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동생과 함께하는 실내캠핑
일기 예보는 자주 확인하지 않는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비행기는 대부분 뜨고, 나는 출근하니까. 그래도 동생이 온다는 날은 좀 확인을 할걸. 뒤늦은 후회를 해본다. 일요일 저녁에 와서 화요일 저녁에 돌아가는 그 일정의 날씨를 확인할 생각을 하지도 않았을까. 그래놓고서 부랴부랴 초등학생 첫째의 체험학습을 신청하려고 보니 맑다는 월요일은 이미 신청할 수도 없고 비가 온다는 화요일만 가능했다. 파주를 가야지! 생각해 두었는데 그날 비가 온단다. 95%의 확률로. 전국에.
멘붕이 온 나는 월요일은 어떻게 어떻게 동생과 보냈지만 화요일에 할 일은 당일 아침까지 미정이었다. 아직 서울의 운전이 힘든 나는 특히나 비가 오면 멀리 가는 것이 싫었고 가까운 데는 마땅한 콘텐츠가 없었다. 갑자기 생각난 것이 캠핑. 비 오는 날의 캠핑은 분위기가 있으니까. 그렇지만 나는 캠핑 무식자. 장비도 하나 없다. 그래서 어렵사리 찾은 실내 캠핑장을 가자고 아이들에게 사진을 보여주니 모두가 좋다고 했다. 9시에 11시 타임을 예약했다. 장비는 예약한 장소에 다 있고 필요한 것은 고기와 야채 부탄가스 물티슈 정도라 집에 있는 과일과 야채 소스류를 좀 챙기고 집 앞 마트로 갔다. 삼겹살, 목살, 소시지, 쌈장, 쌈 채소와 라면만 사고는 바로 출발했다. 여러 가지 과일과 과자들과 음료들과 초밥. 그리고 무엇보다 떡볶이가 너무 먹고 싶었지만 여동생의 만류로 참았다. 이렇게 단시간에 마트에서 나온 것은 내 인생에 유례없는 일이었다.
주차를 하니 비가 후드득 떨어졌다. 주차장에서 맞은 비가 마지막 오늘의 마지막 비가 될 줄은 몰랐지만 우리는 우중 캠핑을 하러 실내로 들어가는 문을 열었다. 비가 오는 잠깐 뒤 깜깜한 캠핑장과 화려한 조명이 우리를 반겼다. 캠핑의 꽃은 먹는 게 아닐까. 우리는 그 꽃을 열심히도 피워냈다. 준비는 다 되어있어서 가스레인지에 불판을 올리고 고기를 척척 올렸다. 오늘의 고굽녀는 여동생이었고 나는 곁에서 열심히 시중을 들었다.
우주는 차려진 과일과 야채를 보며, 엄마는 언제 이렇게 준비를 다 했어요? 하고 말해주었다. 기특한 우주는 말해주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샐러리와 과일을 먹으며 고기를 먹었고 하다는 열심히 양파와 고기를 먹었다. 실내 캠핑장은 처음이었는데 아이들은 텐트 하나로도 즐거워해주었다. 고기를 먹으며 소시지를 먹고 불판을 치우니 냄비가 올라갔다. 라면과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먹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먹었다. 군고구마와 구운 감자는 불판에 오르지도 못했지만 우리의 배는 이미 풀 차지 되어있었다. 떡볶이를 샀으면 어쩔 뻔했어. 여동생의 타박이 들리는 듯했다.
테이블이 정리되자 아이들과 준비되어 있는 보드게임을 했다. 그곳에 있는 거의 모든 게임을 다 꺼내 한 번씩 맛을 보고, 우리 넷이 할 수 있는 놀이를 하나 골라 신나게 했다. 사실은 셋이었다. 다섯 살인 하다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참여했고 지루할 때는 캠핑 스폿을 빙글빙글 돌았다. 돌아다니며 하는 말은 배가 너무 불러 소화를 시킨다는 것이었다. 같은 타임에 머물렀던 사람들이 떠나자 하다는, 와! 여기 우리가 다 샀다! 하고 말했다. 그 말이 어찌나 귀엽던지. 피식 웃음이 났다.
밖에는 비가 오는데 비 오는 날의 감성은 하나도 없었다. 아쉬운 점을 찾으려 한다면 그렇다는 것이다. 비 냄새도 산의 바람 냄새도 새의 소리도 없었다. 오직 고기를 굽는 냄새, 고기를 구운 냄새. 아이스크림의 달큼한 냄새뿐이었지만 다른 감각으로 우리는 그 시간을 즐겼다. 돌아가며 하다는 우리의 스폿을 지그시 쳐다보더니 말했다.
엄마, 우리 여기 꼭 다시 오는 거야.
응.
약속한 거야. 그러니까 꼭 다시 오는 거야.
응!
문을 열었다. 비가 갠 하늘이 우리를 맞았다. 비 갠 뒤 특유의 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물웅덩이를 보고 첨벙 거리는 하다의 신발은 비를 맞은 것처럼 축축해졌지만 바짓단은 여전히 뽀송했다. 꿈같던 캠핑이 끝났다. 여동생과 보낸 꿈같은 이틀에서도 곧 깨어나야 할 것이다. 그래도 아직, 그녀가 우리와 있다. 초코 식빵을 사러 간다는 작은 핑계로 산책을 하며, 맑은 하늘에 나는 그녀와 우리의 시간을 잠시 가두어 보았다. 여름날의 우리를 기약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