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편 : ‘오구라 신페이’와 ‘양주동 박사’
<향가 이야기(제1편)>
- ‘오구라 신페이’와 ‘양주동 박사’ -
요즘 '노래 경연대회'가 매스컴을 쓸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고생하던 무명가수가 일약 스타가 되는 장면을 보면서 흥분하고 또 감동도 받습니다. 가라오케가 일본에서 생겨났지만 그곳보다 늦게 껴안은 우리나라에서 노래방으로 더 활성화되었고, 기기의 성능은 다른 나라가 따라올 수 없습니다.
싸이와 방탄소년단의 노래가 빌보드 최상위 순위까지 오르는 등 미증유의 성공을 거둔 걸 보면 원래 우리 민족 몸속에 태생적으로 노래 잘하는 피가 흐르고 있는가. 그래서 우리 선조의 생활을 기록한 옛 문헌에 제천행사 뒤 “連日飮食歌舞(날마다 먹고 마시며 노래와 춤을 즐겼다)”라는 구절이 예사로 보이지 않습니다.
고전문학에 속하는 향가, 고려가요, 경기체가, 시조, 악장 등에 노래와 관련된 장르에 ‘歌, 謠, 調, 樂’이 들어 있어, 이로 보아 예전에는 시문학에서 시와 노래가 분리되지 않고, 시를 바로 노래로 불렀다는 사실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시 대신 '시가(詩歌)'라 이름 붙였고.
일연 스님의 [삼국유사]가 일본에서 1921년 영인(影印 : 원본을 사진으로 복사하여 인쇄)돼 나온 뒤 한문에 조예 깊은 한학자들 가운데 제법 많은 사람이 읽었을 겁니다. 그런데 읽어가다가 한군데서 막혀 고개를 갸우뚱했다. 바로 우리가 '향가(鄕歌)'라고 부르는 대목에서 말입니다.
한자를 우리말 어순(語順)대로 썼으니 한학에 통달한들 어찌 읽을 수 있었으랴. 아마 어떤 이는 잘못 인쇄된 게 아닌가 여겼을 테고... (우습지만 1921년 영인본을 본 한학자들은 실제로 그 부분만 분명히 잘못 표기한 것이라 여겼다 함)
이 수수께끼 같은 시가가 우리 곁에 오기까지 우여곡절이 참 많았습니다. 부끄럽게도 이 신비의 노래에 가장 먼저 뛰어든 사람은 일본인입니다. 그들의 고시가(古詩歌) 모음집인 [만요슈(万葉集)]에 기록된 문자가 바로 한자의 음을 빌려 쓴 "만요가나(万葉仮名)"였기 때문에.
그래서 향가 25수 전체를 최초로 해독(解讀)한 영광도 일본인이 차지했는데, 오구라 신페이(小倉進平)라는 조선어 연구학자였습니다. 그는 향가 25수를 완독한 [郷歌及吏読の研究 (향가 및 이두 연구)]란 책을 펴냈는데, 이 공로를 인정받아 ‘제국학술원 은사상’을 받았고.
이러한 사실에 우리나라 학자들은 자존심이 상했으나 능력 부족으로 속으로만 분함을 삭이고 있을 때 향가 연구에 뛰어든 분이 바로 양주동 박사입니다. 양 박사는 일본 와세다대 영문과를 나왔으며, 평양 숭실전문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조선의 맥박]이란 시집을 남긴 시인이기도 합니다.
양 박사는 국어학자도 국문학자도 아니었지만 향가 연구에 안성맞춤인 세 가지가 준비된 학자였습니다. 먼저 한학자인 아버지로부터 한문을 배웠고, 일본대학에서 영문학을 배웠으니 일어와 영어에 정통해 자료 수집하기 쉬웠으며, 시인이라 운문으로 번역하기 수월했을 테니 말입니다.
향가 연구 부문 선두를 일본인에게 빼앗겼다는 사실을 알고선 스스로 천재라고 자부하던 그분은 자신이 직접 뛰어들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5년 동안 각고의 노력 끝에 마침내 1942년 향가 전 작품을 해독한 [고가연구(古歌硏究)]란 책을 펴냈습니다.
이전의 향가 연구서가 일본어로 돼 있어 몇몇 학자들만 읽어보는 책이었으나, 우리말로 된 책이 나오면서 우리 국민은 비로소 향가의 가치를 제대로 알게 되었으니 이 책의 의의는 무엇에 비교하리오.
영문학도가 펴낸 [고가연구], 이 책은 단순히 향가 연구에만 도움 준 게 아니었습니다. 신라인의 습속과 신라어 연구는 물론 우리 고대어 연구의 지침돌이 되었으니. 지금은 이 책의 해독 내용이 부분적으로 비판받지만 고전문학과 고대국어를 연구하는 국문학자나 국어학자에겐 성경에 견줄 만한 서적입니다. (이 책을 기반으로 연구하게 되었기에)
한국인으로서는 누구도 손대지 못한 분야에 뛰어들었을 뿐만 아니라 박사의 해석은 일본인 학자 오구라 신페이보다 훨씬 뛰어났으니... 그 뒤 스스로를 ‘대한민국 인간국보 제1호’라고 칭하며 다녔으나 누구도 거기에 딴지를 걸지 않았음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1975년 대학교 2학년 때 이분의 강연을 들은 적 있습니다. 책만 잘 쓰는 줄 알았는데 말은 또 얼마나 재미있게 잘하는지... 이런 말이 전합니다. 누가 "선생님은 어떻게 그렇게 말씀을 잘하십니까?" 하니 양박사가 이리 대답했다고 합니다.
"내 이름이 양주동 아니냐. 주둥이가 둘(양)이란 뜻이야. 주둥이가 하나인 사람보다 말을 잘해야지!"
원래 1시간 강의로 약속되었으나 끝나고 보니 3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청중 가운데 단 한 사람도 자리에서 일어난 이가 없었고. 덕분에(?) 저는 가정교사 시간에 두 시간 늦어 수업 받는 아이들 부모님을 찾아다니며 일일이 사과를 해야 했지만 조금도 후회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 자료는 모두 구글 이미지에서 퍼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