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마지막인 줄 모르고 마지막으로 본 날의
1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들
지금 읽고 있는 책은, <새들이 남쪽으로 가는 날>이다. 이 글의 화자는 80대 남자 노인. 이름은 보이고 아내는 치매 초기 증상으로 이미 요양원에 보내졌다. 자신을 돌보아 주는 50대 아들 한스와 한 명의 손녀가 있다. 아들은 다른 집에 살고 요양보호사들이 돌아가며 그를 돌본다. 그는 늙어가고 끊임없이 가래를 뱉는다.
나는 식사를 하며 책을 읽는다. 보는 어김없이 가래를 뱉는다. 오늘은 활자가 연상시키는 이미지와 소리, 그리고 주변의 몇 가지가 불쾌하게 다가왔다. 오늘도 간단하게 도시락을 챙겼다. 셀러리, 오이, 사과, 포도에 발사믹 식초를 뿌리고 올리브유를 두른다. 보통 때라면 보 코치니 치즈를 곁들이지만 오늘은 생략했다. 닭 가슴살과 반숙란 두 개. 올리브 치즈 식빵 두 장. 아메리카노. 간단해 보이지만 거창한 식사다. 어쨌거나 가만히 앉아 식사를 하는데, 옆에 아주머니는 컥컥 소리를 내며 계속 기침을 한다. 방금 전 그 사람이 쓰던 두 개의 테이블 중 한 개의 테이블을 쓰고 있는데. 내가 식사를 하는 이 테이블에도 그녀의 컥컥 대능 기침과 침방울이 묻어있는 것만 같다. 이따가 알코올 티슈를 사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갑자기 그녀는 드러누워 내 쪽으로 발을 내놓고 쉰다. 이건 내 오른쪽의 상황이다.
왼쪽 테이블에 포옹과 키스가 난무하는 중년의 외국인 커플이 떠나고 한 아저씨가 왔다. 그는 신발을 벗고 의자에 다리를 올렸다. 나는 이어서 식사 중이고 그도 부스럭거리며 도시락을 꺼냈다. 부스럭거리는 비닐봉지를 탁 터는 소리, 쩝쩝대는 소리가 들린다. 이내 내 오른쪽 시야에 놓인 의자 위로 신발이 벗겨진 발이 하나 등장했다. 이로써 나는 주인이 서로 다른 두 발 사이에서 식사를 하는 꼴이 되었다.
배가 고파 밥을 먹는데, 여간 비위가 상하는 게 아니다. 지난 주말 이어폰을 헬스장에 두고 왔고 오늘 아침엔 늦어 헤드셋을 챙기지 못했다. 이 쩝쩝대는 소리와 컥컥거리는 소리라도 들리지 않는다면 마음이 한결 편안해질 텐데. 이제는 그의 반찬 냄새가 내 자리를 침범해 온다. 나도 도시락을 먹고 있고 그가 도시락을 먹는 건 괜찮지만, 샐러드를 먹으며 다른 집 장류의 반찬 냄새를 맡고 싶지는 않았다.
식사를 어떻게 끝낸 지 모르게 끝내고 화장실에 갔다. 유아용 세면대에서는 누군가가 발을 올리고 씻고 있다. 한 칸을 열었다. 화장실에 머물렀던 사람은 물을 내리지 않고 떠났다. 두 번째로 문을 연 칸의 변기에선 냄새가 지독하다. 세 번째 칸에선 구렁이를 보았다. 손을 씻으러 세면대에 돌아왔다. 발을 씻던 그녀는 이제 옆에서 세수를 하고 있다. 그냥 벗고 샤워를 하지 뭣하러 고생스럽게 씻나 싶기도 하다. 무슨 사연이 있겠거니 하지만, 부끄러움을 잊은 사람 같다는 인식은 지워지지가 않는다. 양치를 하려는데 유아 세면대에 자리가 비워졌다. 방금 전까지 발을 씻던 모습이 생생하다. 거기선 도저히 입을 헹굴 수가 없어서 꿋꿋하게 몇 분 더 양치를 하는 것으로 나 자신과 합의를 봤다. 양치를 하고 다시 테이블에 앉았다. 두 발과 쩝쩝 컥컥 소리와 음식 냄새가 사라졌다. 나도 책장을 덮었다.
