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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트너 Mar 03. 2023

<한국이 싫어서>, 장강명, 민음사

밑줄 간 도서관 책



도서관에서 빌린 <한국이 싫어서> 읽는데, 누군가 밑줄을 쳐놨다. 많은 사람들이 대여한   많이  질감과 기름때로 가득한 책이었지만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아무런 낙서가 없었다. 오로지  문장 뿐이었던 것이다. 누군가가 연필로 다급한 느낌의 선을 그어놓은 것은. 생각해보면 과연  전체를 관통하는 테마에 해당하는 문장이었다. 그리고  원통한 문장이다. 잘은 모르지만 이렇게 연필로 막줄을 그은 누군가의 마음도  원통함에 깊이 가서 닿지 않았겠나 싶다. 책이 나온지 8년이 지났는데, 아마 18년쯤 지나도 누군가는 필히 같은 문장에 원통한 밑줄을 긋고 있을 것이다. 세상에 원통한 것들은 점점 늘어갈 것이기 때문에.



* 위의 짤막한 글은 내가 2021년 처음 이 책을 빌려 읽으면서 밑줄을 발견한 뒤 생각했던 것들을 적은 글귀로, 그 원본에 약간의 수정을 더하여 다듬어 본 문장이다.

요즘 종종 도서관에서 책을 빌린다. 지적 허영심으로 인해 책을 구매한 뒤 읽지도 않고 아득바득 쌓아 놓기만하는 고약한 버릇을 오랫동안 고치지 못하는 입장에서, 한 동안 멀어졌던 도서관에 다시 발을 들여보는 편이 좋을 것 같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책에 밑줄이나 동그라미, 그 외 다양한 낙서가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물론 도서관 책은 깨끗하게 봐야 하지만 가끔 어떤 밑줄이나 낙서들은 제법 재미있다고 생각되는 것들이 있었다. 누가 했는지 모를, 이 공공재에 대한 불명예스러운 표기들을 보며 때로는 누군가의 생각과 태도, 삶의 모습까지 상상해 볼 수 있었고 이따금 망상 가운데 혼자 이죽거리곤 했던 것이다.

도서관 책을 읽는 동안 어떤 독자들의 재미있는 흔적들을 발견하면 하나씩 저장하고 또 문장으로 풀어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한참동안 깨끗한 책만 만나게 될 수도 있고 날 전율케 하는 그 어떤 낙서도 만나지 못한 채 수 개월이 흐를 수도 있다. 아무려면 어떠랴. 얼마쯤씩 있다가 가끔 만나는 것들이 유독 반가운 법 아니겠는가. 반납 기일을 지켜 달라며 꼬박꼬박 오는 문자에 무거운 엉덩이를 일으켜 도서관을 찾아야 하는 것 또한 나날이 늘어가는 나의 뱃살을 생각했을 때 꽤나 보람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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