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 간 도서관 책
도서관에서 빌린 <한국이 싫어서>를 읽는데, 누군가 밑줄을 쳐놨다. 많은 사람들이 대여한 듯 손 많이 탄 질감과 기름때로 가득한 책이었지만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아무런 낙서가 없었다. 오로지 저 문장 뿐이었던 것이다. 누군가가 연필로 다급한 느낌의 선을 그어놓은 것은. 생각해보면 과연 책 전체를 관통하는 테마에 해당하는 문장이었다. 그리고 좀 원통한 문장이다. 잘은 모르지만 이렇게 연필로 막줄을 그은 누군가의 마음도 그 원통함에 깊이 가서 닿지 않았겠나 싶다. 책이 나온지 8년이 지났는데, 아마 18년쯤 지나도 누군가는 필히 같은 문장에 원통한 밑줄을 긋고 있을 것이다. 세상에 원통한 것들은 점점 늘어갈 것이기 때문에.
* 위의 짤막한 글은 내가 2021년 처음 이 책을 빌려 읽으면서 밑줄을 발견한 뒤 생각했던 것들을 적은 글귀로, 그 원본에 약간의 수정을 더하여 다듬어 본 문장이다.
요즘 종종 도서관에서 책을 빌린다. 지적 허영심으로 인해 책을 구매한 뒤 읽지도 않고 아득바득 쌓아 놓기만하는 고약한 버릇을 오랫동안 고치지 못하는 입장에서, 한 동안 멀어졌던 도서관에 다시 발을 들여보는 편이 좋을 것 같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책에 밑줄이나 동그라미, 그 외 다양한 낙서가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물론 도서관 책은 깨끗하게 봐야 하지만 가끔 어떤 밑줄이나 낙서들은 제법 재미있다고 생각되는 것들이 있었다. 누가 했는지 모를, 이 공공재에 대한 불명예스러운 표기들을 보며 때로는 누군가의 생각과 태도, 삶의 모습까지 상상해 볼 수 있었고 이따금 망상 가운데 혼자 이죽거리곤 했던 것이다.
도서관 책을 읽는 동안 어떤 독자들의 재미있는 흔적들을 발견하면 하나씩 저장하고 또 문장으로 풀어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한참동안 깨끗한 책만 만나게 될 수도 있고 날 전율케 하는 그 어떤 낙서도 만나지 못한 채 수 개월이 흐를 수도 있다. 아무려면 어떠랴. 얼마쯤씩 있다가 가끔 만나는 것들이 유독 반가운 법 아니겠는가. 반납 기일을 지켜 달라며 꼬박꼬박 오는 문자에 무거운 엉덩이를 일으켜 도서관을 찾아야 하는 것 또한 나날이 늘어가는 나의 뱃살을 생각했을 때 꽤나 보람된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