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30일 생각의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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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마지막 날이다. 이 일을 시작하고 나니 시간이 더 빨리 가는 것 같다.
2
새들이 남쪽으로 가는 날
마지막 책장을 덮었다. 전자책으로 완독한 건 처음이다. 책을 읽었지만 책을 읽은 느낌이 아닌. 무엇보다 이 책은 종이로 읽어야 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미 읽었다. 다음에 다시 읽으면 될 일이다.
3
이어폰을 잃어버렸다. 마지막 장소가 집이라고 하길래 집에 있는 줄 알았지. 오늘 헬스장에 물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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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에는 여러 가지 브랜드와 종류가 있다. 이렇게 많은 브랜드가 있는 지도 오랜만에 실감했다. 공무원 준비를 하는 동안에, 잠시 편의점 알바를 한 적이 있었다. 그 뒤로 10년이 지났으니. 비 흡연자가 담배의 종류를 꿰고 있었을 리 없다.
매장에도 여러 가지 담배가 있다. 국산 제품은 해당 브랜드에서 직접 관리하고 수입 브랜드는 우리가 관리한다. 던힐과 말보로 뫼비우스. 던힐과 뫼비우스는 수량도 적고 메인만 잘 관리해 주면 되는데 말보로와 테리어는 종류도 워낙 많고 재고도 산재되어 있어 관리하기가 쉽지 않다. 이번에 매장을 정리하며 재고를 적지 해 놓을 장소도 마땅치 않아 창고에서 이고 신청을 하는데 꽤나 까다롭다. 오늘은 주로 오후 근무를 하는 수진이가 말보로 재고를 조사하고 이고 신청을 했다. 잘나가는 제품은 20개씩 이고를 해놓는다. 그래야 다음날 출근했을 때 다음이고 신청하고 제품이 나올 때까지 여유가 있다. 9개월 정도 일을 해보니 넉넉해야 여유로운 내 성격에는 그게 편했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그 친구가 이고 신청한 리스트를 확인했다. 메인 제품을 한 개도 신청하지 않았고 더욱이 이고 신청해 놓은 것들도 5개 정도였다. 내가 더 시켜야 하지 않느냐고 두 번 정도 물었더니 그녀는 없으면 오후에 시키면 돼요. 그리고 시키는 스타일은 사람마다 다른 거죠,라고 말했다. 그녀의 말투 표정 분위기에서 기분이 상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보다 입사한 지 1년이 더 된 그녀는 왜 그렇게 속상했을까. 그녀의 반응을 보고서 앞선 배려는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이 들었다. 오후에 바빠서 제품을 이고하지 못할까 봐, 야간 조가 담배가 없어 발을 동동 구를까 봐 고생스럽게 넉넉히 이고해서 고생스럽게 제품을 채워두는 건 하지 말아야겠다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던 9개월의 배려는 오늘로 끝났다.
5
남편도 꽤나 괜찮은 직장에서 일을 하고 있고 나도 일을 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다음 달엔 아이 운동을 보내지 못하게 됐다. 돈이 없으니 몸으로 때운다는 마음으로 다음 달은 우리가 몸으로 더 많이 놀아주기로 했다.
6
같은 시간 일을 하면서 나는 이 정도의 보수를 받고 복지는 없다. 같은 시간 일을 하면서 그들은 그 정도의 보수를 받고 그 정도의 복지혜택을 누린다. 5월이 지나면, 다른 일을 찾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야만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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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골이 없는 매장
공항에 단골이 있을까? 없을까. 공항에도 단골은 있다. 주로 특정 브랜드를 애정하는 사람들이긴 하지만. 그리고 아주 소수이긴 하지만. 그 사람들과 나와의 접점은 없다. 그러나 며칠 전 카드지갑이 예쁘다고 어디서 샀냐고 내가 용기 내어 물어봤던 그 사람이 매장에 들어왔다. 여전히 같은 카드지갑을 쓰고 있었다. 눈에 익지만 아는 사람은 아니다. 그도 나를 기억하지 못했다. 그런 것 같았다. 그러나 이 매장을 주기적으로 들르는 사람은 있구나 하는 것을 처음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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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마지막 날.
