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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가 이야기(제2편)

제2편 : '향찰(鄕札)'에 대하여

<향가 이야기(제2편)>



- '향찰(鄕札)'에 대하여 -


향가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신라 초에서 고려 초까지 향찰로 적은 노래’로 정의돼 있습니다. 여기 쓰인 ‘향찰’이 무엇일까요? 향찰은 한자의 음(音 : 소리)과 훈(訓 : 뜻)을 빌려 한국어를 표기하는 방식인 차자(借字 : 글자 빌려 쓰기) 표기 중 하나입니다.
우리말은 있으나 우리 글자가 없던 그 시절 우리 선조들은 매우 고민을 했겠지요. 말로는 의사가 전달되지만 그것을 오래 저장할 수 없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기존에 들어와 있던 한자를 이용하여 우리끼리 통하는 글자를 만들어내려 애를 썼습니다. 그에 따라 만든 글자 가운데 하나가 향찰입니다.

한자와 우리말은 어순이 다르다. 우리말은 목적어가 서술어 앞에 옵니다. 그러나 한자는 목적어가 서술어 뒤에 옵니다.
'산을(에) 오르다'와 '登山'을 비교해 봅시다.




이러한 어순의 차이는 하나하나의 한자를 아무리 많이 알아도 문장을 만들거나 문장을 해독하기 힘듭니다. 그래서 선조들은 한자를 이용해 우리말을 적으려 애썼습니다. 이리저리 궁리했겠지요. 한자를 우리말 소리 나는 순서대로 적으면 안 될까 하고. 登山(등산)을 山登(산등) 형태로 적을 수 없을까 하고. 이때 가장 애로사항이 조사 '을'과 어미 '다'의 처리였을 겁니다.


이리 말하면 쉬 이해하지 못할 터니 예로 들어봅니다.
「서동요」 첫 행에 "善花公主主隱 (선화공주주은)"이 나옵니다. 뒤의 두 글자 ‘主隱’에서 '主'가 '님 주'자요, '隱'이 '숨을 은'자니, 뜻으로 새기면 '선화공주라는 님이 숨는다'가 되고.


(왼쪽 : 삼국유사 서동요 부분, 오른쪽 : 서동요만 따로 떼어냄)



이런 뜻풀이로는 아무리 끼워 맞춰본들 노래 속의 의미를 제대로 못 헤아립니다. 향찰을 몰랐기 때문에. 반드시 음독(音讀 : 소리로 읽음)과 훈독(訓讀 : 뜻으로 읽음)으로 새겨야 해석이 됩니다. 즉 어근(語根 : 단어의 몸통)은 뜻으로 읽고, 접사(接辭, 어미와 조사 포함)는 소리로 읽어야 한다는 말씀.
이 규정에 따르면 '主隱'에서 '주'는 '어근'이니 '뜻'으로 읽어 '님'이 되고, '은'은 '조사'니 '소리'로 읽어 '은'이 됩니다. 그러면 ‘主隱’은 '님이 숨는다'가 아니고 두 음절로 '님은(니믄)'이 되어 결국 ‘善花公主님은(니믄)’으로 해독됩니다. (단 善花公主는 고유명사이므로 소리로 읽음)


한 번 더 해 봅시다. 「처용가」에서 처용이 밤 늦도록 놀다가 집에 들어와 방문을 여는 장면에서 ‘夜入伊 遊行如可’가 나옵니다. 앞의 석 자 ‘야입이’만 보면, 夜는 ‘밤 야’, 入은 ‘들 입’, 伊는 ‘이, 그, 저’를 뜻하니 이대로 해석하면 ‘밤에 그것(이것, 저것, 그것)이 들어오다’는 뜻이 됩니다.
헌데 여기서 ‘入’을 소리로 읽지 않고 뜻으로 읽고 ‘伊’를 뜻 대신 소리로 읽으면 ‘밤들이’란 세 글자가 됩니다. ‘밤에 그것이 들어오다’가 아닌 '밤 들도록'으로. 다행히 ‘밤들이(밤드리)’가 고어에 ‘밤 들도록’의 뜻으로 쓰였음은 여러 군데서 확인한 바 있으니 ‘밤 들도록 노니다가(遊行如可)’란 뜻이었을 겁니다.



당시의 유행가를 가까이 있는 몇몇이 입에서 입으로 전하다 보면 노랫말이 뒤죽박죽 될 수 있었으나 모두가 같은 노랫말로 부를 수 있게 됨이 바로 이 향찰 때문입니다. 물론 서민들은 한자를 몰랐겠지만 기록된 상태의 노랫말을 읽을 줄 아는 지식계층이 앞장서 보급했다는 가정 하에서 말입니다.

*. 향찰을 차자문자(借字 : 글자를 빌려 쓴 문자)라는 정의에 반대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이러면 독일어 프랑스어 같은 유럽어는 라틴어 차자문자라 써야 하나 그러하지 않기 때문에. 그래서 향찰을 독립된 신라문자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일리 있는 주장이라 여겨 소개합니다.
*. 그리고 한자를 빌려 쓰는 방식이 향찰 말고도 ‘이두(吏讀)’와 ‘구결(口訣)’이 더 있는데 그 차이를 알고 싶은 분은 인터넷을 참고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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