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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두진 Apr 14. 2021

내 손으로 관리할 수 있는 집

재료에 대한 갈망이 있어요. 어렸을 때 아버지를 따라 세검정에서 평창동으로 차를 타고 가곤 했는데 어린 눈에도 고급 소재로 지은 집은 때깔이 달랐어요. 집에 아버지가 외국에서 가져온  책들이 있었는데 인쇄 선명도가 다르다는 것도 알았고요. 지금 제 집을 고치고 있는데, 논현동에 가면 강남 사모님들의 간택을 받지 못한, 유행 지난 외산 건자재를 파는 집들이 있어요. 거기에서 옛날 그로헤(Grohe), 두라빗(Duravit), 이런 것들을 뒤지고 있지요.   


서울 세검정 출신 53년생 한 남자가 고등학교를 마치고 부산의 한국해양대에 진학해서 마도로스가 되었다. 그 남자는 항해사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바다 위에서의 생활을 접고 육지의 회사로 취직했다. 그 회사에서 만난 동료 여직원과 결혼해 부산에 자리를 잡았다. 1983년 첫아들이 태어났다.  이렇게 지금은 기억에도 없는 부산시 중구가 서류상 고향이 되었다.


아버지는 1987년 어느 날 부산 생활을 접고 가족과 짐을 용달차에 실어 고향인 서울로 향했다. 서울로 가는 고속도로가 당시 4세 남짓했던 기억 속의, 인생 첫 장면이다.


처음으로 가족이 정착한 곳은 구로구 시흥 4동. 근처에 법원이 없는 ‘법원단지’ 정류장에서 아이 걸음으로 5분 정도 산 쪽으로 가면 있는 다세대 주택에 살았다. 처음 서울에 살 때 종로 토박이인 아버지는 내심 부모님이 있는 신영동 쪽을 원했지만, 부산 모던 걸 어머니의 반대로 타협한 결과 금천구로 옮겼다. 3층 건물의 1층이었는데 좁은 거실에 방 하나의 작은 집이었지만 화장실은 내부에 있었다. 여기에서 산지 2년 정도 되던 1988년, 올림픽의 해에 동생이 태어났다.


또 이사를 갔다. 순흥 안 씨 묘역에서 가까운, 산 쪽으로 더 가까운 평지에 새로 지은 2층 다세대 주택의 1층이었다. 그런데 반지하가 있어 마치 3층 집의 2층 같았다. 복도와 거실, 방 2개, 거기에 역시 내부 화장실. 세면대가 없어서 대야에 물을 받아서 썼다. 전의 집보다 넓어졌기 때문에 불편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안방 창을 열면 산이 보였다. 시냇물을 막아 댐을 지으며 놀았고 자연이 어색하지 않았다. 돌이켜 보면 구로공단 노동자들의 베드타운 같은 이 구로구 시흥 4동에서 무려 10년 가까이 살았다. 집보다는 동네에 대한 기억이 더 많다.


이때부터 좁은 집에 사는 경험이 익숙해진 것 같다. 집이 ‘넓지 않다’는 감각은 있었지만 그 집이 커져야 한다는 생각은 잘 들지 않았다. 어릴 때 부모님과 집안 청소를 늘 같이 해서였을까. 청소를 직접 하다 보니 ‘집이 넓으면 청소할 면적이 더 커지는 거잖아’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다.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하게 된 외삼촌이 부산에서 올라와 함께 살았다. 다섯 식구가 10평 정도 되는 작은 집에 살았다. 외삼촌과 작은 방을 함께 썼다. 가족 행사가 있을 때면 시흥 4동에서 지금은 없어진 세검정 신영아파트 정류장 근처에 있는 본가에 가야 했다. 아버지는 회사에서 퇴근 후에 왔기 때문에 갈 때는 어머니와 함께 대중교통을 탔다. 법원단지나 세검정은 지금도 지하철 역세권이 아니다. 그래서 남영역 혹은 마포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갔다. 그 과정이 너무 고되고 디젤 매연이 심해서 가뿐 숨을 몰아쉬거나 심지어 토하기도 했다.


할머니가 살던 그 한옥에 대한 기억도 좋다. 앞마당과 뒷마당이 다 있었다. 대청마루와 앞 마루가 있는 ㄱ자형 한옥이었다. 한옥 특유의 '다공성'이 있었지만 백사실 아래 세검정의 추위를 견디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한옥에 조금씩 증축이 더해져 지금은 밖에서 봤을 때 한옥인지 아닌지 모를 집이 되어있다. 한옥의 자취가 남아 있는 곳은 지붕이 노출된 실내 정도. 어릴 때는 뚫려 있는 대청마루에 할아버지가 앉아 계시곤 했다. 안방은 부엌과 바로 붙어 있었고, 부엌과 안방을 오가는 문의 높이는 보통 문보다 낮았다.


