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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번째 행인 Mar 05. 2021

일본에서 겨울을 보낼 때 필요한 것

그해 봄, 내 방은 겨울왕국이었다

자매2 집 근처에 자리한 아오야마 영원(추모공원) 은 벚꽃 길로도 유명해 매년 봄 추모객뿐만 아니라 벚꽃 구경객도 몰려든다.


첫 글이 발행될 오늘은 3월 5일. 일본 도쿄의 현재(오전 9시) 기온은 영상 12도로 오후엔 14도까지 오른다고 한다. 비가 내리고는 있지만(야후 날씨를 보니...), 따뜻한 날씨다. 물론 어디까지나 '바깥세상' 이야기라는 게 함정이지만. 사실 3월이면 한낮에 반팔만 입고 다녀도 될 만큼 일본의 기온이 올라간다. 그런데 집에 들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벚꽃이 움트고 만물이 소생하는 시기이건만, 그해 봄 우리 집은 여전히 겨울왕국이었다. 봄에 꼭 해야 하는 겨울 이야기! 미나토구 자매들의 첫 수다는 지금도 생각하면 코부터 시려 오는 '일본에서의 겨울나기'다.    




'추워도 너~~무 추워' 3월 일본의 첫인상  


자매2는 2019년 3월 18일 일본으로 출국했다. 초겨울용 코트를 입고 갔는데, 그 외투가 짐처럼 느껴질 만큼 도쿄는 따뜻했다. 사실 도착 첫날부터 '워홀·연수 3종'이라는 주소 등록·휴대폰 개통·계좌 개설의 강행군을 정신없이 이어가느라 아직은 시린 봄바람을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다. 첫추위를 마주한 건 도착 이틀째, '내 집'에 들어가서였다. 첫날 호텔에서 따뜻하게 지내고는 다음날 집 열쇠를 받아 아오야마잇초메 맨션의 1층 집에 들어간 순간, 한기가 느껴졌다. 뭐지, 이 오싹한 환영 인사는...


일본 도착 이틀째인 2019년 3월 19일 앞으로 1년간 함께 할 '내 집'에 입성했다. 나의 스위트 홈이 건넨 첫인사는 '추위'였다.


일본에서 20년 넘게 살고 있는 사촌 오빠가 왜 '솜이불'(우리 엄마 결혼 때 혼수로 가져왔을 법한 그 묵직한 솜이불)과 옥 전기장판을 보내왔는지 그제야 알았다. (그것은 결코 짐이 아니었어.) 그날 밤 그 짐짝들의 소중함에 눈물을 흘렸다. 엄살이라 생각 마시라. 3월 중순이었음에도 냉기에 옥장판 열이 만나 바닥에 물이 맺힐 정도였다. 4월에 접어들고 이불에서 꿉꿉한 냄새가 나 '옛날 솜이불은 이런가 보다' 했던 자매2는 그렇게 솜이불에 서식하는 곰팡이와 함께 5월까지 함께 살아야 했다. 일본 집들은 기본적으로 단열이 약했던 것 같다. 온돌처럼 열이 올라오지 않고 항상 차가운 상태로 있기 때문에 방 자체가 훈훈해진다는 경험을 할 수 없었다. 자매1은 9월 초 한창 더울 때 일본에 갔는데, 10월부터 솜이불을 꺼내서 이듬해 6월 말까지 덮었다. '나는 추위 안타'라고 말하고 다녔다는 자매1은 말한다. "그러고 다녔던 거 엄청 후회했어. 나도 추위를 탑디다."  


밖은 더울지라도 집은 춥다. 왜 그럴까. 일단 일본은 기본적으로 바닥 난방되는 집이 흔치 않다. 물론 있기는 하지만, 그런 집들은 월세가 기본 200만 원을 넘어서서 계약할 엄두가 나지 않는 게 사실이다. 그리고 집 전체가 아닌 거실 일부만 난방이 된다. 그래서 일본에 사는 한국 분들은 겨울에 거실에 온 가족이 다 모여 앉아 있다고. 일본 주재원들이 가입하는 인터넷 카페에도 '바닥 난방 공사 얼마인가요', '공사 어떻게 했나요' 같은 문의 글이 많이 올라온다. 그러나 우린 가난한 연수생. 1년 살 집에 그런 공사를 할 수도 없다. 어떻게든 그 겨울을 나야 하기에 각자 고안해 낸 삶의, 아니 생존의 노하우가 쌓였다.  


