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향림이 언니 최윤순 Oct 22. 2024

그녀의 이름은 : 큰딸의 추천 글



  “엄마~ 엄마~!”

  열 걸음 정도 뒤에서 그녀의 뒤통수를 보고 힘차게 불렀다. 목청이 타고나길 좋은 나였다. 

분명 작은 목소리가 아니었는데 안 들리는지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할머니~ 할머니~!”

  이제는 옆에 같이 가는 언니들이 부끄러워한다. 내 목소리가 커서 그랬겠지. 

우리 셋과 유모차에 있는 성호를 제외하고는 길에 있는 사람은 내가 분명히 아는 뒤통수를 가진 분이다. 

하지만 부지런히 앞을 보고 걸어가고 계신다.

“윤순 최!”

그제야 뒤를 돌아 나를 본다. 그렇다. 그녀는 윤순 최이다. 나의 엄마이자, 우리 성호의 할머니! 

하지만 자기 자신을 윤순 최 (최윤순이라고 이름을 부르지 않고 윤순 죄라고 부른 이유는 

에세이를 읽으신 분이면 알 것이라 생각하여 설명은 패스한다)라고 불러야 알아차리는 분이시다. 

한 남편의 아내이자 세 명의 아이가 있는 엄마. 일하는 워킹맘. K-장녀. 맏며느리 등. 

내가 수행하고 있는 사회적인 역할에 허우적대며 살아온 나에게 엄마가 질문을 던진 날이었다.




  “나는 누구인가?”


  윤순 최 님은 역할에 메이지 않고 나 자신으로 살라는 삶의 태도를 몸소 보여준다.

그녀가 보여준 나 자신으로 사는 삶의 태도는 매우 규칙적이며 촘촘하다. 그녀는 매일 아침 일어나 

기도를 한다. 독서 동아리에서 내준 숙제를 새벽에 충실히 수행한다. 또한 빠짐없이 숙제를 올린다. 

아침밥은 꼭 챙겨 먹어야 한다. 아침을 먹고 걸어서 여덟 정거장 떨어진 운동 센터를 간다. 

점심을 먹고 손주를 만나러 딸 집에 간다. 하원하기 한 시간 전, 읽고 싶었던 책을 읽는다. 

지나 만난 손주와 함께 달콤한 시간을 보낸다. 정기적으로 있는 친구나 동아리 모임 날짜에는 

시간을 꼭 비워놓으려 한다.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딸과 함께 손주 돌보미 스케줄을 조정한다. 


  윤순 최 님은 본인이 공평하게 받은 24시간이라는 시간을 허투루 쓰고 싶지 않아 하신다. 

그래서 시간을 보낼 때 ‘나’ 자신을 중심에 두고 스케줄을 작성하신다. 윤순 최 님은 ‘본연의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끊임없이 탐색하고 실천하는 시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스케줄을 배치하신다. 

내가 살아보니 삶을 살수록 주어진 역할에 치이던데...... 

  역할에 치이지 않고 나를 중심에 놓는 모습을 몸소 보여주고 계신다.

  “엄마, 조금의 광고도 허락하지 않는 스케줄이네!”

  아니, 일을 나가지도 않고, 누가 검사하는 선생님이 있는 것도 아닌데 시간을 굉장히 촘촘히 

쓰시는 것이 놀랍다. 어떨 때 보면 밥 먹는 시간도 없어 대충 때우고 다음 스케줄에 가실 때도 있다. 

나에게 주어진 인생을 허투루 쓰지 않겠다는 듯. 

조금은 비장하게! 



  

 어느 토요일, 나의 신랑(엄마에게는 사위)이 윤순 최 님께 여쭈어보았다. 

  “어머님, 텃밭 일요일 점심에 가기로 했는데, 혹시 시간 바꾸실 수 있으세요? 

더울   수도 있을 것 같아 편한 시간에 가려고요. 언제 가시는 게 좋으시겠어요?”

  “응 그런데, 내가, 오전에는 운동을 가고, 오후 3시에는 00을 만나기로 약속되어 있고, 

저녁 시간에는 00동 모임이 있어서 이 시간밖에 없네. 호호호.”

  “아 어머님은 계획이 다 있으셨군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하하,  텃밭 가는 일이 그렇게 시간을 고정해야만 하는 중요한 일이었군요? 그렇게 바쁘시면 저희끼리 가서 텃밭 일 해놓을까요?”

  “아녀, 같이 가는 게 좋지.”

