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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위에 내리는 비
Nov 06. 2024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216)
제216편 : 이인원 시인의 '사랑은'
@. 오늘은 이인원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사랑은
이인원
눈독들일 때, 가장 아름답다
하마,
손을 타면
단숨에 굴러 떨어지고 마는
토란잎 위
물방울 하나
- [궁금함의 정량](2013년)
#. 이인원 시인(1952년생) : 경북 점촌 출신으로 1992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
마흔에 등단한 게 아쉬운지 좋은 시 많이 쓰고 있으며, 참 이름만으로 오해할까 봐 '여성시인'임을 미리 밝힙니다.
<함께 나누기>
제겐 부자 소리 들을 만한 친구가 딱 한 명 있었습니다. ‘있었습니다’에서 짐작하시겠지만 지금은 없습니다.
대학 다닐 때 우연히 만나 친하게 지냈는데 당시 부산에서도 다섯 번째 안에 들 정도로 부유한 집안 덕으로 엄청 공을 들여 아주 이쁜 여성을 아내로 맞았습니다.
당시 미스코리아 ‘진선미정숙현’을 뽑을 때 ‘숙’쯤에 해당했는데, 단지 키가 작아 진선미에 포함되지 못했을 뿐 정말 눈부시게 이뻤습니다.
어느 날 술 한 잔 마시며 얘기 나누다 다들 자기 아내 미모를 칭찬하는 얘기 나오자 정색하더니,
“처음 봤을 땐 너무너무 이뻤다. 그래서 공도 많이 들였고. 그런데 결혼하고 살다 보니 이뻐 보이지 않더라.”
그때는 우리에게 빈말로 한 말이라 여겼는데 나중에 절세미인을 둔 잘 나가는 남자들이 이혼하는 걸 보니 조금 이해가 됐습니다.
시로 들어갑니다.
“눈독들일 때, 가장 아름답다”
제목과 이어 쓰면 ‘사랑은 눈독들일 때 가장 아름답다’가 됩니다. 그녀를 보자마자 심장에 막무가내 쳐들어와 느닷없이 내 마음 훔쳐갔을 때가 가장 아름답다는 뜻으로 새깁니다.
아마도 한 번쯤 사랑해 본 사람은 다 와닿는 표현일 듯. 그렇게 아름답고 그렇게 마음에 들 수 없는.
그 순간만은 ‘영원히 사랑하리라’는 맹세가 절로 나오지요. 이런 여자 (또는 남자) 만나게 해 준 신에게도 감사기도도 올리게 되고...
“하마, / 손을 타면 / 단숨에 굴러 떨어지고 마는 / 토란잎 위 / 물방울 하나”
허나 사랑은 손을 타면 단숨에 아래로 굴러떨어지고 마는 토란잎 위에 놓인 물방울이 됩니다.
토란잎이나 연잎 위에 비가 내리면 빗방울이 묻지 않고 잠시 머물러 있을 뿐. 그러다가 바람이 불거나 하면 이내 굴러떨어집니다.
시인의 눈엔 순수한 사랑은 어느 누구의 손도 타지 않는, 토란잎 위 물방울처럼 동그랗게 말려 불안정한 상태로 놓여있습니다.
이때는 만지면 안 되고 그냥 그저 바라보아야만 합니다. 사랑은 가만히 들여다보기만 해도 좋고, 제 모습 그대로 보여줄 때 가장 아름다우니까요.
사랑은 오래오래 눈독 들이다 아침 햇살에 하늘로 증발해 버리고 마는 아침 이슬 같은 숙명을 지녔음일까요.
사랑했다가 헤어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차라리 홍시처럼 옷에 묻으면 사라지지 않는 얼룩이었더라면.
누구는 사랑을 줄광대의 외줄타기에 비유했습니다.한 발만 잘못 디뎌도 허공으로 떨어지고야 마니까요.
아직도 사랑의 씨앗을 품고 사는 사람, 사무치는 그리움에 귀뚜라미도 눈물샘을 건드리는 가을입니다.
오늘 잠시 짬을 내 내게 다가온 아래 시구 음미하는 시간을 가집시다.
"사랑은 눈독들일 때가 가장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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