해야 할 일이 많았던 것 같은데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5월이 될 것이다. 아니, 아무것도 못하지는 않았다. 살았다. 한 달을 또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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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이 남쪽으로 가는 날
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해야겠다. 퇴근 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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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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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창 밖의 풍경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린다. 여린 나뭇가지는 바람의 방향을 따라 흔들린다. 나뭇가지의 나뭇잎도 함께 흔들린다. 나무의 머리채가 있다면 저런 모양새일까 싶다. 다른 나무의 어떤 가지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바람이 아무리 불어도 그대로 다. 그 옆에 나뭇잎이 아무리 흔들려도 그대로다. 기둥은 곧고 가지는 흔들린다. 보이지 않는 뿌리는 버티는 중일까 생각해 보았다. 여린 자식들이 세상의 풍파에 흔들릴 때 그의 부모는 기둥처럼 굳건해 보이지만 사실 그들도 안간힘을 쓰고 있는지 모른다. 포슬포슬한 땅을 움켜쥐고 있느라 눈도 뜨지 못할 만큼 힘을 주느라 얼마나 거칠어지는지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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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희 님의 글은.
내 글은 어떻게 흘러가야 할까. 나는 어떻게 흘러가고 있을까. 나라는 사람이 물 자체라면 주어진 물길을 따라 흘러가는 것일까. 나에게 선택권이라는 게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만약 내가 물이라면 이미 흘러갈 곳은 정해져 있는 게 아닐까. 내가 지나는 곳이 바위인지 자갈인지 모래인지는 선택할 수 없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내 글은 어떻게 흘러가고 있을까. 내 글이 흘러가는 곳은 나의 인생일 텐데. 그렇다면 내 글은 내가 만든 삶을 따라 흐르게 될 것이다. 내 삶을 선택할 수 없다면 내 글이 흘러가는 곳도 선택할 수 없는 것일까. 전제를 바꿔야겠다. 나는 물이 아니다. 주체성을 가지고 내 삶의 방향을 정해야겠다. 어쩔 수 없이 지나가야 하는 길이라면 시간이라면 받아들이면서도 나아갈 방향만큼은 선택하는 사람으로 살아야겠다. 나는 물처럼 흐르지만 물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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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조각이 많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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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
두 아이를 돌보고 있다. 부모의 적극적인 돌봄이 필요하지 않은 시간이 몇 년 있었다. 취업을 하고 2~3년 정도. 그 사이 나는 모든 돌봄에서 자유로웠다. 부모로부터의 돌봄과 양육자로서의 돌봄에서. 그러나 나는 곧 엄마가 되었고 나의 돌봄은 시작되었다. 어쩌면 결혼이 또 다른 시작이었는지 모르겠다. 나의 엄마 아빠는 살아계시고 시 어머니도 살아계신다. 미래는 모르지만 나의 돌봄의 시간은 앞으로도 창창하다. 그러나 나는 다시 돌보아질 수 있을까 생각했다.
어린아이는 부모의 손길에 수치심을 느끼지 않는다. 아니 그랬었다. 어느 날 5살이 된 아이의 몸에 로션을 바르는데, 아이가 꽥 하고 소리를 질렀다. 엄마가 방금 내 고추를 만졌잖아! 하고. 그때 나는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며 앞으로는 엄마가 만지면 싫은 데는 하다가 로션을 발라,라고 말해주었다. 얼굴과 팔다리는 괜찮으면서 엉덩이는 이제 부끄럽다고 했다. 5살이 된 아이도 수치심을 느끼는데, 그렇게 60년 70년 80년을 산 어른의 마음에서 그런 수치심이 사라질 리 없다. 아니 기력이 사라지면 수치심도 사라질까.