일본에 사는 사촌 오빠가 가져다준 '옥장판'과 '클래식'한 솜이불은 5월까지 나의 따뜻하고 소중한 짝꿍이 되어 주었다.


자매2는 3~5월까진 솜이불과 옥장판의 도움을 정말 많이 받았다. 그런데 진짜 추위와의 전쟁, 겨울은 이야기가 또 달랐다. 우선 나의 은인 솜이불은 더는 겨울을 함께 날 수 없을 지경이 되어버렸다. 곰팡이의 습격을 당한 이불은 세탁도 불가능했고, 냄새를 없애려면 솜을 아예 갈아 끼워야 했다. 어떻게든 버텨보려 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새 이불이 필요했다. 



   

겨울, 진짜 전쟁은 지금부터-10월에 솜이불 사봤니 


월동 준비를 10월부터 했다. 한창 더울 그 시기에.  


10월 한여름에 솜이불을 사서 집으로 돌아가던 길, 땀 뻘뻘 흘리며 솜이불을 이고 가는 내 모습이 웃겨서 찍은 사진


자매2 휴대폰에 재밌는 사진이 한 장 있다. 시부야 니토리에서 솜이불을 사서 그걸 들고 집에 걸어가던 길에 쇼윈도에 비친 내 모습이 웃겨서 찍은 사진이다. 그때 내가 입고 있는 옷은 반팔 셔츠다. 9월 말부터 니토리에선 겨울 이불을 팔기 시작한다. 더위 먹지 않도록 물을 꼬박꼬박 잘 챙겨 먹으라는 뉴스가 나오는 그 시점에 말이다. 일본은 단풍이 지는 시기가 한국보다 한 달 정도 늦다. 10월이면 단풍도 안 졌을 때고 여전히 더운데 그때 솜이불을 사야 하는 거다.  


일본 겨울 기온이 도대체 몇 도기에 이 엄살이냐고 할 수도 있겠다. 사실 일본은 웬만해선 영하 기온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숫자가 모든 걸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지금까지 계속 이야기하지 않았는가. 바깥보다 집이 더 춥다고.   



몸을 굴려서 열을 내라, 그것이 최고의 난방이다


자매2는 특이하게 이 겨울을 이겨냈다. 내 몸의 자가 난방 시스템을 구축했다. 쉽게 말해 부지런히 움직여서 몸에 열을 내는 '무식한 방법'이었다. (왜 난방 기구를 안 썼느냐고 묻는다면, 그 이야기는 잠시 후.) 씻기 전엔 다메(ダメ/안돼). 다 씻고 잠들기 전에, 정말 열심히 홈트 영상을 따라 했다. 살을 빼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짜 몸을 덥히기 위해서였다. 적당히 몸에 열이 오르면 그때 바로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차디찼던 손과 발이 따듯해질 때 그때가 '골든 타임'이다. 이불에 들어가서 TV 보고, 휴대폰 만지작거리면 절대 안 된다. 가끔 이불이 너무 추울 때는 헤어드라이어로 이불속 공기를 따뜻하게 만든 뒤 잠을 청했다. 원시적이었다.  


오른쪽 사진에 희미하게 날짜가 나와 있는데, 2019년 9월의 한여름에 짐볼과 덤벨을 샀다. 그리고 자기 전에 홈트 영상을 보면서 열심히 내 몸의 열을 끌어올렸다.


내 품 안의 따뜻한 너 유탄포(feat. 전골 요리)


자매1도 침대 없이 바닥에 이불을 깔고 지냈는데, 그 위에 토퍼를 올리고, 이불과 토퍼 사이에 전기모포를 넣어서 30분 정도 그 안을 덥혔다. 전기모포를 켜고 자면 정전기가 너무 심해서 잠에서 깰 정도였다.