  “그럼, 날이 더워도 말씀하신 그 시간에 같이 가겠습니다!”




  가끔은 내버려 두어도 괜찮겠지 가지 않아도 괜찮겠지! 하는 텃밭 가꾸기 활동도 

꼭 시간을 내어 열심을 다 하시는 모습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그것도 심지어 

세 개의 스케줄이 있는 가운데 넣어서.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아이가 그냥 얼른 자라기를, 시간이 얼른 지나기를 바라는 내 모습과 오버랩된다.

  “육십 넘은 우리 엄마도 매사에 이렇게 열심인데, 내가 대충 살아서 되겠나?”

  지금, 현재, 여기에서 최선을 다하며 머무르는 삶의 태도.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는 마음. 

그것을 기쁜 마음으로 수행하는 모습. 나는 인생 선배이신 윤순 최 님의 삶을 통해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안 아픈 청춘 엄마”

  내 핸드폰 속에 저장된 윤순 최 님의 닉네임이다. 처음에 이 이름을 지을 때는 윤순최 님이 발끈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이 유행하고 있는 시점이었다. 

  “내가 왜 안 아프냐?”

  뭐 마음 속속들이 알기는 어렵지마는 윤순 최 님이 안 아파 보여 안 아프다고 한 것뿐인데. 

최소한 현재 청춘들이 아파하고 있는 이유로 엄마가 아픈 것 같진 않아서 저장 문구를 바꾸지 않았다. 

그리고 10년째 핸드폰에 같은 문구를 유지하고 있다. 




  안 아픈 청춘이란 말을 풀어서 설명해 본다면, 미래를 편안하게 꿈꾸며 사는 청춘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 윤순 최 님은 미래를 꿈꾸는 사람이다. 

그리고 미래에 일어날 가능성을 자녀인 나에게 주기적으로 이야기한다.

  “나 다음 달에는 동화를 써 보려고.”

  “나 5월에 아파트에서 열리는 노래 대회에 나가보려고.”

  “나 모임에서 같이 책을 써 보려고.”

  “나 팟빵 게스트로 나가서 할머니 육아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나 라인 댄스 공연이 12월에 있어 연습하려고.”

  “나 여고 동창들과 함께 공연에 참여해 보려고.”

  “나 00구에서 하는 육아 에세이에 공모해 보려고.”

  다른 어른들도 이렇게 사시겠지 했는데, 알고 보니 아니었다. 과거를 살고 과거를 곱씹고 계시는 분이 정말 많았다. 방년 66세의 할머니가 미래를 꿈꾸는 것은 흔한 광경이 아니었다. 

보통 저런 말은 아이들이 많이 하곤 한다. 

  “그래서 아이들이 할머니를 좋아하나?”  




  미래의 꿈을 꾸는 사람들은 에너지가 있다. 밝고 명랑한 긍정적인 에너지. 

그 에너지를 윤순 최 님은 가지고 있다. 그래서 다섯 명의 손주는 할머니가 집에 오길 손꼽아 기다린다. 

할머니의 에너지 때문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막상 할머니는 집에 놀러 와도 손주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 할머니가 오늘 했던 일, 

지난번에 했었던 일, 내일 할 일을 이야기하고 본인이 사진 찍은 것을 공유한다.

 아이들은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으면 싫어할 것 같은데, 다섯 명 모두 할머니 곁에서 이야기를 듣는다. 할머니가 자신의 이야기를 다 하고 나면 아이들은 본인이 했던 일들과 내일 할 일을 신나게 이야기한다. 

손주인 아이들은 할머니와 이야기하며 미래에 대한 꿈을 꾸고, 삶에 대한 기대를 품는 것이었다.

 그래서 40분 만에 엉덩이를 떼고 다음 스케줄을 가는 할머니에게 또 오라고 보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윤순 최 님에게는 삶을 열심히 사는 에너지가 있다.



  나는 윤순 최 님과 함께 있을 때 엄마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녀의 이름은 윤순 최이다. 

그녀는 나보다 삶을 앞서 걸은 사람이다. 또한 삶을 정성스럽게 사는 방법을 알려준 사람이다. 

늘 나에게 삶의 영감을 제공해 주는 인생 선배이다. 

  나는 앞으로도 윤순 최 님과 계속 함께 하며 정성스럽게 한 땀 한 땀 삶을 꿰어 볼 것이다.

이전 01화 인생의 두 번째 봄: 다섯 손주와 나누는 행복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