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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Nov 05. 2024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215)

제215편 : 문창갑 시인의 '아, 이 열쇠들'

@. 오늘은 문창갑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아, 이 열쇠들

                          문창갑


  서랍을 정리하다 보니

  짝 안 맞는 열쇠와 자물쇠들 수두룩하다

  감출 것도, 지킬 것도 없으면서

  이 많은 열쇠와 자물쇠들

  언제 이렇게 긁어모았는지


  아, 이 열쇠들

  아. 이 자물쇠들


  알겠다, 이제야 알겠다

  내 앞에 오래 서성이던 그 사람

  이유 없이 등 돌린 건

  굳게 문 걸어 잠그고 있던 내 몸의

  이 자물쇠들 때문이었다


  알겠다, 이제야 알겠다

  열려있던 그 집

  그냥 들어가도 되는 그 집

  발만 동동 구르다 영영 들어가지 못한 건

  비틀며, 꽂아보며

  열린 문 의심하던 내 마음의

  이 열쇠들 때문이었다

  - [코뿔소](2011년)


  #. 문창갑 시인(1957년생) : 서울 출신으로 1989년 [문학정신]을 통해 등단. 삶의 진지함과 절실함이 가득 차 있는 시를 쓴다는 평을 들으며, 경기도 고양시에 살면서 [작가연대] 편집위원으로 활동




  <함께 나누기>


  아파트와 달리 주택엔 잠글 데가 많다 보니 열쇠도 많습니다. 우리 집만 해도 바깥나들이 할 땐 현관문은 물론 창고 두 곳에도 자물쇠를 채웁니다. 당연히 열쇠도 있지요. 헌데 제대로 정리해 두지 않아 여기저기 찾아다닐 때가 종종입니다.

  더욱 시건장치가 오래되다 보니 고장나서 새로 갈게 되면 따로 열쇠 생기는데 그걸 또 바꿔놓지 않으면 헷갈려 허둥지둥. 실제로 손주들이 왔다가 군불방에 들어갔다 나오면서 실린더문 잠그고 나와 열쇠를 빨리 못 찾아 시간 허비한 적도 있었고...


  시로 들어갑니다.


  “감출 것도, 지킬 것도 없으면서 / 이 많은 열쇠와 자물쇠들 / 언제 이렇게 긁어모았는지”


  서랍을 정리하다 보면 짝 안 맞는 열쇠와 자물쇠가 수두룩합니다. 특별히 감춰둬야 할 귀중품이 꼭 있는 게 아님에도 말입니다. 옛말에 이런 말이 있지요. ‘아무리 가난한 집이라도 도둑이 훔쳐갈 물건은 있다’고. 그걸 지키기 위해 자물쇠로 잠급니다.

 

  제3연으로 가면 자물쇠와 열쇠의 쓰임이 우리가 아는 그런 곳에 쓸 목적이 아님이 드러납니다. 내 앞에 오래 서성이던 그 사람이 결국 나를 떠나버린 게 바로 굳게 문 걸어 잠그고 있던 내 몸의 자물쇠들 때문이었음을.

  마음과 마음 사이에도 오가는 문이 있어 가끔 잠그기도 합니다만 언제든 열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나를 잠그면 남이 쉬 들어올 수 없어 나를 지킬 수 있지만, 그만큼 남도 나를 어려워하게 되어 담을 쌓게 만듭니다.


  “알겠다, 이제야 알겠다 / 열려있던 그 집 / 그냥 들어가도 되는 그 집”


  여기서 '그 집'을 진짜 집으로 생각해도 되지만 '그의 마음'으로 바꾸면 이해하기 더 쉽습니다. 그의 마음은 내가 들어올 수 있도록 열려있습니다. 헌데 내가 마음을 잠그니까 나도 그의 마음속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발만 동동 구르다 영영 들어가지 못한 건 / 비틀며, 꽂아보며 / 열린 문 의심하던 내 마음의 / 이 열쇠들 때문이었다”


  그렇지요, 이제껏 얼마나 많은 곳에 자물쇠를 걸어두었던가요. 여태껏 얼마나 많은 곳을 들어가기 위해 열쇠를 찾아 헤매었던가요. 내가 잠그기만 할 뿐 열지 않으니 남도 나를 향해 열지 않습니다. 소통은 일방적이 아니라 서로를 향해 열려 있어야 하기에.

  내가 남을 의심하여 문을 열지 않으면 남도 나를 의심하여 문을 닫습니다. 그러면 그 문의 잠금장치는 더욱 녹이 슬어 열 수 없게 되고, 의심이 사라져 잠금장치의 녹이 벗겨졌다 하면 이번엔 내가 열쇠를 찾지 못해 헤매게 됩니다.


  가만 생각하니 이 시는 마음의 문을 열기보다 닫는데 더 애쓰는 저 같은 사람을 두고 쓴 듯. 열쇠를 쉬 찾을 수 있는 곳에 둬 닫힌 문을 언제든 열 수 있게 하듯이, 내 마음도 열어두고 누구든 드나들 수 있도록 해야 함을 강조하는 시로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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