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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별 Oct 18. 2023

모든 것이 부질없다고 느껴질 때


며칠간 사춘기라 느낄만한 생각에 빠졌었다. 화를 낸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고, 그냥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모든 행동과 생각들이 다 별 거 아닌 것만 같고 부질없게만 느껴졌다는 거다. 그저, 우주의 한 꼬집도 되지 않는 몸뚱이 가지고 그저, 우주의 한 줌도 되지 않는 이야기들을 기록하고만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의 존재 자체에 의미를 느끼지 못하겠어서 나의 오늘이, 나의 일주일이, 나의 삶이 너무나 보잘것없이 느껴졌다. 너무나 모호한 이 느낌 때문에, 내가 어떤 감정을 지니고 있는지도 모르고 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 왜 이렇게 아무런 감정도 가지지 않은 채로 사는 것 같지?
나 지금 기분이 좋은 거야, 안 좋은 거야?
왜 내 기분을 모르지?
내가 내 감정마저 느끼지 못하게 됐나?
이게 우울증이라는 거야?
갑자기?
도대체 왜?



저녁을 먹고 엄마와 산책을 했다. 당연하게도 이 이야기가 흘러나왔고 나는 이야기를 하는 내내 참 혼란스러웠다. 분명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활동을 하고 있는데, 왜 계속 부족하다고 느끼는 거지?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단 말까지 여러 번 덧붙이며 이야길 이어갔다.


집에 거의 도착할 때쯤 그럴듯한 답이 나왔다. 나는 내가 하는 것들의 가치를 모른다는 것. 내가 나의 마음을 읽고 나의 성격에 맞는 행동들을 해나가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모르고, 나의 생각과 깨달음을 그림과 글로 표현하는 게 얼마나 멋있는 일인지 모른다는 것. 그럼에도 한 편으론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의 존재 자체에 의미가 없다고 느끼는데 그러한 내가 하는 행동이 과연 의미가 있다고 느낄 수 있을까?


조금 답답한 마음으로 끝난 산책이었다.


그렇게 집에 돌아와서 씻고, 자기 전에 미적거리던 중 엄마가 책 하나를 던졌다. 내가 거쳐 갈 미래의 모습 같다면서. 그렇게 책을 읽게 됐는데, 바로 그 책에서 당시 나의 고민에 관한 진짜 답을 드디어 찾을 수 있었다. 이 책은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는 히조라는 유튜버가 자신의 삶을 담은, <하지 않는 삶>이다. 이 사람의 삶의 패턴이 나와 너무나 닮아 있어서 ’어떻게 이렇게 닮을 수가 있나..‘ 하며, 책을 보는 내내 놀라움에 흠뻑 적셔졌던 것 같다. 그중 루틴에 관한 짤막한 글을 읽었는데, 내가 잊고 있었던 중요한 루틴을 이 사람은 중요한 건 줄 알며 계속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책을 덮고, 현재 내게 필요했던 것을 상기하며 이번 고민의 종점에 도달할 수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며칠간 나의 일상에 눈을 두지 않았다. 핸드폰에서 시선을 떼는 순간을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일상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새롭고 흥미로운 핸드폰 속 정보들에 시선을 빼앗겨 나의 정보들은 외면했다는 거다. 나를 이루는 것들이 흐릿해지니 나의 존재 또한 느끼지 못했던 것이었다. 나는 현재의 나를 느낄 시간을 전혀 가지지 않고 있었다.


 나는 여유로운 삶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 여유는 시간을 따로 내서 가질 수도 있지만, 공부와 그림에 시간을 많이 쓰는 나로서는 이 여유를 일상 속에서 느끼곤 한다. 내게 여유란, 나의 감각으로 나를 느끼는 것에서 오는 만족감이다. 예를 들어, 길을 걸으며 자연을 눈에 담는 것, 낙엽 밟는 소리를 듣는 것, 약간 쌀쌀해진 바람을 느끼는 것은 흘려보내기 쉬운 일상에 집중하는 행동이다. 이러한 행동에서 느끼는 감각은 내가 존재하고 있음을 상기시킨다. 소박하지만 나에게는 정말 중요한 것이었다.


하지만 최근의 나는 어땠던가. 일상적인 행동을 하는 데에 있어 그 행동에 온전히 집중하는 시간은 없었다. 나의 존재 자체에 의미를 느끼지 못하겠다는 건, 어떤 감정을 지니고 사는지 모르겠다는 건, 내가 그러한 것들을 느낄 수 있는 행동들에 집중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었다. 매 순간, 핸드폰을 보겠다는 선택으로 나 스스로를 의미 없는 존재로, 감정을 인지하지 못하는 존재로 만들고 있었다.

선택의 형태

나를 빚고 형상화하는 건 매 순간의 선택과 행동이다. 나의 선택과 행동 하나하나가 모여 나를 느끼게 한다. 그동안 나는 나를 빚는 재료를 가져오려 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불명확한 형태로 살아왔다.



우선 핸드폰에서 시선을 떼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렇게 며칠을 살아봤는데 전과 확실히 다르다. 여유롭고 평온한 것 같다. 계속해가며 더욱 확신을 가져야겠지만, 내게 더욱 어울리는 삶이라는 생각이 벌써부터 든다.


초등학생 시절, 나는 친구들과 해가 질 때까지 뛰어놀다가 저녁 먹을 때쯤 집에 들어갔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이불속으로 돌진했고 저녁 먹으란 엄마의 말에 벌떡 일어나곤 했다. 그때의 나에겐 이불속에서 간식을 먹으며 유튜브를 보는 것, 게임을 하는 것이 쉼이었다. 하지만 벌써 고3을 앞둔 내게 몇 년간 여러 일이 있었고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많이 변화하고 성장했다. 그렇게 변화한 나인데, 쉼은 변하지 않았을 거라 여겼다. 아니다, 이제는 독서와 그림, 멍 때리는 것, 핸드폰 없이 걷는 것과 같이 간소한 여유들이 쉼이 되었다. 그리고 그 쉼 속에서 영감을 얻는 창작자로 살아가고 있다.


최근, 독서 과목에서 본 내용 하나가 기억에 남는다. 원래 인생은 의미가 없다. 누군가가 그 의미를 주는 것도 아니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각자만의 의미를 만들어 나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 나는 간소한 여유라는 쉼터에서 숨을 고르고는 다시금 내게 의미 있는 것들에 시간을 쏟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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