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들이 부른 뜻밖의 노래, 다 포기하지 마!)
어느 봄날 날씨도 화창한데 딸이 출근하기 전부터 손자 둘이 싸우고 난리다.
남자아이들이라 싸울 땐 인정사정없다. 얼마나 격렬하게 싸우던지 큰손자와 내가
넘어질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야~~~ 너 때문에 우리 둘 다 다칠 뻔했잖아.” 정색하며 화를 냈다. 둘은 궁색한 변명을 대며 뭐가 서운한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근다. 아빠 방에서 울다가 오리 새끼처럼 쪼르르 큰 방으로 들어가 또 문을 잠근다. ‘속상한 것은 이 할머니인데 뭐를 잘했다고 저러지? 무엇 때문에 우는지 나도 알면 좋을 텐데.’ 속이 탔다.
할머니가 큰 소리 한 번 쳤다고 저렇게 둘이 합세해 문을 꼭꼭 잠그고 시위를 하니 얼떨떨했다.
그래도 유치원 갈 시간은 조금 여유 있어서 내 마음부터 진정시키고 기다려야 했다.
그날 기타 공연이 있어 음악실에서 연습하기로 했다.
아이들이 새로운 악기에 관심을 보일까 해서 아침부터 기타를 들고 딸 집에 갔었다.
“일단은 무관심 작전으로 버텨야지!
손주들과도 적당한 밀당이 있어야지 허구한 날 할머니만 속마음을 감추며 애를 끓일 필요는 없지 않을까?”
<다 포기하지 마, 오직 하나뿐인 그대> 합주곡을 불편한 마음으로 연습했다.
그래도 아무 반응이 없다. 이건 아닌가 싶어 아이들이 알 것 같은 <반달, 사랑의 인사, 학교 종>을 연주했다.
이쯤 되면 ‘할머니 뭐야?’하며 톡 튀어나올 법한데 감감무소식이다.
<아빠와 크레파스>는 부끄러워 크게 못 부르고 기타만 살금살금 치고 있었다.
“아니 요것들이 그래도 무소식이네.” 화를 벌컥 내며 문을 똑똑 두드렸다.
“너희가 문 열어주지 않으면 엄마한테 전화해서 열쇠 찾는다. 잉.”
그제야 못 이긴 척 문을 열어주었다.
“왜 우느냐? 너희가 아침부터 싸움질한 것이 잘한 일이냐?”
“아직 마음이 다 풀리지 않아서 울어요.”
라며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손주들 옆에 나란히 누워 할머니도 옛날에 어른들한테 혼나고 슬퍼서 장독대 뒤에 서 펑펑
울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제야 마음이 풀어져 배시시 웃는다.
그날은 큰딸이 아이들을 늦게 하원시키는 날이었다. 저녁을 같이 먹는 날이라 외갓집으로 데려왔다.
큰 가로수 길을 무심코 걷는데 갑자기
“그리움 두고서 가지는 마!
나 홀로 있으면 외로운데!
그대의 얼굴을 바라다보며
정다운 얘기를 나눌래.
어디서 오는지 알 수는 없지만
사랑은 이렇게 달콤한 것!
다 포기하지 마! ~~~다 포기하지 마!~~~.”
둘이 짝짜꿍이 되어 노래를 부른다.
깜짝 놀라 어찌 된 일이냐고 물으니 아침에 울다가 할머니가 기타 치면서 부른 연주곡 가사를
거의 다 외웠다고 한다. “요런 깜찍한 것들!” 하며 두 놈을 옆구리에 끼고 간지럼을 태웠다.
아이들은 무엇이 그렇게 즐거운 지 까르르까르르 숨넘어가게 웃는다.
울면서도 할머니가 뭐 하는지 쏙닥거리며 이런 신통방통한 짓을 하다니!
손주들도 엄마가 출근하고 나면 허전하고 어디에 마음 둘지 몰라 힘든가 보다.
할머니가 아무리 세상에 없는 사랑 듬뿍 주고 있지만 어떻게 자기 엄마만 할까?
가끔 싸움질로 엄마 마음도, 할머니 마음도 박박 긁는 날이 있다. 아마 그날도 그랬던 것 같다.
특별하게 싸울 필요도 없는데 스트레스를 푸는 것인 지! 사실 할머니는 손주들이 말한다고
그들 마음을 다 알아차릴 수 없다. 그날 저녁 딸한테 아침에 일어났던 일을 자세히 말했다.
딸은 박장대소하며 숨넘어가게 웃어댄다.
손자들도 엄마 웃음소리에 깜짝 놀라며 마치 인디언들이 춤추듯이 “우거우거”하며 밥상
주위를 빙빙 돌았다. 초등교사인 딸도 학생들에게 근대사를 가르치는데 정리가 안 되고 복잡해
안무 짜서 열심히 외운다고 한다. 학생들은 다 외웠는데 막상 가르치는 선생님만 못 외우고 허둥댄다고.
손주들이 일주일에 한두 번은 외갓집에 온다. 거의 버스를 타고 오지만 그날은 셋이 조금 먼 길을 도란도란 걸어서 왔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자기를 어떻게 대하는지 다 지켜보고 나름의 잣대로 평가하고 있다.
잘못된 것은 호되게 야단치고 잘한 것은 폭풍 칭찬을 해야 자존감도 높아지고 태도도 좋아질 것이다.
그래야 다음에 그런 상황이 벌어지면 바르게 행동할 것이다. 제3 양육자인 할머니도 손주들 교육에 참여하고 잘잘못은 가려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딸은 조부모는 무조건 아이들을 사랑으로 보듬어 주기만 하란다. 교육은 자기들이 시킨다고 하는데 약간 혼란스럽다.
그날 아이들이 가깝지만 먼 외갓집 오는 길이 어땠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