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 불편한 것보다는 편안함을 추구한다.
요즘같이 풍족한 시대엔 조금의 불편함도 용납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더 강해 보인다.
나뿐 아니라 아이도 어른도 부모도 자식 간에도 서로 불편한 느낌 불편한 관계를 아주 싫어한다.
마치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 뭔가 어색하고 언짢다. 잇속에 무언가 끼면 쩝쩝 소리를 내며 불어내든지 이쑤시개를 동반하든지 기어코 빼내고 많다. 이처럼 불편함 또는 누군가와 불편한 관계는 하루속히 떨쳐버리거나 정리해서 편안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 한다.
불편이라는 사전적 의미는
1) 어떤 것을 사용하거나 이용하는 것이 거북하거나 괴로움.
2) 몸이나 마음이 편하지 아니하고 괴로움.
3) 다른 사람과의 관계 따위가 편하지 않음.
나는 3번 다른 사람과의 불편한 관계를 이야기하려 한다.
몇 년 전 삼 남매 손주 돌보면서 불편함으로부터 독립해서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자기만의 공간을 확보하겠다는 10살 손자의 야무진 전략에 나는 늘 호기심이 일었다.
내가 들어가면 후다닥 무언가를 숨기는데 그것은 바로 태블릿 pc 였다.
‘저 아이는 어떤 콘텐츠를 좋아할까?
왜 비밀스럽게 보려 할까?
설마 이상한 걸 보는 건 아니겠지?
할머니가 아는 것이 그렇게 불편한가?’
계속 숨기려 하고 비밀로 하니 더 호기심이 생겼다.
내가 손주 돌보기 시작할 때 큰딸은 두 손주들 유치원 등원과 3학년 손자의 등교까지 해주고
4시 30분 유치원생 두 명의 하원만 시켜달라고 부탁했다. 중간에 비는 시간은 엄마 마음대로 활용해도 된다고. 3학년 손자도 학교 수업 끝나고 혼자 집에 있는 연습을 할 필요가 있다고.
큰딸은 뭐든 열심히 찾아서 공부하고 새로운 좋은 사람과 인연을 만나고 싶어 하는
엄마를 지지하는데 진심이다. 호기심 가득한 엄마 마음의 주름살이 지지 않도록 관리하는 엄마가 좋단다.
엄마가 무기력하게 허투루 살지 않고 생동감 있게 사는데 자부심을 느낀다며 자기도 나이 들면
엄마처럼 활기차게 살고 싶다고 말한다.
딸은 자기 자식들 돌보느라 엄마가 자유롭게 활동하는데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음을 제일 미안해한다. 하지만 초등학교 3학년 손자 학교 수업이 끝나는 시간은 1시 50분. 얼마 후 손자는 아무도 없는 집에 홀로 들어오는 것이 허전하단다. 손자는 아무도 없는 집에 홀로 들어오는 것이 불편하단다. 할머니가 없어서 허전하고 불편하단다. 딱 그 한마디에 딸은 할머니가 손자를 그저 눈으로만 봐주기를 원했다. 나는 좋아하는 취미활동을 쫀쫀하게 시간을 쪼개 허둥지둥 마친다. 손자가 학교 수업이 끝날 때 즈음 마치 도루에 성공한 야구 선수처럼. 슬라이딩하듯 safe을 외치며 손자를 맞이하기 위해 아슬아슬하게 큰딸 집에 도착한다.
그러나 손자는 우리 생각과는 달리 때로는 할머니가 자기 곁에 있는 것이 불편하기도 한가 보다.
학교 수업이 끝난 후 학원가기 전 2시간 동안 자기 혼자만 패드로 즐기는 공간 확보가 중요했다.
할머니가 미디어 사용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을 손자는 잘 안다.
“성호야? 뭐를 그렇게 재밌게 열심히 보냐?”
물으며 훅 들어가면 반사적으로 멈칫하다가 뒤로 확 물러나며
“아무것도 아니야, 할머니.”
절대로 할머니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철통같이 장벽을 치고 얼굴엔 아리송한 미소를 띠며
할머니를 안심시킨다.
처음엔 할머니가 하고 싶은 것도 포기하며 아슬아슬하게 왔는데
불편한 상대로 생각하는 것 같아 서운했다. 가끔 패드를 보며 키득키득 웃으면
“와~~ 우리 손자는 뭐가 그리 재밌어서 키득키득 웃는 걸까?”
“할머니 말이 더 웃겨서요.”
하며 반박하기도 어려운 달콤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이쯤 되면 10살 손자가 스스로를 지키며
자기가 하고 싶은 것도 챙기며 사회생활을 참 잘한다는 생각이 든다.
할머니의 간섭 즉 불편함으로부터 독립을 철저히 실천하고 있다.
나는 손자가 언제든 무엇이든 물어보면 열성적으로 연구하고 모르는 것은 직접 찾아가며
대답해 줄 만반의 준비가 되어있었다. 할머니가 한가하면 자연히 손주가 하는 것에 집중하게 되고
간섭하면 불편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거나 글쓰기 숙제나 다른 정보 찾는 일에 집중한다.
그렇게 해주는 것이 손자가 불편함으로부터 독립하는데 일조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손자와 나는 각자 다른 일에 집중한다. 가끔
“할머니는 글쓰기 숙제를 하는데 그 숙제는 조금 어려워. 사실 할머니는 글 쓰는 재능은 그다지 있지 않은 것 같아. 그래도 숙제는 하려고 노력한다.”
“너는 숙제 다 했니?”
라고 물으면 손자는 야무지게 숙제를 다 했다고 대답한다.
어쩌면 우리 손자의 전략이 저도 살고 이 할머니도 사는 최선의 방법일 수도 있다.
만약 우리 손자가 할머니한테 일말의 빌미라도 주었더라면 나는 학창 시절 공부깨나 했던
속력으로 허구한 날 손자 공부 가르치는데 올 인하고 감정적으로 지치고 관계는 진즉 무너졌을 것이다.
10살 우리 손자! 적당한 선을 유지해 가며 자기를 지키기 위해 즉 불편함으로부터 독립을 유지해
가는 아주 영리한 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