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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림이 언니 최윤순 Dec 05. 2024

아프로디테가 안 나온다고 서럽게 우는 아이들




  작은딸 네와 우리는 뜨거운 여름이 지난 철 지난 가을 바닷가를 찾았다. 바닷물이 성난 파도처럼 휘몰아쳐 주춤주춤 간신히 몸을 지탱하고 바닷물에 뛰어들 엄두도 못 냈다. 바람을 가르며 뛰어가는 아이들!


  며칠 전 손주들은 그리스 로마 신화 책을 펼쳐 보며 얼굴 가득 미소를 짓는다.

  “사랑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  

  아프로디테는 바다 위에 떠다니는 몽글몽글한 하얀 거품 속에서 태어났어요.

  서쪽 바람의 신이 불어 주는 바람을 타고 키프로스 섬에 도착했지요.

  오,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그리스 로마 신화    박선희 엮음  미래엔  P62 )

  손녀가 낭랑한 목소리로 읽어주는 책을 보며 유준이도 할머니도 호기심에 눈이 번쩍 뜨였다.   

  “유준아, 그리스 로마 신화 책에 신들이 많이 나오지?

  너는 어느 신을 제일 좋아해?”

  “예쁜 아프로디테 신이 제일 좋아.”

  “그 신은 어디서 나오더라?”

  “하얀 물거품 속에서 나오지.”

  가끔 퀴즈도 내면서 동생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여섯 살 손녀.


  “진짜 아프로디테 신이 하얀 물거품 속에서 나올까?

  우리 이번 주말에 할아버지 할머니랑 속초 바닷가 가는데 꼭 보자?”

  “응 누나”

  “아프로디테 신이 하얀 물보라를 가르며 나오는 거 보고 싶다. 빨리 보고 싶다.

  주말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유정이와 유준이는 폴짝폴짝 뛰며 빙그르르 돌았다.


  자기들만 아는 신에 대해서 이렇게 흥미롭고 재미있게 웃으며 얘기하는 아이들이 있다니! 나는 어렸을 때 책 한 권도 제대로 읽어본 기억이 없다. 요즘 손주들은 엄마 아빠 손잡고 도서관에 가서 자기들이 주도적으로 책을 고른다. 무슨 책 빌릴 거야? 엄마가 물으면, 유정이가 키워드를 말한다. 엄마는 거기에 맞는 책을 골라서 아이들에게 확인시켜 준다. 마치 자기들 책처럼 마르고 닳도록 읽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당연히 자기가 고른 책에 관심과 애착이 생길 것이다.


  “유준아 아프로디테는 금발머리잖아. 나처럼 머리가 길어. 우리 눈으로 직접 보면 더 신기하겠지? 꼭 우리 눈으로 직접 찾아보자. 약속?”

  아이들은 아빠 차를 타고 가면서도 계속 그리스 로마 신화 책에서 읽었던 아프로디테에 대해 신나게 이야기한다. 한참을 가다가 쉬고, 놀다 가고 드디어 바닷가에 도착했다.

  “야아! 바다다. 파도가 엄청난데 바람도 불어.”

  “엄마 아프로디테가 있는지, 우리 빨리 가서 찾아봐요. 나도 나도.”

  셋은 신나게 뛰어갔다. 모래에 발이 푹푹 빠져 달리기가 힘들었지만 온 힘을 다해 뛰었다. 그때 바닷가에서 거대한 파도가 덮쳐오고 하얀 물거품이 생겼다.

  두 손주는 우뚝 선채 눈을 크게 뜨고 이리저리 훑어본다.


  갑자기 대성통곡하는 손자!

  “엉엉...... 꺼억꺼억...... 할머니, 아프로디테가 안 보여요. 왜 안 나와요?

  하얀 물거품이 저렇게 많은데.”

  아프로디테가 저기 파도 속에서 금발의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나와야 하는데... 자기 눈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움을 지닌 거대한 조각상으로. 부서지는 파도를 가르며 등장할 거라고 상상했던 것일까?


  “엄마 아프로디테가 안 나오잖아. 나도 보고 싶어서 여기까지 꾹꾹 참고 왔는데. 왜 안 보여요.” 유정이 눈에 그렁그렁 맺힌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눈물범벅이 된 유준이가 할머니 손을 꼭 붙들고 서럽게 울어대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옆에 있는 딸과 사위는 허리를 젖히며 웃음을 터뜨렸다. 이를 어쩌지? 손주들은 물거품 속에서 나오는 아프로디테 신을 진심으로 보고 싶다고 우리에게 계속 말했었다.


  거세게 파도치는 하얀 포말 속에서 아프로디테 신이 나온다고 생각했나 보다.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이리저리 훑어봐도 나타나지 않았던 것. 책은 이렇게 엄청난 상상력을 불러일으켜준다. 어린 나이지만 누나와 엄마가 읽어주는 책에서 하얀 물보라 흩날리며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나온다는 것을 여러 번 들은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번에 바닷가로 여행 가서 여신이 얼마나 예쁜지 찾아보려고 기대를 잔뜩 품고 갔었다. 아이들이 겪은 실망감 허탈감에 미안함까지 들었다.


  비록 책에서 봤지만 손주들은 현실에서도 그런 신들을 볼 수 있다고 상상했나 보다. 이렇게 꿈꾸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언젠가는 알아차리겠지? 하지만 그런 마음을 묵살시키는 것은 좋지 않다. 허황된 상상력이지만 자기 스스로 그런 일이 꼭 이루어지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이 중요하겠지.

  지금은 어려서 현실과 상상의 세계를 혼동하며 살아간다. 커가면서 자기 일을 헤쳐 나가며 계획했던 것들이 틀어져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 어렸을 때 이렇게 많은 훈련으로 단련된 마음을 가진다면 허망하게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다.

  자기들이 세웠던 계획들이 무너지기도 하고 때때로 성공하여 기쁘기도 할 것이다.  성공했을 때는 더 커다란 희망을 보고 스스로 자존감이 높아질 것이다. 자기를 믿고 의지하는 그런 튼튼한 마음으로 살아가길 바란다.


  2024년도는 한 강이라는 대한민국 작가가 동아시아의 여성 또는 한국에서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탔다. 그 작가 덕분에 대한민국은 노벨 문학상 보유국이 되었다. 그분도 어렸을 때 끊임없이 책을 읽고 뭔가 메모했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손주들도 계속 도서관을 자기 집처럼 드나들며 책을 접하면 무엇인가 사물 사람을 보는 특별한 시선이 생기겠지! 이렇게 어린아이들에게 책이 주는 이미지와 힘은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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