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채우고 있는 무기력의 부피에 비하면
기쁨이 차지하는 부피는
마치 아이스커피에 떠있는
다 녹은 얼음 조각들 같이 작은 것들이었다.
나는 기쁨의 '부피' 보다는 '무게'를 추구했었는데
최근에서야 '부피'의 중요성을 깨닫기 시작했다.
비록 '낮은 밀도의 기쁨'이라 하더라도
많이 채우기만 하면 무기력은
일상 밖으로 밀려나 버린다.
기쁘려면 좋아하는 것을 해야 하는데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여러 제약들을 고려하여
이것저것을 제외하고 나면
매일매일의 자투리 시간을 채우기에는
다양함이 부족하다.
나는 나 다운 짓과 아닌 짓,
재밌을 것 같은 것과 아닌 것을
미리부터 너무 잘 구분해 놓았던 것 같다.
'부피'를 위해서는 기준을 낮춰야 한다.
그래서 기쁠지 아닐지는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평소에는 손이 잘 안 가는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하기로 했다.
다 해봤던 일들이라 기대되지는 않았지만
내 마음은 허기져서 뭐라도 삼켜야 했다.
책 한 권을 하루에 다 읽어 버린 날.
두세 편의 글을 종일 쓰고 다듬은 날.
비가 와서 동네 도서관 열람실을 대신 산책한 날.
별생각 없던 사람들에게 말 걸어본 날.
방구석에 있던 바벨을 100번 들어본 날.
맘먹은 다음날에 북한산 정상까지 올라간 날.
기쁨이 샘솟는 정도는 아니지만
좀 더 자주 느꼈고 과거의 슬픔과는 꽤나 멀어졌다.
맘먹었다는 것, 실천했다는 사실로 그저 기분이 좋았다.
뭐라도 삼켜야 했기에 맛은 중요하지 않았다.
동시에 부작용도 발생했다.
잠시도 나를 가만히 두면 안 된다는 강박,
완벽주의 발동, 창작의 고통,
수면 부족, 근육통, 피로감,
과한 몰입으로 회사 일을 제대로 못했던 날.
하지만 부작용은 두려워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긍정해야 할 대상이다.
빨리 이겨내면 되는 것이다.
기쁨'만'을 얻는 것은 불가능하다.
모든 일들은 기쁨과 슬픔 외에도
여러 감정들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일을 할 것인가를 선택하는데 중요한 것은
그 일이 동반한 기쁨의 '지속성'이다.
쉽게 녹지 않는 얼음 조각 말이다.
니체에 따르면 자신의 정신과 육체를 더 강하게
고양시키는 일을 실천하면 힘이 증가된 느낌,
저항을 초극했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자신이 삶의 주인이라는 그 느낌이
'지속성 있는 기쁨'이라 생각한다.
자극에 민감하면서 안락만을 탐하는
인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
어렵긴 하지만 지성을 열어주는 인문학 공부.
문학과 예술 같은 창조적인 활동.
격투나 익스트림 스포츠 같은 두려움에 맞서기.
험한 산에 끝까지 오르거나
마라톤을 완주한다거나 하는 완결에의 도전.
기쁨보다는 힘듦이 먼저 오는 그런 일들.
그래서 수행이나 단련 같은 성격이 있기는 하지만
너무 억지로만 하지 않으면 괜찮다.
무기력을 슬픔으로 밀어내서는 안 된다.
인생이라는 노트에다가
슬픔으로 꾹꾹 눌러쓴 페이지들.
혹시 잊을까 봐 모서리를 접어 두고
무료함이 생기면 자주 들여다보았다.
매일의 뻔한 일상 위에 있을 때 보다
과거의 슬픈 심연 속에 빠져 있을 때가
나를 더 요동치게 했기 때문이다.
슬픔은 빠르게 성숙으로 전환되어야 하는 것이지
붙들고 있을 것이 아니다.
쾌락으로만 밀어내서도 안 된다.
그것은 커다랗지만 금방 녹아버리는 얼음 같은 것이다.
게임이나 포르노 같은 것들은
부피도 밀도도 몰입감도 클 뿐 아니라
큰 노력 없이 쉽게 취할 수 있기 때문에
금방 일상으로 들어와 버린다.
그 커다란 부피는 당장의 무기력을
몰아내는 데 효과적이지만
다른 기쁨들까지도 몰아낸다.
그리고 금방 녹아버리는 탓에
쾌락의 상실감을 크게 느끼게 되고
그 상실감은 슬픔이 된다.
"우선 나부터 기뻐야 남도 기쁘게 할 수 있데."
여러 가지 알려 준 고마운 친구가 해준 말이다.
'나부터'라는 이기심은 공모자 노릇을 했다.
회사 일은 내일로 모레로 미루기.
조용히 일등으로 퇴근하기.
뻔한 대화가 있는 술자리는 회피.
가족과 대화 줄이고 내 할 일 하기.
좀 미안한 마음을 갖는 정도가
내 도덕심을 다독여 주는 전부였다.
어떤 날은 종일 기분이 좋아서
남들에게도 더 상냥했던 날도 있었으나
아직 남을 기쁘게 해 줄 만큼 내가 기쁘지는 않다.
그래도 그런 날이 있었으니까 조금 더 채워가면
뒷사람을 위해서 출입문 손잡이를 잡아준다거나
버스에서 내릴 때 기사님께 감사인사를 하는 일이
조금 더 진실된 행동이 될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