점심시간의 작은 전쟁이 끝났다. 내일은 꼭 이어폰을 챙겨 와야지.
2
늙는다는 것이 수반하는 어떤 불편함 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불편해진다. 돌봄의 능동적 주체에서 수동적 대상자로 바뀌는 것. 남편이 아이에게 화를 내고 내가 아이에게 화를 내는 것들의 일부는 결국 우리가 돌아 받게 되는 일이 아닐까 싶다. 남편은 아이들의 약을 타며, 언제까지 아파서 약을 먹을 거냐고 타박했고 나는 훗날 우리가 먹어치워야 할 수많은 약봉지들이 떠올랐다. 우리의 약봉지는 앞으로 결코 지금의 것 이하로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아이가 자주 화장실을 가고 싶어 하거나 갑자기 가고 싶어 하거나 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울 때 타박을 하는 것도,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와 권리를 무시하는 행동이지 않았나 하는 반성이 든다.
3
어제의 고민
주말을 쉬었으니까 당연히 월요일엔 운동을 가야지 했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운동 가방을 챙기고 나니, 오늘은 모임이 있는 날. 퇴근은 3시 반. 헬스장 혹은 집에 도착하는 시간은 4시. 모임은 7시이고 운동을 갔다가 바로 모임을 가거나 운동을 조금 하고 집에 들러 아이들을 보거나 운동을 포기하고 우주를 데리러 가거나 운동을 포기하고 하다를 데리러 갔다가 모임을 가는 방법이 있다.
운동을 갈지 말지 고민. 가지 않기로 했다. 우주를 데리러 갈까 하다를 데리러 갈까 고민.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더니 정말이다. 우주도 소중하고 하다도 소중하다. 우주 하교와 하다 하원 고민. 우주를 데리러 가기로 했다. 우주는 하교해서 5시면 태권도에 가야 하니까. 우주와 30분을 먼저 보내고 나면 하다와도 5시부터 6시 반까지 같이 있을 수 있다.
결정을 끝내고 우주를 데리러 갔다. 환한 웃음으로 달려오는 우주를 안아주고 우주가 꽃 타임머신을 만들었다고 해서 정문에서 다시 학교 안뜰로 들어갔다. 우주의 작은 초대였다. 이끼와 분홍 철쭉, 철쭉 잎, 노란 민들레, 겹벚꽃의 꽃잎 놓여있었다. 하얀 꽃을 더하고 싶은데 몇 송이가 피지 않았다고 난처해하길래, 잘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꺾어보라고 말을 해줬다. 우주는 하얀 철쭉을 더해 자신만의 꽃 타임머신을 꾸몄다. 무슨 의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우주가 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돌아오는 길에 우주는 철쭉을 보고 이건 무슨 꽃이냐고 물었다. 그것도 철쭉아라고 하니 이렇게 다양한 색이 있다며 놀라워했다. 다홍색도 꺾어다가 꾸미고 싶다고 소중히 꽃 한 송이를 떼어냈다. 약 봉투에 담아서 내일 장식하겠다고 말했다. 나는 그러라고 했다. 내일 우주는 꽃 장식을 할까. 퇴근하고 집에 가서 물어봐야지. 햇살을 받아 우주는 달린다. 꽃처럼, 물과 볕만 있으면 족한 아이처럼 아이는 자란다. 주차를 해놓고 우주와 태권도 근처 카페에 가서 도넛을 사 먹었다. 사실은 이야기가 하고 싶은데, 도넛을 먹느라 입을 쓰는 통에 대화는 많이 하지 못했다. 그래도 빛나는 우주와 4월의 짧은 오후를 함께해서 행복했다. 하루를 쪼개어 추억을 쌓는 데 집중하고 있다. 추억은 쌓이고 쌓여 광물처럼 반짝이는 보석이 될지도 모른다.
