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심장이 뜨거워서 가만히 있질 못하고 아이들이 뛰지 않으면 아픈 거.” 라고 말한다.
동생이 생기기 전까지 모든 사랑을 독차지했던 형.
“형은 동생의 만만한 스파링 대상일까?”
동생의 끊임없는 도전과 들이받힘으로 형은 조금 더 단단해질 것이다. 기득권을 지키려는 형도 동생을 적당히 무시한다. 동생의 애착 인형을 던지거나 열심히 만들고 있는 블록을 쓰러뜨려 소심한 반격을 하면서 나름의 생존 전략이 생길 것이다. 첫째는 아무런 방해꾼 없이 온가족의 환대와 사랑을 받아왔다. 형에게 동생이 생긴다는 것은 마치 첩을 본 아낙처럼 온 세상이 무너지는 듯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항상 형이 부러운 동생은 형에게 들이대고 끊임없이 치근덕거린다. 그때 형은 주먹으로 한 대 쥐어 패면 속이 후련하고 딱 좋을 텐데. 그래도 참고 속상해 하고 우울해 한다.
오늘 아침도 행동 빠른 동생은 재빠르게 밥을 먹고 밥상머리에서 멍하니 있는 형에게 시비를 건다.
두 손자가 싸움질하다가 우는 놈 도망 다니는 놈 한순간에 온 집안이 아수라장이 되었다.
딸은 화가 치밀고 밥 먹으라고 재촉하다가 큰손자에게
“밥 그만 먹어.”하고 밥그릇을 뺏어 버렸다.
‘그것이 마음의 상처였을까?’ 큰손자가 아침 내내 우울해 보였다.
라떼는 말이야 언감생심 밥투정이라고? 그런 애들은 눈 씻고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도 없었다.
설령 밥 안 먹고 투정부려도 어른들은
“원래 창시(창자)는 못 ~~속이는 것이다. 뭐라도 먹었으니 안 먹는다.”
라며 무관심한 태도로 일관했다. 자연히 창시(창자)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니 밥상머리에 당겨 앉곤 했었다.
오래 전 두 손자를 돌보면서 <제라드의 우주쉼터>라는 동화책을 읽었다.
그때는 손자들과 할머니의 우주 쉼터를 비교해 가며 훈훈한 아침을 보냈던 기억이 난다.
우주쉼터란 슬프거나 힘들거나 화가 났을 때 마음을 안정시키고 감정을 가라앉히기 위해
나만의 공간에 들어가는 일종의 ‘긍정적 타임아웃 제도’ 같은 것이었다. 오늘 아침 엄마에게 밥그릇을 뺏기고 동생과 싸운 뒤 큰 손자는 상심이 큰지 이불을 둘둘 말아 뒤집어쓰고 얼굴을 파묻고 심드렁하다.
딸이 출근 후 조근 조근한 목소리로
“성호야, 너의 우주쉼터는 여전히 이불인거야?”
고개를 끄덕이는 손자 마음을 달래주고도 싶고 방 밖으로 나오게 해서 이야기로 풀어내고 싶었다.
야구 좋아하는 큰손자한테 비타민 c가 듬뿍 담긴 귤을 보여주며
“김 성호, 귤 받아라!”
하니 벽 뒤에 몸을 완전히 숨기고, 얼굴만 반쪽 내밀며 귤을 받는다.
“nice catch, give it back.”
하니 반사적으로 귤을 던진다.
귤을 몇 순배 던지고 받다가 점점 기분이 풀어지는 듯 보였다. 마지막 순간에 손자가 어찌나 세게 던지든지 귤은 저기~~~밥솥 뒤로 떼구르르 굴러가 박혀 노란 파편처럼 화악 터져 버렸다. 나는 호탕하게 웃으며
“워, 워, 워, 우리 성호 엄청 파워 센데.”
우린 서로 눈치 보며 시큼한 과즙이 흘러내리는 귤을 까먹었다.
그 순간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직도 기분이 안 풀렸을까? 벌써 사춘기인가?
몸은 벽 뒤에 완전히 숨기고 반쪽 얼굴만 내민 모습이 너무 웃기고 짠해서 하루 내내 그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찼다. 이 모습은 너무 인상적이어서 그림으로 남겨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둘째 손자와 유치원 등원 길에
“성규야? 요즘 형 마음이 좀 슬픈 거 같으니 형한테 너무 들이대지 말고 잘해라.”
라고 타일렀다. 유모차에 탄 셋째가
“오빠? 나한테도 잘해라.”
그땐 철석같이 알았다고 대답했지만 아마도 도루아미 타불일 것이다.
“그렇지! 애들은 싸우면서 미운 정도 고운 정도 들고 크는 거지 뭐!”
조금만 더 크면 큰손자는 문 닫아 걸고 아무하고도 말도 하기 싫고, 아는 채도 하기 싫은 만사 귀차니즘인 사춘기가 도래할 것이다. 둘이라서 서로 의지하고 셋이라서 지원군이 더 있는 것 같다.
돌이켜보면 우리도 나름의 우주쉼터가 있었던 듯하다. 대학 동기 중 아주 조신하고 단아한 언니가 우리 자취집 근처에 살았다. 그 언니 집에 우연히 놀러 갔었고 언니는 다락방으로 나를 안내했다. 그 다락방은 완전히 서서 걸어 다닐 수 없는 낮은 곳이었다. 다른 사람의 시선과 완전 분리된 그녀만의 특별 공간 우주쉼터였던 것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동화책에나 나오는 다락방을 봤다. 그곳에는 일단 책이 엄청 많아서 깜짝 놀랐다.
그녀가 그곳에서 공부하고 글을 쓰고 있었던 것이 인상적이었다.
나의 우주쉼터는 장정 한두 사람 몸집보다 더 컸던 간장 항아리가 있는 장독대였다.
또한 머리 벗겨지게 뜨거운 여름 날 사방이 툭툭 트이고 빨간 고추가 주렁주렁 붙은 고추밭이었다.
간장 항아리가 어찌나 크던지 타인의 눈에 띠지 않아 하루 내내 숨어 있어도 누구 하나 찾는 사람이 없어서 안심이 되었다. 난 거기서 무엇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엄마한테 혼나고 숨어서 울음을 삼켰든 듯하다. 단지 억하심정으로 내 엉덩이만한 방석에 앉아 주로 학교 공부를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책을 읽거나 일기라도 쓰는 방법을 선택했으면 오늘날 감성이 더 풍요로워졌을 텐데! 라는 생각이 이제 든다. 그땐 단지 식구들과 떨어진 한적한 공간을 발견했던 것이 무척 행복했었다.
‘나만 아는 공간!’
‘아무 죄책감 없이 바쁜 부모님 눈 피해 숨어서라도 한가하게 숨 쉴 수 있었던 공간!’ 그곳이 바로 사춘기 때 나의 우주쉼터였다.
여러분도 기억을 더듬어 보세요.
당신의 어릴 적 우주쉼터는 어느 공간, 누구의 품이었는지?
여러분은 현재, 바로 지금, 나만의 공간 나만의 우주쉼터가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