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출근길 친구에게서 카톡이 왔다.
지갑을 놓고와서 버스를 타고 내렸다, 다시 집에가서 지갑을 가져왔는데 착각하고 다른 버스를 탔다, 일진이 사나워서 지하철로 갈아탔는데 버스도 타야했다, 라는 내용이었다. 결론짓자면 오늘 무언가에 홀려서 일이 제대로 안풀리는 느낌?
나는 이럴 때 도깨비의 장난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도깨비는 일본 도깨비와 다르다. 우리 곁에 있는 도깨비는 사람과 교류하는 존재다. 인간과 말을 나누고, 장난을 치고, 도와주기도 하고 혼내기도 한다. 정겨운 존재. 두렵다기보다 신기하고 엉뚱한 면모가 많다. 그래서 오래된 물건이나 자연물에 혼이 깃들어 생긴다는 전설을 자주 볼 수 있다.
즉, 우리 도깨비는 우리 곁에서 심심할때마다 맴돌며 장난을 치고 즐거워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다들 그럴때가 있다. 갑자기 한쪽 양말이 없어졌을 때. 잘 있던 리모컨이 사라졌을 때. 아무리 찾아봐도 어디있는지 모를 때. 그럴 땐 보통 도깨비가 숨겨둔 거다. 그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깨비한테 간식을 주며 찾아달라고 하면 된다.
그럼 신기하게도!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던 양말이 어디선가 짠! 하고 보이고 아무리 뒤져봐도 없었던 리모콘이 슉! 나타난다.
가끔 깨비한테 돌려달라고 해도 안돌려 줄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깨비가 그 간식이 맛 없는거다. 그래서 새로운 간식으로 새로운 편지와 한번 더 두면 깨비가 찾아준다!
나는 이 메모를 꽤 오래전부터 썼다. 20대 초반부터 했으니 아마 10년 넘게 깨비가 나에게 장난을 치는 거 같으면 깨비에게 먹을 걸 줬다. 근데 최근 2년간은 깨비가 장난을 친적이 없어서 편지를 안써본지 좀 됐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양말 한짝이 또 없어져서 아잇! 깨비가 또 가져갔네! 했더니 바지 발목 부분에 말려서 껴있는걸 바로 발견했다.
지금보니 깨비가 장난을 안쳐줘서 최근엔 편지도 잘 못쓰고 급 서운하다. 요즘 우울한 사람이 많아서 그런가, 힘들어하는 사람이 많아서 그런가 깨비가 그 사람들 위로해주려고 몰려갔는지 내 주위에 잘 안보인다.
내 우주에서 깨비는 귀엽고 과자 좋아하고 가끔 양말을 숨기고 사람을 아주아주 좋아한다. 여유가 없는 사람들 마음 속 틈에서 여유를 찾아주려고 오늘도 깨비는 고분군투한다.
길가다 이유없이 웃긴 생각이 떠올라서 미소가 날때, 괜히 기분이 좋고 상쾌한 컨디션일 때, 혼자 있는데도 외롭지 않고 나를 돌보는 시간이 편하고 좋을때 깨비가 항상 우리 곁에서 지켜주고 있다는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