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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eong Dec 31. 2023

이제는 안녕, 미스터 크랩

Ppaarami’s Diary(23)

12월 31일


  올해 마지막 외식 메뉴는 'MR.Crab(미스터크랩)'이다. 매콤한 태국식 게살 소스와 함께 먹는 볶음밥이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식당에서 파는 음식이다. 음식 가격은 2,350루피이고 여기에 서비스차지를 더해 2,585원을 받는다. 한국돈으로 1만 원이 넘는다. 볶음밥에는 줄기콩이, 소스에는 고수가 들어가 있다. 줄기콩의 식감은 참을 만 하지만 고수의 향은 내내 거슬렸다. 고수를 빼달라는 말을 한다는 것이 또 깜박했다. 미스터크랩이 별로 맛있지 않다는 것도 또 잊었다. 먹을 때마다 다시는 먹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는데, 그 다짐을 잊으면 또 먹게 되는 것이다. '크랩', '태국식', '매콤한'이라는 음식 소개 문구에 자꾸만 현혹된다. 나는 크랩을 좋아하고 태국음식을 좋아한다. 매운 음식은 안 먹지만 적당히 매콤한 맛은 가끔 당긴다. 이 세 가지가 어우러져있다는 메뉴 소개 글은 내 입맛을 돋우기에 충분하다. 


  반면, 나는 고수를 싫어하고 볶음밥을 선호하지 않으며 스리랑카 음식을 잘 안 먹는다. 그래서 '태국식'이라는 문구에 자꾸 당한다. 스리랑카식을 피하려다 태국식에 당하는 것이다. 태국식에는 고수가 들어갈 확률이 높고 그래서 나는 '마이싸이팍치라'는 단 한 문장의 태국어만큼은 원어민처럼 구사하는데, 태국식이라고는 하나 결국에는 스리랑카 음식인 미스터크랩에는 스리랑카 음식 특유의 짠맛과 고수향이 공존한다. 고수잎을 골라낸 소스를 약간만 밥 위에 올려 입 안에 넣으면 짠맛과 고수향이 입안을 가득 채워 입으로 숨을 쉬게 만드는 이 음식을 올해 벌써 세 번째 먹었다. 


  스리랑카에 살고 있으니 웬만하면 스리랑카 음식과 원만한 합의를 이루어 잘 먹고 살 잘 아야 하겠지만, 끝내 소원해진 것은 스리랑카 음식의 상당수가 맵고 짠 탓이다. 맵고 짠맛을 좋아하지도 않거니와 맵고 짠 음식은 수분 섭취량을 늘려서 화장실에 자주 가게 만든다. 집에서야 한 시간에 화장실을 두세 번씩 가도 괜찮다. 그러나 밖에서는 방광이 눈치를 좀 챙겨줘야 한다. 어떤 날은 쾌적한 화장실 가까이에 머물게 되지만, 어떤 날은 사람을 무조건 불쾌하게 만드는 화장실만 있는 곳에  머무르게 된다. 후자인 날에는 물을 마시지 않는다. 화장실에 가고 싶어도 참는 편이다. 집에 갈 때까지 방광을 어르고 달래서 저장용량의 한계까지 몰아붙인다. 집에 도착해서는 신의 이름을 부르며 화장실로 뛰어들어간다. 그 와중에 갈증으로 목이 탄다. 매운 음식만 피하면 되는 문제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게 안되니 나도 이러는 것이다. 스리랑캉 음식은 겉으로 봐서는 맛을 짐작할 수 없는 것이 많다. 맛을 짐작할 수 없는 음식은 실제로 먹어보면 대부분 매웠다. 크림빵처럼 생겼는데 그 안에 매운 속이 들어있기도 하다. 단팥 호빵인 줄 알고 먹었는데 불닭소스가 들어있는 호빵이라면 눈물이 날 수밖에 없다. 안 그래도 힘든 타지 생활에 그렇게 눈물을 보태다가 나는 결국 스리랑카 음식과 멀어져 버렸다.  


  집에 돌아와 깡생수를 병나발 불며 이사이에 끼어있는 고수쪼가리를 색출했다. 나는 몇 번이고 미스터크랩을 되뇌었다. 이번에는 기필코 그 이름을 절대로 다시는 먹지 말아야 할 음식 목록의 기억저장고에 처넣을 것이다. 그리고 전에 부르던 신의 이름을 부르며 소원을 빌 것이다.

부디 2024년에는 미스터크랩을 다시 먹는 불상사가 생기지 않기를!



미스터크랩이다. 2023년과 함께 이별을 고한다.



스리랑카 자프나 JAFFNA에서 먹은 오징어커리와 크랩커리. 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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