아이를 씻기는 것도 고되다. 불편하고 허리가 아프다. 너희는 언제 커서 혼자 씻을래, 했는데 꼼꼼히는 아니지만 첫째는 7살, 둘째는 4살부터 혼자 씻고 로션도 발랐다. 아이는 5년이면 씻는 것도 스스로 한다. 그러나 늙으면? 언제부터 나는 몸이 아플까. 언제부터 나는 홀로 씻지 못하게 될까. 아이들은 5년만 돌봄을 해주면 웬만한 건 스스로 할 수 있는데 노인이 되면 5년만 도움이 필요한 건 아니다. 그쯤이 되면 나는 아이들에게 짐이 되지 않을까. 누가 나를 돌 보아줄까. 서글프긴 하겠지만 눈치는 주지 않는 돌봄 로봇이 나오지는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돌봄 로봇에게 나를 맡기고 씻기고 기저귀를 갈아달라고 하는 것. 그런 생각을 해보니 산다는 건 끝가지 쉬운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가 커가는 모습은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 부모님이 늙는 모습은 항상 어색하다. 언제나 25살, 어여쁘기만 했던 엄마의 피부가 주름지고 흰머리가 검은 머리를 잡아먹을 때. 나를 결혼 시키자마자 갑자기 할아버지가 된 아빠를 볼 때. 나무같이 단단하고 묵직했던 손에 버섯이 피어난 것을 깨달았을 때. 늘 신식을 추구하던 아빠의 휴대폰이 점점 구식으로 변할 때. 훔쳐 쓰던 엄마의 화장대에 손이 가지 않을 때. 나에게 모든 것을 알려주던 나의 세상이 같은 것을 열 번 알려주어도 매번 어렵다고 할 때. 이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하고 여행을 왔는데 밤새 끙끙대는 소리를 내며 잠이 든 소리를 들을 때. 벼락같이 화를 내던 아빠의 화에 슬픔이 묻어날 때. 엄마가 지치는 순간이 더 많아질 때. 그럴 때. 내가 알던 부모님이 이미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 그런 때. 부모님의 나이 듦을 실감한다. 그리고 그 모습을 돌이키며 사는 건 살아도 살아도 쉬운 일이 아니구나 싶다.
전라도 말로 기언치.라는 단어가 있다. 우리는 기언치 해낸다. 기언치 살아간다. 제아무리 세상이 제멋대로 라도 우리는 기언치 우리의 방향을 찾아가며 산다. 그 과정이 삶이라는 것을 37의 나는 깨달았다. 어린 내가 지금쯤의 나이를 먹은 엄마에게 물어봤던 기억이 난다. 아닌가 10년 뒤쯤이었을까. 아니 사실 자주 물었다. 엄마는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느냐고. 지금 너무 힘이 드니까 돌아가서 과거를 바꾸고 싶지는 않느냐고. 엄마의 대답은 매번 no였다. 그리고 만약 나의 아이들이 나에게 같은 질문을 한다면 나도 매번 no라고 답할 것이다. 아기의 우주와 아기의 하다를 한 번 더 안아보고 싶기는 하지만, 지금의 우주와 하다를 안는 것으로 사실은 충분하다. 나는 그렇게 매 순간 어려운 삶에서 충분한 것을 찾으며 살아가고 싶다. 이미 충분하게 누려서 지금의 오늘에 집중하고 싶다.
돌봄의 끝은 없다. 돌봄이 필요한 존재로 태어나 그런 존재로 죽게 된다. 그때까지 살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축복이다. 아니, 사실 매 순간이 축복이다. 돌봄 받았기에 가능한 오늘의 생이 축복이고 돌보아야 할 아이가 있음이 축복이며 돌봄이 필요할 나이로 늙어가는 부모님이 살아계신다는 것이 축복이다. 결국 오늘도 축복과 감사로 마무리된다.
살아있다는 것이 결국, 축복이며 감사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두서없는 이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