4
갑자기 생각난 사람.
지난번에도 비슷하게 글을 쓴 것 같은데 갑자기 생각난 사람이지만 갑자기는 아니다. 그래도 오랜만에 생각난 사람이긴 했다. 퇴근하고 주차장으로 돌아가는 데, 맞은편에서 두 사람이 걸어왔다. 여자는 오늘 고생했다, 하고 말했고 남자는 응 너도,라고 답했다. 두 사람이 서로의 수고를 다독이는 말을 듣고 서 햇살이 쏟아지는 통로를 지났다. 그곳에서 건물 아래가 보였다. 햇빛이 쏟아지는 곳에 나무가 있고 꽃이 있고 사람들이 조그맣게 서있었다. 그때, 그 사람이 생각이 났다.
1년 차. 일이 여전히 서툴고 어리숙하기만 할 때, 나에게 처음으로 커피 한잔하자며 회사의 옥상 맛을 보여준 사람이 있었다. 그는 한참 어린 나에게 언제나 ‘주사님’ 혹은 ‘다희 씨’라며 깍듯한 호칭으로 대해주었다. 그날도 그는 커피는 내가 탄다는 나를 말리고 탕비실에서 믹스커피 두 잔 타왔다. 그는 같은 과 옆 팀의 직원이었는데, 우리는 같은 분야이지만 다른 부분의 일을 하고 서로 공유하는 부분이 많고 협력해야 하는 업무를 하고 있었다. 게다가 우리는 같은 사람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었다. 그가 일하는 팀의 팀장은 우리를 다른 방식으로 괴롭게 했는데, 그에게는 업무 중에 폭언과 욕설을 하며 인신공격을 서슴지 않았고, 나는. 나에게는. 나를 지속적으로 추행했다. 우리는 같지만 다른 업무로, 같은 사람이지만 다른 이유로 괴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의 팀장은 야근을 할 수밖에 없는 나를 자꾸만 집에 데려다준다고 했다. 그러면서 차에서 손을 잡으려 했고, 키스를 시도하려는 통에 나는 거절하다 지쳐 중고차를 사버리고 말았다. 야근이 힘들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팀장에게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에게는 주기적으로 서류를 집어던지고 욕설을 일삼았다. 그의 아내는 사내 직원으로 육아휴직 중이었다. 즉 그는 한 여자의 남편이고, 한 아이의 아빠였다. 내가 엄마가 되고 나서 그 팀장을 생각하면 더 치가 떨렸다. 지금 내가 그런 일을 당했으면 나는 버틸 수 있었을까. 그 당시엔 나는 내가 더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보니 그가 견뎌냈던 무게가 어땠을지 실감이 난다. 그는 그런 시간을 보내면서 어떻게 나에게 힘내라며 커피 한 잔과, 힘들 때 옥상에 찾아오는 법을 알려줄 수 있었을까.
아마도 오늘 나는 그날의 믹스커피 한 잔이 필요한 날이었는지도 모른다. 1층이지만 건물 아래가 훤히 내다보이는 공항 주차장을 향하는 길에, 나는 추억의 그와 믹스커피 한 잔을 했다. 나는 그 덕분에 그 시절 옥상으로 수없이 도망가 많이 울 수 있었고, 그리하여 그 시절을 버텼다. 아메리카노를 흡입하며 눈물을 삼키는 요즘에도 종종 그날의 그 밍밍했던 커피가 생각이 난다. 언젠가 내 글을 그가 볼 수 있는 날이 올까. 이 글을 볼 수 있는 날이 올까. 그런 날이 온다면 좋겠다. 그땐 이 감사의 마음이 꼭 닿기를 바란다.
5
점심시간이 끝나고 들어온 그녀. 예쁜 그녀가 새 셔츠를 샀다. 검은색 크롭셔츠가 예뻐서, 사실은 그 옷을 입은 그녀가 예뻐서 칭찬을 했더니 쑥스럽다며 얼른 퇴근하시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