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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가 이야기(제4편)

제4편 : 아, 삼대목(三代目)

♤ 향가 이야기 ♤


- 제4편 아, 삼대목(三代目)> -


대학교 다니며 향가 배울 때 교수님께서 농담 삼아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들에게 일하지 않고도 평생 먹고살 수 있는 방법을 하나 가르쳐주겠다.”
학생들이 이구동성으로 무엇이냐고 묻자 교수님께서,
“시골 다니면서 [삼대목(三代目)]이란 책을 찾아다녀라. 찾기만 하면 너희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평생 호의호식하며 살 수 있다.”
그때 귀에 쏙 들어온 [삼대목], 허나 그 뒤 단 한 명도 찾으러 다니지 않았는지 50년이 다 된 오늘까지 나왔다는 뉴스를 들은 바 없습니다.

현재 전해지는 향가 작품은 일연선사가 엮은 [삼국유사]에 14수, 균여대사의 일대기를 적은 [균여전]에 11수 하여 25수가 전부입니다. (고려 예종 때 [도이장가]를 향가에 넣는다면 26수가 됨)
향가를 당대의 인기가요로 본다면 최초의 작품으로 알려진 [서동요]가 서기 600년경에 나왔고(서동요의 작가로 백제 무왕임을 인정할 때), [균여전]이 1075년에 나왔으니 400년 간 불려 진 향가의 양치곤 26편은 너무 적다. 적어도 수천 편은 몰라도 수백 편은 되지 않았을까요?
특히 두 권에 수록된 향가는 가장 대중화된 작품이라기보다 편찬자가 승려(일연선사와 균여대사의 제자)라 불교적 색채가 짙은 작품 위주입니다. 이럴 때 진성여왕 시절 각간 벼슬의 위홍과 대구 화상이라는 스님이 편찬한 당시 인기 대중가요집인 [삼대목]이 '짜잔!' 하고 나타난다면...




[삼대목]이란 이름에서 ‘삼대’에 대해 역사학계와 국문학계가 보는 시각이 완전히 다릅니다. 즉 역사학계에선 '삼대는 신라사를 삼분(三分)한 것으로 상대 · 중대 · 하대로 나눈 것'이라 주장하는 반면, 국문학계에서는 三代目은 한자 표기가 아니라 三代가 향찰 표기로 향가의 딴이름인 '詞腦(사뇌)'이며, '目'은 노래의 창법이라고 합니다.

여기에 2005년 부산 모 중학교 권영오 교사가 상당히 의미 있는 학설(박사학위논문에서)을 내놓았습니다. “삼대는 신라 경문왕의 세 자손, 즉 ‘헌강왕’, ‘정강왕’, ‘진성여왕’의 시기를 의미하는 것이다.”라고.


저 같은 사람에겐 삼대가 언제를 가리키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삼대목이 생전에 나타나길 바랄 뿐. 그럼 삼대목에 대해 좀 더 알아봅니다. 삼대목(三代目)은 삼국사기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라 51대 왕인 진성여왕이 888년 각간 위홍(魏弘)과 대구화상(大矩和尙)에게 명하여 향가를 수집케 하여 그 책의 이름을 [삼대목]이라 했다"


([삼국사기] 진성왕 본기 오른쪽 둘째줄 중간~ 셋째 줄 중간)


이처럼 간단히 당시에 전해지는 향가를 모아 '삼대목'이란 책을 편찬했다는 기록만 전하고 있으니 얼마나 많은 작품이 실렸는지 알 수 없고, 또 이 책이 지금 어디선가 발견될 날을 기다리고 있는지 다 썩어 영원히 사라졌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혹시나 만약 존재한다면 우리나라 인문학계가 요동칠 겁니다. 향가는 단순히 신라의 노래라는 점을 떠나 당시의 풍속, 정치, 생활, 문화, 언어를 다 보여주니까요. 따라서 한 분야가 아닌 언어학, 역사학, 국문학, 종교학, 민속학 거의 모든 인문학 분야에 관련된 그 가치를 매길 수 없는 대단한 국보 중의 국보입니다.

일단 국어학 분야만 본다면 겨우 단어 몇 개로 추정만 하고 있는 고대 신라어 연구는 날개를 달고 한국어 체계의 근간을 이룰 것이요, 또 한국사에서는 신라시대 역사, 정치, 외교, 생활 등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향가를 통해 다른 역사와의 교차 비교도 가능해집니다.
국문학계가 가장 반길 것 같은데 고대문학 분야에서 헤아릴 수 없는 엄청난 양의 시가가 등장함으로써 고대문학사를 다시 쓰게 만들 테고...

향가를 가르쳤던 교수님께서는 아련한 환상마저 갖고 계셨습니다.
‘삼대목만 나온다면...’
‘아니 전부가 아니라 몇 조각만 나온다면...’
‘애써 발표한 기존의 향가 관련 논문은 모두 다 삭제해 쓰레기통에 없애버려도 삼대목만 나온다면...’
이런 환상을 간간히 내뱉으셨습니다.

일연선사께서 [삼국유사]에 실은 향가가 <삼대목>에서 발췌한 작품이 아닌가 하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어떤 근거도 없는 이 말이 맞다면 적어도 선사 생존시까진 전해졌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혹 선사 머문 거처에 남겨져 있어 나중에라도 발견된다면...

한국ㆍ중국ㆍ일본 세 나라는 다음 공통점을 갖습니다. 같은 동북아에 속한다는 사실 말고도 고(古) 시가집을 지녔다는 점에서. 중국엔 305편이 수록된 [시경(詩經)]이, 일본엔 4,500수 가량 수록된 [만요슈(萬葉集)]가, 그리고 한국에는 [삼대목]이.
그런데 불행하게도 중국과 일본에는 남아 있는데 우리나라만 사라지고 없습니다. 그래서 더 안타깝습니다. 학자들은 [삼대목]이 발견된다면 한국 인문학 연구는 삼대목 발견 전과 후로 나뉘게 될 거라는 말을 공공연히 하건만.

저도 가끔 기도합니다. 삼대목이 나왔으면 하고.
“삼대목아 너 지금 어디에 숨어 있니? 얼굴 한 번 내밀어볼 의사는 전혀 없는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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