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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가 이야기(제3편)

제3편 : 극적인 [처용가]의 도움

♤ 향가 이야기 ♤


- 제3편 극적인 처용가(處容歌)의 도움 -


예전에 서울토박이인 벗과 만나면 내가 하도 사투리를 자주 사용하자, '국어선생님답게 사투리 좀 제발 쓰지 마라'고 점잖게 충고했습니다. 그러면 이리 답했지요. ‘나는 경상도 사투리를 사용하는 게 아니라 신라시대의 표준어를 구사하고 있다.’라고.
향가에 향찰이란 교묘한 장치가 숨었으니 한학에 아무리 조예가 깊은들 학자들은 읽을 수 있었을까요. 불가능했을 겁니다. 그럼 맨 처음 향가를 해석한 일본인 학자는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낸 천재였을까요? 아닙니다. 해석의 실마리가 바로 고려가요 [처용가]에 들어 있었습니다.

향가에 [처용가] 있고 고려가요에도 [처용가]가 있음이 얼마나 다행인지... 그리고 이 두 노래에 일치하는 부분이 있음은 다행 중에도 큰 다행. 둘의 일치하는 부분, 그게 바로 해독의 열쇠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향가와 처용가에서 그 일치하는 부분을 한 번 봅니다. (8구 가운데 6구가 일치함)

<향가 [삼국유사](1281년)>


<고려가요 [악학궤범](1493년)>



내용이 같은 이 6행(6구) 때문에 향찰이란 차자(借字 : 남의 나라 글자를 빌려 자기 나라 말을 적음) 표기를 몰랐어도 일단 향가 해독에 뛰어들 수 있었습니다. 즉 고려가요와 향가에서 노랫말의 음절수가 같거나 비슷함을 발견한 점은 암시하는 바가 아주 큽니다.
‘달 月’ '대 竹'처럼 우리말과 한자 음절수가 같은 몇 경우를 제외하곤 우리말이 한자보다 길어야 마땅한데... 거기서 하나의 가설이 탄생했습니다. 한자를 우리말처럼 표기했으리라는 직감. 그래서 맨 처음 시도한 일이 끼워 맞추기였습니다.

첫머리 東京('경주' 즉 당시의 ‘서울’) 뒤에 이어지는 ‘明期月良’을 봅시다. (먼저 'ㆍ' 가 SNS 상에선 표기가 안 되므로 'ㅏ' 로 씀에 양해를 구함)
향가 ‘明期月良’이 고려가요에선 ‘발간 다래’로 돼 있습니다. 둘을 끼워 맞춰 봅시다. ‘明’이 ‘발’, ‘期’가 ‘간’, ‘月’이 ‘달’, ‘良’이 ‘애’ (달 + 애 => 다래) 여기서 ‘明'이 '발(밝)’이고 ‘月'이 '달’임은 이해가 되는데, ‘期'가 '간’으로 ‘良'이 '애’로 읽힘에 고개를 갸우뚱했겠지요.


만약에 ‘明期月良'을 한자 풀이에 매여 ‘期'를 '기약할 기'로 '良'을 '어질 량'으로 하여, ‘밝음을 기약하며 달이 어질다’로 풀었으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을 테고. 허면 향가 풀이는 더 나아가지 못했을 터.
거기서 '明'과 '月'은 뜻으로 읽고(훈독), '期'와 '良'을 소리로 읽는다(음독)는 사실을 발견했을 때 일본인 학자는 아르키메데스가 '유레카!' 하고 외친 그 환호 못지않게 터뜨렸을 겁니다. ('기'를 '간'으로 '량'을 '애'로 읽는 음운 변화는 어학적인 설명이 많이 따라야 하므로 생략함)


(구글 이미지에서)



이렇게 짜 맞추는 형태로 접근하다 보니 향가 [처용가]의 전체 해독이 가능해졌고, 다른 작품으로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만약 이때 고려가요에 [처용가]가 없었으면 향가 해독은 가능했을지... 가능했다고 하더라도 훨씬 뒤에 이루어졌을 터이니 정말 아찔합니다.

위 향가 부분에 대한 양주동 박사의 해독은 다음과 같습니다.


(서울 밝은 달밤에
밤들도록 놀며 다니다가
들어와 자리를 보니
가랑이가 넷이로다.
둘은 내 것인데
둘은 누구의 것인가.
본디는 내것이다만
빼앗아 감을 어찌할꼬)

처용이 밤늦도록 놀다가 집에 돌아와 방문을 열었더니 가랑이가 넷입니다. 아내만 있으면 두 개여야 하는데 네 개나 된다니? 미끈한 아내 다리 말고 털북숭이 다리가 둘. 도합 넷. 허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 그때 처용은 도끼를 들고 뛰어드는 대신 점잖게 노래를 부릅니다.
“둘은 내 것(내 아내 것)인데 둘은 누구의 것인가?” 하고.

([처용가]에 대한 자세한 해독은 하나하나의 작품을 다룰 때 다시 언급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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