늘말나리 패랭이꽃이 놓였는데 이젠 사과꽃 배꽃 코끼리마늘꽃들이 그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배꽃)



  이십 년 넘게 시골 살면서 아직 농약 한 번 치지 않고 산다면 그분을 존경하렵니다. 얼마나 어려운지 아니까요. 탄저병에 누렇게 타들어가는 고추를 보면서도 꿈쩍하지 않는다면(아 물론 직접 개발한 유기농약을 쓰시는 분도 포함) 절로 존경할 수밖에요.
  코끼리마늘꽃, 토착작물인 이 꽃을 좋아함이 이미 시골살이 묵은둥이가 되었다는 의미로 보면, 좀은 씁쓸하지만 아직 지지 않고 있는 이 꽃이 좀 더 오래 피어 있기를 잠시 두 손 모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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