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향림이 언니 최윤순 Oct 19. 2024

손녀의 명령 편지



  주말이면 텃밭에 자주 간다. 손주들도 할머니도 서로 만나고 싶어 안달이다. 

가깝지만 먼 거리 좀처럼 시간 맞추기가 어렵다. 지난 주말 바람 시원하고 공기 좋은 산속 텃밭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때마침 등장한 손주들 모습에 가슴이 한껏 부풀어 환호성을 질렀다. 

그때 네 살 손녀가 쭈뼛거리며 편지를 건넨다. 


  “할아버지, 할머니 바쁘시면 유정이 언니만 선물로 보내주세요!”

  이런 깜찍한 편지를 받아보신 적 있으실까요?

  아직 한글을 못 쓰는 4살 손녀 성은이가 엄마 손을 끌어당겨 쓰게 한 편지다.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꼭 읽어보라며 들이민다. 자주 만나지 못하는 이종 사촌 언니 유정이에게 보내는

 사랑의 편지였다. ‘아하~~~ 깜찍해라!’ 웃음 폭탄이 터졌다. 




  우리 성은이는 사막에 떨쳐 놓아도 살아남을 네 번째 손주다. 

지난봄 손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큰할머니가 살고 있는 시골집에 놀러 갔다. 

그곳에는 아이들이 8명에, 어른까지 합쳐 16명이 있었다. 

  그날 처음으로 큰할머니 큰할아버지를 만났다. 손녀는 혹시라도 자기 말이 전달되지 않을까 봐 큰 소리로 “큰할머니~~~”라고 간간히 부른다. 그곳에는 많은 닭 강아지 아이들이 있었지만 삼일 동안 가장 많이 들리는 소리는 손녀가 부르는 큰할머니였다. 큰할머니라고 부르는 소리가 어찌나 힘이 세고 우렁차던지! 

깜짝 놀라 돌아보면 모르는 척 자기 이야기에 바쁘다. 


  큰할머니는 깜짝깜짝 놀랐지만 꼼짝 못 하고 손녀의 부름에 복종할 수밖에 없었다. 

잊을 만하면 불렀던 큰할머니라는 소리! 지금도 귓가에 쟁쟁하고 웃음이 배시시 묻어난다. 

자기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내고 생존 전략을 정확히 아는 아이다. 

  그런 손녀가 이번에는 사촌 언니가 너무 보고 싶었나 보다. 

  이 편지는 이모도 이모부도 필요 없고 언니만 데려오라는 손녀의 명령이다. 

  꼭 언니를 만나고 싶다는 마음을 전할 줄 아는 아이. 

  그런 손녀 모습이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운지!




  요즘 성은이는 자기 엄마 아빠가 바쁘고 할머니 할아버지도 바빠서 자주 만나지 못했다. 

지난 주말 텃밭에서 오랜만에 만났다. 할머니는 휴게소에서 파는 통감자 버터구이를 직접 만들어 

한걸음에 달려갔다. 손주들을 만나는 것은 항상 신나고 기대가 돼서 마음은 먼저 텃밭에 닿아있다. 

  ‘그사이 얼마나 컸을 까? 

  오늘은 또 얼마나 기막힌 표현으로 우리를 말 감옥에 가둘까?’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설렌다. 


  먼발치서 할머니 할아버지를 외치며 달려오는 손주들. 

아이들이 튕겨와 내 가슴에 안길 때 기쁨은 극에 달한다. 두 달 전 완두콩을 함께 심었던 얘기를 나누며 

실하게 여문 완두콩도 따고 시금치도 뽑고 상추도 땄다. 방울토마토를 옷에 쓱쓱 닦아 손주들 

입속에 쏙쏙 넣어준다. 생생한 맛 자연의 맛을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다. 시큼하니 툭 터진 토마토즙이 

엄마와 할머니 옷에 튀겼다. 손녀는 무안한 지 애교가 잔뜩 묻어나는 웃음으로 몸을 배배 꼰다. 




   외갓집에 올 때마다 성은이와 유정이는 착 붙어서 여러 가지 놀이하느라 다른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다. 

오빠들이나 동생에게는 전혀 관여하지 않고 둘이서만 그렇게 재밌게 논다. 아이들의 놀이에는 그녀들만의 루틴이 있다. 외갓집에서 실컷 놀고 난 후 집에 가기 전에 욕조에서 퐁당퐁당 하는 것이 다음 루틴이다. 

퐁당퐁당 하는 날은 두 오빠는 빼고 세 살 동생까지 함께한다. 욕조에서 하는 놀이가 끝나지 않으면 

집에 가려하지 않고 울고불고 난리를 친다. 

  “그러면서 정이 들었고 참 놀이의 맛을 알았겠지!

  피붙이와 노는 것이 어느 누구와 노는 것보다 재밌었겠지!” 

  먼 훗날 생각하면 외갓집 욕조에서 퐁당퐁당 했던 것도 재미있는 추억이 될 것이다. 


  야무진 우리 성은이!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것은 챙기고 절대로 놓치지 않는 손녀다. 성은이는 특히 말 표현에 재주가 있다. 

말을 예쁘게 하고 할머니 마음을 살살 녹인다. 손녀는 할머니를 만날 때마다 앳된 손으로 축 늘어진 할머니

 팔을 잡고 만지작거리며 

  “나는 할머니가 좋아요. 

  할머니도 성은이 좋아요?”

  하며 할머니 팔에 뽀뽀하며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인다. 

  두 오빠 밑에서 살아남아야 하니 더 악다구니 써가며 강해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런 성은이가 너무 귀엽기도 하고 측은하기도 하다. 

 ‘우리 손녀, 성은이가 어떻게 커갈지? 

  이 녀석이 무엇이 되려는지!’ 정말 기대된다. 

이전 06화 열 살 손자의 독립 선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