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유미 시인(1955~2023년) : 서울 출신으로 1989년 [심상], 1993년 부산일보 신춘문예(시조), 199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시조)와 [경향신문] 신춘문예(시)를 통해 등단. 남들은 한 번도 등단하기 힘든 과정을 네 번이나 거쳤으니 문재(文才)는 인정받을 듯.
계간 [시와 사상] 편집장으로 일하며 시를 쓰다가, 2021년 코로나 백신 부작용으로 여러 장애를 겪다가 작년에 세상을 떠남.
<함께 나누기>
이 시는 소설가 양귀자 님의 [천년의 사랑]이란 책에 실려 여러 사람의 눈길을 받은 시입니다. 양귀자 님은 거기서 "단지 설거지만 하고 있을 뿐인데, 시의 언어들이라고 해야 냄비거나 '퐁퐁'이거나 솥이 거의 전부인데, 난해한 반전 한번 주자 않았는데, 그럼에도 이 시를 읽는 순간 그냥 물처럼 스며들었다"라고 했습니다.
이 시는 제법 길지만 내용이 어렵지 않아 이해하는데 힘들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한 시행 한 시행 분석하기보다 전체적으로 파악합니다.
"문득 씻지도 않고 쓰는 마음이 손바닥에 만져졌다"
"그러나 물만 마시고도 씻어두는 유리컵만도 못한 내 마음은 / 더럽혀지고 때 묻어 무엇 하나 담을 수가 없다"
"깨어지고 이가 빠져 쓸데가 없는 듯한 그릇을 골라내면서 / 마음도 이와 같이 가려낼 것은 가려내서 / 담아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미움이 마음에 눌어붙으면 / 이처럼 닦아내기 어려울까"
"영혼도 이와 같이 닦으면 닦을수록 / 윤이 나게 할 수는 없는 일일까 생각해 보는 것이다"
"마음 한 번 비우지 못해 / 청정히 흐르는 물을 보아도 / 때 묻은 정(情)을 씻을 수가 없구나"
"남의 티는 그리도 잘 보면서도 / 제 가슴 하나 헹구지도 못하면서"
손에 잡히는 몇몇 시행만 봐도 어지간한 시 한 편 양이 됩니다. 즉 읽기 참 좋은 시란 말이지요. 그리고 좋은 시인은 자기의 내면적 상처를 반성하여 그것에 보편적 의미를 부여할 줄 아는 사람이라 한다면 이 시도 거기 포함하겠지요.
요즘 저도 아침저녁으로 설거지를 합니다. 할 때마다 어떡하면 빨리 끝낼까 궁리할 뿐 마음의 찌꺼기를 씻어내지 못하고 그냥 지나칩니다. 제가 존경하는 사람은 돈 많은 이도, 권력 쥔 이도, 여인에게 인기 있는 이도 아닌, 내가 보지 못한 점을 보는 사람입니다.
저는 설거지를 하면서 그릇에 묻었다가 씻겨 나오는 땟국물을 저의 잘못으로 여긴 적 없건만 이 시를 읽는 순간 부끄러움이 치솟았습니다. 특히 "미움이 마음에 눌어붙으면 / 이처럼 닦아내기 어려울까"란 시행, 허니까 저는 하도 오랫동안 달라붙어 눌어붙었다는 사실조차 잊은 상태.
다만 시인은 제게 붙잡을 화두 하나 남겨주셨으니... "영혼도 이와 같이 닦으면 닦을수록 / 윤이 나게 할 수는 없는 일일까 생각해 보는 것이다" 구두를 닦으면 광이 나고, 오래된 마루에 아주까리 열매 놓고 문지르면 광이 나듯이 내 마음도 광나게 할 길은 있을진저.
우선 할 일은 남 눈의 작은 티는 잘 보면서 내 눈 속의 대들보는 보지 못했기에, 이제 잠시 멈춰 저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고 반짝이게 닦을 시간임을 자각하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