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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Jul 16. 2024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151)

제151편 : 정철훈 시인의 '식탁의 즐거움'

@. 오늘은 정철훈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식탁의 즐거움
                                정철훈

  식탁을 보라
  죽지 않은 것이 어디 있는가
  그래도 식탁 위에 오른 푸성귀랑
  고등어자반은 얼마나 즐거워하는가
  남의 입에 들어가기 직전인데도
  그들은 생글생글 웃고 있다
  한여름 땡볕 아래 밭이랑 똥거름 빨며 파릇했던
  파도보다 먼저 물굽이 헤치며
  한때 바다의 자식으로 뛰놀던 그들은
  데쳐지고 지져지고 튀겨져 식탁에 올라와서도
  끊임없이 흔들리고 펄떡이고 출렁이고 싶다
  그들은 죽어서 남의 밥이 되고 싶다
  풋고추 몇 개는 식탁에 올라와서도
  누가 꽉 깨물 때까지 쉬지 않고 누런 씨앗을 영글고 있다
  이빨과 이빨 사이에서 터지는 식탁의 즐거움
  아, 난 누군가의 밥이 되었으면 좋겠네
  - [개 같은 신념](2004년)

  #. 정철훈(1959년생) : 광주광역시 출신으로 1997년 [창작과비평]을 통해 등단, 국민일보 논설위원과 문화부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시인으로 소설가로 전기 작가로 열심히 활동.




  <함께 나누기>

  우리가 무심코 ‘어이, 밥 한 번 먹자.’ 하며 쓰는 말은 가까운 사람끼리 더 깊은 정을 나누고자 하는 인사말입니다. 가족끼리 한 식탁에 모여 앉아 밥을 먹는다는 일이 별것 아닌 듯하지만 어쩌면 행복을 위한 아주 중요한 시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고 보면 식탁은 정과 행복을 나누는 공간인 셈입니다. 특히 요즘 같은 날 풋고추와 된장, 상추쌈에 고등어구이 얹어 먹으면 황제의 식탁이 부럽지 않습니다.

  시로 들어갑니다.

  "식탁을 보라 / 죽지 않은 것이 어디 있는가"

  그렇지요, 음식 만드는 모든 식재료는 다 죽어 요리된 채로 식탁에 오릅니다. 살아있으면 안 되지요. 그래서 우리나라를 여행한 외국인이 횟집에 가 처음 산낙지회를 보고는 기절초풍했다는 얘길 종종 듣습니다.
  식탁 위에 놓이는 음식은 다 죽어 있는 상태로 상 위에 올라야 하는데, 꿈틀꿈틀 여덟 개의 다리를 뒤트는 낙지를 보고 놀랄 수밖에요. 처음에는 엽기적이라 하여 해외 토픽으로 떴다는데 요즘 외국인 여행객의 한국 여행 챌린지로 두 가지 꼽는다고 하더군요. 산낙회와 불닭볶음면 먹기.

  "그래도 식탁 위에 오른 푸성귀랑 / 고등어자반은 얼마나 즐거워하는가 / 남의 입에 들어가기 직전인데도 / 그들은 생글생글 웃고 있다"

  다분히 인간의 관점에서 본 거겠죠. 마치 제상 위에 제물로 얹힌 돼지머리가 웃고 있다고 착각하듯이 말입니다. 다만 시인의 시선은 조금 다릅니다. 어떤 존재든 어차피 언젠가는 죽을 수밖에 없다면, 이왕 죽을 밖에야 다른 존재를 위해 희생함이 더 가치 있다는 식의.

  "데쳐지고 지져지고 튀겨져 식탁에 올라와서도 / 끊임없이 흔들리고 펄떡이고 출렁이고 싶다"

  우리네 삶은 푸성귀가 한여름 땡볕 아래 밭이랑 똥거름 빨며 파릇했듯이, 물고기가 파도를 헤치며 바다의 자식으로 뛰놀듯이 싱싱했습니다. 이 왕성한 생명력이 이제 비록 데쳐지고 지져지고, 깨물어질 처지에 놓였지만 또 다른 존재의 누런 씨앗을 영글게 함에 가치를 얻습니다.

  “아, 난 누군가의 밥이 되었으면 좋겠네”

  만약 이 시행이 나오지 않았다면, 또는 다른 형태로 끝맺었다면 이 시는 인간의 이기적인 관점에서 본 먹거리 탐방 정도로 해석되었을 겁니다. 그런데 이 시행... 저뿐 아니라 이 시를 읽고 있는 대부분의 독자들은 한 번도 자청해서 누군가의 밥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을 겁니다.
  누군가를 밥으로 만들 욕심 아니면, 누군가의 밥이 되지 않을 방법 연구만 했지... 마지막 딱 한 줄이 이 시의 품격을 높였습니다. 그래선가요, 이 시를 정호승 시인은 아래와 같이 짤막하게 평했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밥이 되어야 행복해진다. 결국 서로 밥이 되지 않으려고 하니까 나라를 뒤흔드는 싸움도 일어난다. 인간이 한 마리 물고기보다, 한 개의 풋고추보다 밥이 되지 못해서야 되겠는가."



  *. 사진은 모두 구글 이미지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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