1998년, 드디어 우리 가족은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영등포구 도림동에 있던 작은 아파트였다. 그 동네에도 대단지가 있었지만 여러 이유로 한 동짜리 Y자형 아파트를 분양받은 것으로 기억한다. 세 개의 날개에는 각각 48평, 32평, 17평형이 들어가 있었는데 이사 들어간 집은 32평이었다. 작은 단지라 오히려 더 좋았다. 나중에 잠원동, 반포나 목동 같은 곳의 대형 아파트 단지를 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곳에서라면 정말 경쟁이 심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아파트에서의 삶에 대해 약간 첨언하자면, 상상 이상으로 쾌적했다. 처음으로 나만의 방이 생겼고 욕실도 두 개가 생겼다. 동시에 위층과 아래층이 똑같은 집에 산다는 게 내심 신기했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이전에 살던 다세대주택은 좁고 불편했지만 집마다 평면 구획이 다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모두 같은 평면에서 사는 아파트라는 것이 묘하게 특이해 보였다. 게다가 근처에 신도림역이 있었다. 즉 갑자기 ‘역세권’으로 이사 온 것이었다. 여기서 계속 다섯 식구가 살았다. 그 사이에 군대를 다녀오기는 했지만 2018년까지 무려 20년 동안이나 살게 될 집이었다. 대학도 이 집에서 갔다. 원래 건축과를 가고 싶었고 거의 갈 뻔했었는데 나름의 사연 끝에 영문과에 가게 되었다. 그때는 조금 슬펐지만 지금은 괜찮다. 그 대학에 간 가장 큰 이유는 집과의 거리가 가까워서였다.


주거와 관련해 생각난 에피소드가 하나 더 있다. 홍대 근처에 살던 친구 집에 놀러 갔을 때의 일이다. 친구의 집이 A동 201호였다고 치면, 어느 날 실수로 길을 잘못 들어 바로 옆 건물인 B동 201호에 갔다. 친구는 문을 잘 열어 두고 다녀서 그 친구의 집에서 시간을 자주 보냈는데, 하필 그 B동 201호도 문이 열려 있었다. 무심코 들어갔다가 조금 후에야 두 집이 다른 집인 걸 알았다. 현관 이후의 레이아웃 – 현관 옆으로 소파가 있고, 그 소파 맞은편에 TV가 있는 등 – 이 거의 흡사했기 때문이었다. 그때의 경험이 마음에 크게 남았다. 왠지 몰라도 ‘다 똑같은 평면에서 똑같은 집기 구성으로 살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립을 했다. 직장과는 한참 떨어져 있는 신촌 근처의 한 마당 있는 집을 구해서 살았다. 대화 방식이 특이한 할머니가 집주인이었다. 이 집에 대해서는 얼마 전에 펴낸 책 ‘첫 집 연대기'에 자세히 적은 바 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낡은 집이었지만 이태리 타일을 사다 깔았고 외국 출장길에 무모하게 사온 가구를 놓았다. 오디오도 발품 팔아가며 중고를 하나씩 모았는데 그 과정에서 살고 있는 도시를, 그리고 사람들의 여러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 역시 또 다른 책 ‘우리가 이 도시의 주인공은 아닐지라도'에 소개했다. 어느덧 삶이, 그리고 집이, 직업적 글쓰기의 좋은 소재가 되기 시작했다.


지금은? 서울 어떤 산기슭의 오래된 아파트를 고치고 있다. 경관과 입지가 중요하고, 높은 곳을 좋아한다. 마당도 좋지만 실내화된 마당이 더욱 좋을 것 같다. 그리고 굳이 우선순위를 생각하자면 부얶이나 세탁 설비는 없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전 집에서 그게 얼마나 큰 리스크인지도 깨달았지만. 지금 고치는 집도 엘리베이터가 있으면 아마 세탁기를 안 놓을 것 같다. 티브이 역시 없어도 된다. 아, 그리고 제일 좋은 방은 비워 놓을 생각이다. 생애 통산 일곱 번째 집을 이렇게 준비하고 있는 중이다.


집에 대한 생각이 갈수록 뚜렷해져요. 언젠가 가능하다면 산이 있는 동네의 적당한 땅에 20평 내외의 랜치 하우스(Ranch house)를 짓고 싶어요. 길쭉한 평면의 단층집이요. 역시 좋은 소재로 지어야 하겠죠. 다만 내 손 안에서 관리할 수 있는 집, 내 손으로 해결할 수 있는 집이기를 바라요. 그게 생각할 수 있는 최고의 럭셔리입니다.   


그가 살아온 집의 궤적을 보면 부산에서 시작해서 서울 서남부 지역을 지나는 완만한 원호를 이룬다. 그 원호의 끝은 향하는 곳은 아마도 종로구의 골짜기인 신영동인 듯하다. 어머니의 고향에서 아버지의 고향을 향하고 있는 것일까. 유난히 느리지만 좀처럼 방향을 틀지 않는 그의 주거사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여기저기로 옮겨 다니는 대다수 한국인들의 행보와는 사뭇 다른 것이다.


지금 고치고 있는 집이 또 다른 책이 되어 세상에 나올지 아직은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집은 세상에 대해서,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 일정한 선을 그어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독특한 아우라를 담고 있을 것이다. 일상은 무엇인지, 또 럭셔리는 무엇인지, 이 유난히 생각 많은 사람의 집을 통해 알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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