무인양품에서 판매하는 유탄포. 오른쪽 캡을 열어 뜨거운 물을 넣어 사용한다./사진=무인양품


그래서 선택한 게 유탄포(湯たんぽ)다. 적당히 이불이 덥혀지면 유탄포에 팔팔 끓는 물을 담아 그걸 꼭 안고 이불속에 들어가서 잠을 청했다. 한국에선 써본 적 없는 물건이었다. 겨울철 일본 생활용품 매장에 가면 다양한 종류의 유탄포를 만나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유탄포 정말 뜨겁다. 제품 유의사항에 '이불에 넣고 자지 말라'고도 적혀 있다. 화상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인데, 사실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안 넣고 자면 얼어 죽기 때문이다. 아침까지 잔열은 남아있기에 유탄포로 겨울을 날 수 있었다.   


자매1은 집에서 나베를 만들어 먹었다. 자매2는 집 앞 요시노야에 가서 전골로 몸을 녹인 적이 많다. 겨울엔 나베다.


겨울에 나베도 정말 많이 먹었다. 나베는 일본의 대표적인 전골 요리다. 종류도 다양하고. 사실 맛있어서 먹는 줄 알았다. 물론 맛도 있지만, 이게 방을 덥히기 위해 먹는 거더라. 어쨌든 무쇠 솥에 음식을 담아 계속 끓이면서 먹는 거니까 끓는 동안 난로 하나 켜 놓은 효과가 있는 것이다. 일본 사람들이 코타츠 모여 앉아 나베 먹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거였다. 아무튼 겨울 중 집에서 나베를 정말 많이 먹었다.  


자매2가 한동안 썼던 영상 일기를 돌려보니 10월에 국물 요리를 정말 많이 먹었다. 오른쪽 위 사진의 자막이 보이는가. '추워져서 국물이 먹고 싶다'는. 날짜는 10월 16일이다.


또 다른 팁. 일본에 30년 산 자매1의 지인은 겨울에 너무 추워서 집에 가자마자 가스레인지를 틀었다더라. 가스레인지(인덕션 아니죠) 열로 손을 녹인 기억이 있다고. 이야기 들을 땐 웃었는데, 그것은 얼마 안 가 자매1의 모습이 되었다. 집에 들어가면 손이 굽을 정도로 추위가 몰려왔다. 유탄포에 넣을 물을 끓일 겸 가스레인지를 켜고 그 옆에서 손을 대고 있었는데 정말 따뜻했다.


1년 아닌 2, 3년 체류하는 것이었다면 작은 히터라도 샀을 것이다. 1년 사는데 짐을 늘려 뭐 하느냐는 생각에 별의별 방법으로 추위를 견뎠다. (이렇게 짐을 안 들이고 살았어도 한국에 돌아올 때 짐 정리하느라 힘들었다.)  

여기서 잠깐! 3년 정도 살면 난방용으로 뭐 살래?라고 묻는다면, 자매 2는 라디에이터 자매 1은 온수매트를 사겠다. 아, 자매2는 일단 1층 집 아닌 2층 이상의 집에 입주하는 것으로.


이쯤 되면 궁금할 것이다. 난방 기능 있는 에어컨은 뒀다 뭐하냐고. 현대 문물이 있는데도 우리가 이 궁상을 떤 데는 이유가 다 있다. 일본 고급 주택 아닌 이상, 추울 때 에어컨으로 난방을 해결하려 한다면 당신은 하수!! 미리 짧게 말하자면 '냉바닥 위 공기만 아무리 덥혀봤자 의미 아리마셍~', '내 몸의 수분은 모두 사요나라~'다.

그 속 터지는 이야기는 자매1이 조만간 '또 다른 겨울 이야기'로 전해드리리... 쟈, 마따네!!


(엄격한 여행자의 페이지는 조만간 오픈한다. 활동이 시작되면 링크로 다시 소개하겠다.)




※ 이 연재는 작가 '두번째 행인'과 '엄격한 여행자'가 함께 만들어갑니다. 글과 사진은 두 자매의 소중한 추억이자 자산입니다. 무단 복제·게시는 하지 말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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